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8 회)

제 2 장

7

 

(1)

 

얼마만이냐? 손꼽아 헤여보니 집을 떠나 8개월만에 다시 돌아온다. 김기환은 한없이 가슴이 설레였다.

지금 집에는 누가 있을가? 지종수가 서울로 보낸 사람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는 중앙녀맹부위원장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 중앙녀맹청사에 나가있을것이다. 녀동생 분영이는? 서울에 왔던 사람은 분영이의 소식을 모르고있었다. 헤여질 때 분영이는 아무 직업도 없었다. 고보를 졸업한 후 맞춤한 일자리를 구할수 없었다. 생모와 양모가 다같이 반일운동에 나섰던 사실이 그 애의 장래에 어두운 그늘을 던지고있었다. 소학교교원쯤은 얼마든지 할수 있는 학식과 자질을 갖추었지만 일제의 교육당국은 허용하지 않았다.

해방을 맞은 오늘에는 희망대로 일자리를 찾았을것이다. 그러니 분영이도 지금은 직장에 나갔을것이다. 필경 텅 비여버린 집에 들어설것이다.

다행히 옷주머니에는 출입문열쇠가 있다. 헤여질 때 분영이와 열쇠를 각각 하나씩 나누어 간수했다. 분영이가 없는 빈집에 돌아오더라도 쇠를 따고 집에 들어서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어머니를 면회하고 돌아오는 길이 기껏 10여일밖에 걸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길이 오랜 나날이 될줄이야. 참으로 알수 없는것이 인생의 곡절이다. 아무튼 무수한 곡절끝에 이처럼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녀동생을 만나게 된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기쁜 일인가. 눈앞에 어머니와 녀동생의 얼굴이 얼른거렸다. 자연히 발걸음이 빨라졌다.

《시내 풍경도 구경하면서 좀 천천히 걷게나.》

뒤따르는 림정하가 하는 말이였다. 서울에서 함께 온 다른 동무들은 대동려관에 려장을 풀었다. 가까운 친구인 정하만은 집으로 데리고 떠났다. 그는 려관에 눌러있겠다고 하였다. 페를 끼칠가봐 그랬었다.

《평양에 온 동무가 우리 어머니를 만나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인사가 됐나? 그리고 내 녀동생도 만나보란 말이야.》

이렇게 권고를 했더니 마지못해 따라섰다. 그는 평양에 처음 와본다. 낯선 도시의 풍치가 시선을 끌것이다. 아름다운 평양의 풍치가 그의 화가적인 안목에 비껴들면서 어떤 미술적착상을 불러낼런지도 모른다. 그 심정이 리해되였지만 이렇게 권고했다.

《래일 시간을 내서 거리구경을 하세. 평양에는 력사유적도 많고 산천경개가 류달리 아름다운 곳도 많다네. 아마 모란봉이나 대동강반을 거닐어보면 당장 화필을 들고싶은 충동이 일거네.》

그랬으나 정하는 현혹되는 거리의 풍치에서 풀려나지 못했다. 하는수없이 천천히 옮기는 그의 자욱에 걸음을 맞추었다.

기환의 집은 만수대기슭에 있었다. 려관에서 20분이면 넉근히 닿을수 있는 거리를 30분나마 걸었다.

《저게 우리 집이야.》

기환은 큰길에서 집이 보이자 숨막히는 어조로 속삭였다.

인제는 정하도 걸음을 빨리 했다.

기환의 눈에 창턱의 화분이 보이였다. 그 화분이 어찌하여 내 방에서 어머니방으로 옮겨졌을가? 피끗 그런 의혹이 머리속을 스쳤다. 아무튼 정성다해 키우던 화분이 어서 오라 손저어 부르는듯 하여서 발이 땅에 닿는것 같지 않았다. 분주히 옷주머니를 뒤져서 열쇠를 찾았다. 그 순간에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방안에서 분영이가 소리쳤다.

《오빠!》

목갈린 부르짖음과 함께 분영이는 맨발로 달려나왔다.

《분영아!》

마주선 남매는 동시에 팔을 뻗쳐 두손을 맞잡았다. 서로 뚫어지게 바라볼뿐 어느쪽이나 말이 없었다. 분영이의 살눈섭이 촉촉히 젖어들었다. 말로는 표현할길 없는 반가움이 눈물로 솟는것이다.

《어머니는 직장에 나가셨겠지?》

격정의 한순간이 지나자 기환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분영이는 아직 메인 목이 열리지 않는지 어린애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넌 어떻게 집에 있었느냐? 난 빈집에 들어설줄 알았는데…》

그제서야 분영이는 눈물을 씻고 대답했다.

《난 아직 직장이 없어.》

《그래?》

분영이와 같은 처녀가 집에 눌러있다는것이 놀라왔다. 북반부에 첫걸음을 옮긴 때부터 새 민주조선건설에 떨쳐나선 인민들의 활기와 열정을 보았던것이다.

《어머니가 중앙녀맹에서 중책을 맡다보니 나는 집안일을 돌봐야 했어. 어머니의 원고나 문건도 정서해주고

듣고보니 리해가 갔다. 기환은 뒤전에 서있는 정하를 띄여보고 분영에게 말했다.

《인사해라. <조선국군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던 내 친구다.》

분영은 오빠에게만 시선을 쏟다보니 비로소 낯선 청년의 존재를 발견한듯싶었다. 일순 당황한 기색이더니 인차 자신을 수습하고 정하에게 머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외간남자를 대할 때 항용 그러하듯이 정중한 례절이였다. 그런데 정하는 답례도 없이 붉어진 얼굴로 눈길을 허둥거렸다. 처녀들과 별로 교제가 없었던 그는 상대의 우아한 모습에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분영이의 눈에 숙보일것 같아서 기환은 이렇게 말했다.

《림정하군은 미술학원을 나왔는데 그림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러자 정하는 더욱 거북해하였다. 기환이도 그처럼 주눅이 들어하는 그를 처음 보게 되였다.

셋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래방은 어머니와 분영이가 함께 사는 방이였고 미닫이를 사이에 둔 웃방은 기환의 방이였다. 기환은 정하를 데리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오래동안 비워두었댔지만 기환의 방은 깨끗이 정리되여있었다. 오빠가 돌아오리라고 믿으며 분영이가 매일같이 청소를 했을것이다. 방안의 전경은 옛모습그대로였다. 다만 달라진것은 화분을 아래방 창턱으로 옮긴것뿐이였다.

《분영아, 내 방에 해빛이 더 잘 드는데 화분은 왜 옮겨놓았니?》

분영은 그 물음을 기다린듯이 상글거리며 즐겨 대답했다.

《어느날 밤에 오빠가 집에 돌아오는 꿈을 꾸었어. 바로 지종수아저씨가 오빠소식을 가져온 전날 밤이였어. 집으로 돌아오는 오빠가 거리쪽에서 화분부터 보라고 아래방에 옮겼지.》

기환은 가슴이 뭉클했다. 뜨거운 눈길로 웃고있는 분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분영은 아래방에서 얼른 화분을 날라다가 전날의 자리에 놓았다. 오전내내 해빛이 들던 그 자리에 지금은 그늘이 졌다.

《오빠, 내 어머니한테 인차 다녀오겠어. 아무리 일이 바빠도 오빠가 왔다는걸 알면 집으로 달려오실거야.》

《나와 함께 가자.》

어머니를 한시바삐 보고싶은 마음이 불같이 치밀었다. 앉아서 어머니를 기다리는것은 도리에도 어긋난다고 여겨졌다.

《오빤 집에 있으라요. 손님도 오셨는데.》

그렇다. 정하를 홀로 두고 집을 나설수 없었다. 기환은 총총히 집을 나서는 분영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래웠다.

《녀동생은 참 자랑할만 하구만.》

창밖으로 분영이의 뒤모습을 지켜보던 정하가 하는 말이였다.

《선을 보니 마음에 드나?》

기환은 싱긋이 웃으며 물었다.

《마음에 들어도 그림의 떡이네.》

정하는 시무룩한 기색으로 쓸쓸한 미소를 그리였다.

《어째서?》

《나와는 짝이 너무 기우네. 나처럼 못난 사내가 그런 처녀를 넘보는건 푼수없는 일이네. 솔직히 말해서 기환군의 녀동생처럼 그렇게 우아한 처녀를 처음 보았네. 그래서 마주보는 첫 순간에 주눅이 들더란 말일세.》

정하의 얼굴이 붉어지는것으로 보아 롱담이 아니라 진정을 말하고있었다. 기환은 그의 낯색을 살피며 생각했다. 분영이는 누구에게서나 인물이 곱다는 말을 듣지만 정하의 말처럼 삐여지게 아름다운 처녀는 아니다. 그만이 느낀 황홀감은 어데서 오는것일가? 분영이를 두고 많은 말을 하였고 두 청춘이 결합되기를 바랐더니 은연중 정하의 가슴속에 분영이의 존재가 애틋하게 자리잡고있었던것은 아닐가? 마음속에 그려지던 사랑의 상대가 눈앞에 나타나자 헤여져 그리던 련인을 만난듯 한 감정에 사로잡힌것은 아닌지. 사랑의 감정을 품은 청춘의 눈에는 언제나 상대의 모든것이 정도이상으로 아름답게 비낀다고들 한다. 아무튼 정하의 가슴에 커다란 충격이 가해진것만은 분명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심중한 생각이 들었다. 정하와 분영이가 짝을 지으면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 오빠의 심정이지 분영이의 생각이 어떤지는 아직 타진해보지 못했다. 사랑의 선택은 그 결정권이 본인에게 있는것이다. 간접적인 요인을 놓고보더라도 오빠보다 어머니의 영향력이 더 클것이다. 본인과 어머니의 의향을 찔러본 다음에 그들의 사이를 부추겨야 했다. 서뿔리 정하의 마음을 더 들뜨게 하는것은 삼가해야 할 일이였다.

《여보게 정하, 피곤한데 어머니가 올 때까지 허리를 좀 펴세.》

기환은 장안에서 베개 두개를 꺼내여 돗자리우에 나란히 놓았다.

《혼자 눕게. 난 괜찮네.》

정하는 화구가 들어있는 방수포배낭을 뒤적였다.

기환은 벌렁 자리에 누웠다. 먼 려로에서 쌓인 피로가 전신에 흘렀다. 팔다리가 노근해오는것을 느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랜 객지생활에서 벗어나 마침내 돌아온 자기 집에서 잠시라도 자고나면 그 피로가 깨끗이 풀릴듯싶었다. 그랬으나 잠은 쉬이 오지 않았다. 금시 마당가에서 분영이를 앞세우고 들어오는 어머니의 발자국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잠든 모습으로 어머니를 맞이하는것은 도리가 아니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서 다급히 울리는 발걸음소리가 들리였다.

기환은 그 소리에 이끌리듯 급히 창가로 다가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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