(제 22 회)

 

10. 두 모사의 대결

2

 

《도사어르신의 입에 맞겠는지… 이건 내가 마시는 송화인삼차외다.》

왕유는 자기를 반겨맞으며 스스럼없이 차를 권하는 왕식렴에게 재차 앉은절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임금의 4촌동생인 왕식렴, 이 사람도 공개된 관직이 없이 왕건을 돕고있는 왕건의 모사다. 그뿐이 아니고 일찍부터 왕건가문의 재정을, 지금은 고려국의 국고에 버금가는 개인금고와 물장고를 따로 가지고 왕건의 정사를 재력으로 측면에서 보필하는 대부호이고 고려지경안팎에 거미줄같은 교역망(실은 정보망이다.)을 치고서 왕건의 눈과 귀가 되여주고있는 고려국의 일등재사, 제일가는 모사이다.

왕유가 후백제의 모사 간무에게 밀서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확답서를 받아올수 있게 도와준것도 다름아닌 이 왕식렴이다. 물론 이 일을 왕식렴의 도움을 받아 하는게 좋으리라 귀띔해준것은 최응이였다.

왕식렴은 후백제가 서기 이전에 안면을 익혀두었던 선암사 대사 운암에게 왕유의 밀서를 간무에게 전해주도록 부탁하는 소개신을 써주었고 왕유의 밀서를 품은 다을과 오복, 검갑이들이 후백제에 무사히 들어가도록 자기가 리용하는 밀로까지 넘겨주었다.

《그간에 소인의 무지로 해서 페하의 안존이 크게 흔들렸사와 하늘아래 얼굴을 들수 없는 주제를 하고서도 체면없이 대광어르신을 찾아온걸 꾸짖어주소이다.》

왕유가 공산전투에서 왕건이 당했던 위기를 화제에 올리자 식렴이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얼굴을 들수 없는건 나요. 그 일을 론할것 같으면 나부터 꾸짖어 주시오. 실은 나도 그 일이 있은 뒤론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아 평양성으로 올라가는 걸음을 늦추고있었소이다.》

《소인은 페하로부터 자기 신변을 류의해달라는 암시까지 받은 놈이오이다. 그런데 그런 변을 당하시게 하였으니 정말이지 전… 재목이…》

《가만!》

식렴이 정색해서 왕유의 말허리를 끊었다.

《도사어른은 조정일에서 물러설 생각을 한게 아니요?》

《페하의 신변이 그 지경이 되도록 막지 못한 신하를 어디에 쓰겠소이까? 장수들만 탓할 일이 아니지 않소이까?》

《그렇다고 해도 전장에서 페하를 지키는 일은 도사어른 몫이 아니니 너무 자신을 괴롭히지는 마시오이다. 힘을 내시오. 물러서면 페하께 더 큰 죄를 짓는것으로 되오.》

《그건 옳은 말씀이오이다. 하오나 신하들의 직분이 아무리 각각이라 할지라도 페하의 안전을 기하는 일에서는 너나없이 제 직분으로 생각하고 심신을 바쳐야 할 일이 아니오이까?》

식렴은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며 말을 이었다.

《어련하겠소만 난 모사어른이 죄를 씻는겸 뭔가 새로운 궁냥을 해가지고 오신걸로 짐작하오.》

식렴은 차잔을 들며 왕유에게 기대어린 시선을 주었다.

《실은 한가지 대광어른과 목소리를 합치고싶은 소청도 있기는 하오이다.》

《페하께옵서 다시는 전장에 종군하지 마시라고 청을 올리자는것이겠지요?》

《그렇소이다. 페하의 성미에 종군을 하지 마시라고 하면 노여움만 더 돋굴것이나…》

《페하께옵서 노여워하시더라도 할말은 해야 하고 할일은 해야 하오이다. 홍유대광과 유금필대광이 이미 청을 올린 뒤이고 나 역시 어제 밤늦도록 페하를 설복하였소. 두번다시 전장에 나가시면 이 식렴은 자결하고말겠다고 하였더니 손을 내저으시며 생각을 좀 해보겠다고 하셨소. 모사어른이 한번 더 따끔하게 오금을 박아올리시오. 페하께옵서 더는 전장에 나가시지 못하게 하소이다.》

《그리하겠소이다. 다른 한가지 대광어른께 여쭈고싶은 소청은…》 왕유는 동안을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후백제 간무에게 진 봉창을 하고싶은데 묘책이 떠오르지 않아 그러니 조언을 좀 주시면 고맙겠소이다.》

《내 생각에는…》 식렴은 그럴줄 알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도사어른이 간무 그자와 군사면에서는 좀 뒤지는 편이니… 전장에서 복수하려는 생각은 접어두시고 다른 놈의 질투를 사서 골탕을 먹게 하는것이 더 좋을듯 하오.》

《다른놈의 질투를 사게 하라고요?》

《그러하오이다. 차도살인이라고 다른자의 손을 빌어 적수를 치는것이지요.》

《하오면 어느 놈의 손을 빌려야 하오리까?》

《능환이라고 간무보다 한수 더 뜨는 작자이온데…》

《능환이라면 견훤의 소시적 동무라는 후백제의 또 다른 모사가 아니오이까?》

《그렇소이다. 그자가 군사에는 간무보다 뒤지는 모양이나 후백제 내정을 쥐고 흔드는데서는 견훤의 뺨을 치는 실력자로 여간 약은 놈이 아니오이다. 하오나 약은 놈이 제 꾀에 넘어가는수도 있는것이오니 그자의 잔꾀를 역리용하면 소득이 있을것이외다.》

《말뜻을 알겠소이다. 능환과 간무 둘사이를 버그러뜨려서 둘 다 피해가 가게 하라는것이군요.》

《그러하오이다. 이 두놈을 다투게 하면 어느 놈이든 꺼꾸러지는 놈이 있을것이오이다. 내가 판단한바에 의하면 요즈음 견훤이 전장에서 승세를 타고있으니까 간무하고만 무릎을 마주하고있는터라 능환이 되게 토라져있는 모양이요. 이 점을 파고들면 무슨 수가 트일것이외다. 구체적으로…》

식렴은 왕유에게 한무릎 다가앉았다.

이들 둘은 자정에 이를 때까지 상론을 거듭했다.

보름이 지난 어느날, 룡득의 주선으로 다을과 검갑이가 궁성수비군사로 뽑혀 완산주도성안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을 날라온 오복이에게 이후의 행동방향을 정해주고있던 왕유는 예고없이 불쑥 나타난 호괴의 출현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호괴, 자네가 어떻게?!》

《도사님, 그간 무고하셨소이까?》

《무슨 일인가?》

《지금 거란사신일행이 후백제로 들어가고있소이다.》

《그게 확실한가?》

《틀림없소이다. 내 수하가 운영하는 련화관에서 사흘을 묵고나서 후백제 군포(군산)로 가는 밀무역선에 올랐소이다. 일행은 서른다섯인데 장사치로 행세하는 당인이 스물일곱, 짐군으로 행세하는 거란인이 여덟이오이다. 짐군으로 위장한 거란인들이 밀사들이고 상인행세하는 당인들은 호위군사들이옵나이다.》

《거란이 무슨 목적으로 후백제에 밀사를 파하였는지 알아보았나?》

《아직은…》

《그들이 왜 장사치로 위장하였을가?》

《후당의 눈을 피하자는것이겠지요. 거란의 침입에 촉각을 세우고 대처해있는 후당이 거란의 밀사들을 알아보면 가만 놔둘리 만무가 아니오이까?》

《거란이 후백제에 사신을 파하였단 말이지?!…》

왕유의 얼굴은 대번에 해쓱해졌다.

내가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끝내 터졌구나.

더 알아보아야 할 일이지만 거란사신의 후백제방문은 십중팔구 서로 결탁해서 고려함락의 거사를 함께 해치우자는 목적에서일수 있다.

만약에 이 일이 성사되는 경우 고려는 남과 북에서 앞뒤협공을 당할수 있다. 실패를 면하기 어려운 정황에 처하게 될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든 거란사신단의 후백제방문목적이 실현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거란사신단은 이미 후당을 통과하였고 지금쯤은 완산주도성안에 들어갔을수도 있다.

그러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왕유는 거란이 당장은 고려를 침공하지 않을것이라고 굳게 확신하고있었다. 거란의 내정과 주변의 전반형편을 직접 가서 보고나서 내린 결론이였다.

하지만 거란사신이 후백제로 들어간 엄연한 현실은 부정할수가 없지 않는가.

왕유는 이 사실을 왕건에게 급히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섰다가 다시 주춤했다.

왕건이 북방순행중이라는 사실을 상기한것이다.

이런 때 최응이나 왕식렴과 의논을 해봤으면 좋으련만 이들도 지금 왕건을 수행하여 평양성에 가있다.

혹여 거란이 우리 고려에 접어들었던 그 화친교섭요청정도의 방문은 아닐가?!…

생각을 정리해가던 왕유는 우선 료해를 더 해보고 시급히 대책을 세운 다음 보고하기로 결심했다.

《오복이, 자넨 어서 떠나야겠네. 완산주로 돌아가서 룡득에게 거란의 후백제방문내속을 빨리 알아내야 한다 이르게.》

《알겠소이다.》

《그리고 호괴, 자네도… 이길로 되돌아서야겠네. 자네 임무는 오직 하나 거란사신단이 되돌아가는 길목을 무조건 차단하는거네.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후백제에 왔다가든 상관말고 일행을 깨끗이 처리해야겠네. 명심하게, 단 하나의 거란인도 놓쳐선 안되네.》

《알아들었소이다.》

호괴는 잠시 머밋거리다가 강잉히 돌아섰다.

(호괴, 이 사람! 용서하게.)

왕유는 호괴가 잠간만이라도 나리를 만날수 없을가 해서 망설인것을 알아차렸지만 두눈을 감아버렸다.

지금은 얄팍한 인정에 발목을 잡힐 때가 아닌것이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