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17 회)

제 2 장

6

 

달밝은 밤이였다. 푸른 달빛이 저택의 지붕우에 교교히 흘렀다. 무엇인가 기와장우에서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것이 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시였다.

저택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징후도 놓쳐서는 안되였다. 장군님의 신변을 노리는 적들의 준동은 여전히 계속되고있었다. 그래서 밤이 이슥해지면 매일같이 장탄된 권총을 품고 저택주변을 돌아보시는것이였다. 한동안 지켜보시니 반짝이는것은 모래알이 아니면 유리쪼박인듯싶었다. 여느날에는 보이지 않던것이 오늘따라 반짝이는것은 유난히 달이 밝기때문일것이다.

안심을 하고 마당을 나서시였다. 울타리를 에도시는데 마주오는 사람이 있었다. 경위대원인가? 아니면… 긴장한 마음으로 주시하시였다. 거리가 가까와졌다. 달빛에 상대의 모습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뜻밖에도 김홍구였다.

《아니, 동무가 어떻게 이밤중에…》

다가선 홍구의 얼굴에 한껏 애원의 빛이 떠올랐다.

《여직 저는 녀사님께서 밤마다 집주변을 돌아보신다는걸 모르고있었습니다. 오늘 밤부터는 제발 그 일을 저한테 맡겨주시고 편히 쉬십시오.》

홍구의 손에는 잘 다듬어깎은 나무방망이가 쥐여져있었다.

장군님의 안녕을 지키려고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타난게 분명했다. 가슴이 뭉클해오시였다. 그 심정이 고마왔고 그의 성장을 보는것이 기쁘시였다.

홍구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제가 워낙 사람이 부실하다나니 은혜에 보답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순라를 도는 일은 저한테 맡겨주십시오. 반동놈 두셋쯤은 넉근히 요정낼수 있습니다.》

《걱정말고 동무는 저녁마다 글공부를 더 열심히 하세요.》

《녀사님덕분에 인제는 우리 글을 쓰고 읽지 않습니까?》

사실이 그랬다. 그동안 홍구는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글을 깨쳤으니 이제부터는 많은 책을 읽어야지요.》

《녀사님, 제 마음을 좀 리해해주십시오. 댁에 왔던 려운형선생이 저를 보고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뭐라고 했어요?》

장군님과 어떤 친척벌이 되는가고 묻길래 나는 친척도 아니고 거지로 떠돌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도무지 믿지 않길래 장군님께서 우리 일가를 어떻게 구원해주셨는가를 사실대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려운형선생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과시 일성장군님은 성인중의 성인이시구나!… 군이야말로 남북을 통털어서 해방된 이 나라 청년들중에서 제일 복받은 청년일세!> 이러더란 말입니다.

그 선생 말이 옳습니다. 해방을 맞아서 저처럼 복받은 사람은 없을겁니다. 그런데 그 복을 안겨주신 장군님과 녀사님께 보답하지 못하는것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두분의 안녕을 지켜서 밤마다 순라라도 돈다면 죄스러운 마음이 다소나마 풀릴게 아닙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간절한 그 마음을 거역할수 없으시였다.

《밤마다 이 시간에 나와 함께 돌아보군 하자요.》

《제 혼자 하겠습니다.》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돌아보는게 좋지 않아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빙긋이 웃으시였다. 홍구의 소원이 정 그렇다면 이 시간을 빌어 빨찌산시절 사령부를 지켜 싸운 투사들의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고싶으시였다.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날을 따라 불어났다. 홍구의 성장에 도움을 줄수 있는 시간을 여투어내기가 어려우시였다. 어떻게 하나 그를 잘 키워야 했다.

《이야기를 들려주시겠다면야 좋습니다.》

홍구는 기뻐했다. 녀사께서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어느것이나 재미있고 뜻이 깊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를 데리고 걸음을 옮기시였다.

《오늘은 빨찌산시절에 장군님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바친 투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겠어요.》

이렇게 꼭지를 떼고보니 잊지 못할 전우들의 장렬한 최후가 눈앞에 삼삼하시였다. 얼마나 많은 동지들이 장군님을 잘 모셔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던가. 마동희, 최희숙, 리권행, 오중흡… 피끓는 청춘을 바쳐 장군님을 어떻게 모시고 받들어야 하는가를 훌륭히 보여준 열혈의 전우들은 너무도 많았다. 누구의 이야기부터 하여야 할가?

잠시 동안을 두셨다가 사령부를 보위한 7련대의 련대장 오중흡의 이야기부터 펼치시였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대로 경건하고 가슴저린 추억이였다. 해방의 오늘을 보지 못하고 간 전우들, 그들의 외양과 성품은 물론 언행의 특징적인 습관까지도 생생히 떠올랐다. 그들의 식어가는 시체를 부여안고 통곡을 터뜨리던 비애도 되살아났다. 말보다 먼저 치미는 감정이 앞서는것이여서 도간도간 이야기를 중단하시였다. 그때마다 홍구는 숙연한 낯빛으로 조심스레 녀사를 바라보았다. 저택주변을 몇바퀴나 돌았는지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늘 밤은 그만하고 래일로 뒤이야기를 미루리라 생각하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시였다. 휘영청 둥근달은 어지간히 서켠으로 기울었다. 그사이 그 무슨 조화가 있었는지 달의 언저리에 안개발같은 무리가 흘렀다. 눈을 슴벅이고 다시 바라보시였다. 홀연 달무리가 가셔져버렸다. 망막을 가리운 눈물때문에 허상으로 달무리가 보이였다는것을 깨달으시였다. 선명해진 달속에 방금 이야기하셨던 전우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모두가 밝게 웃으며 반기는 모습이였다.

《정숙동무, 우리가 남긴 유언을 잊지 않고있으니 정말 고맙소. 먼저 간 우리를 두고 눈물은 삼가해주오. 우리는 조금도 한됨이 없소. 우리의 넋을 이어 수많은 청년들이 평양학원에서 총을 틀어잡고 장군님을 보위해갈 친위전사들로 자라고있지 않소.》

아득한 공간으로부터 메아리쳐오는 그 속삭임은 누구의 목소리일가?… 그들모두의 심정이 합쳐진 목소리일것이다.

한순간의 환영에서 깨여나신 그이께서는 수건으로 눈시울을 닦으시였다. 불현듯 평양학원에 입학할 남조선청년들의 1진이 오늘 평양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상기되시였다. 그들의 입학으로 평양학원은 이제 전민족적인 성격을 띤 군정간부학교로 될것이다. 홍구는 여전히 침묵속에 따라서고있다. 그에게 고개를 돌리시였다.

《오늘 밤 홍구동무는 장군님의 안녕을 지켜 스스로 나섰는데 정말 장해요. 그래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예요?》

홍구는 한동안의 침묵끝에 어눌한 어조로 말했다.

《그저 지금처럼 장군님과 녀사님의 곁에서 일을 하도록 하여주십시오.》

대답끝에 조심히 머리를 들어 마주보는 시선이 간절한 빛을 뿜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눈빛을 의식하며 더 권고하지 않으시였다.

녀사의 물음이 오히려 홍구에게 서운한 감정을 불러낸 모양이다.

《생각이 그렇다면 좋을대로 하세요.》

달빛속에 홍구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란히 걸음을 옮기던 그가 이번에는 먼저 말을 꺼냈다.

《녀사님, 오늘 점심때 우리 어머니가 장군님 덕분으로 좋은 집도 생기고 살림도 펴이였는데 나더러 인제는 장가를 가라고 하질 않겠어요. 허참.》

말끝에 허구픈 웃음을 터치는 홍구의 얼굴은 붉어져있었다. 자기의 장래를 두고 이야기가 오가다보니 그 생각이 불쑥 떠오른가싶었다. 그의 어머니로서는 십분 그럴수 있었다. 며느리를 맞아서 단란하게 여생을 보내는것이 소원일것이다.

《그래 뭐라고 했어요?》

입가에 따뜻한 미소를 그리며 은근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홍구는 잠시 바재이더니 쑥스러운 기색을 앞세우며 입을 열었다.

《우리 집 크고작은 일은 어느것이나 장군님과 녀사님께서 돌봐주고계십니다. 제가 장가를 가는것은 우리 집에서 제일 큰 일입니다. 그렇지만 장군님께야 어떻게 그런 일을 말씀드리겠습니까.

녀사님께 어찌했으면 좋겠는지 말씀드려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도 인륜대사를 두분께 알리지 않고 치를수 없다면서 어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변이라구야! 그의 결혼문제를 두고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가?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일이였다. 난감한 생각이 드시여서 홍구의 낯색을 살피시였다. 마주보기가 어색하여 머리를 수굿하고 걷고있었지만 운명적인 결론을 기다리는 사람의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알고보니 홍구는 이즈막에 장가들 생각을 앞세우는것이 분명했다. 그의 나이로 보아 그럴만도 했다. 그자체를 탓할수는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장가들 생각을 한다는것이 지난날의 짐승같은 생활에서 벗어난 오늘에 와서 존엄스러운 존재로 자기를 의식하며 인간답게 살려는 갈망의 표현이라고 할수 있었다.

《나는 동무가 무던한 색시를 만나서 행복한 생활을 한다면 그 이상 더 기쁜 일이 없겠어요. 결혼을 한다면 힘이 닿는껏 도와주고요. 그래 색시감은 있어요?》

《없습니다.》

더수기를 문지르는 홍구의 얼굴에 흐뭇한 웃음이 번지였다. 둥근달을 바라보며 자욱을 옮기는 그의 얼굴에 점차 그윽한 빛이 떠올랐다. 흔히 헤여진 련인을 그려보는 청춘들의 얼굴에서만 볼수 있는 표정이였다.

《언약한 색시감은 없더라도 혹시 마음에 둔 처녀가 있는게 아니예요? 》

《녀사님한테야 뭘 숨기겠습니까. 사실 만주로 가기 전에 이웃집처녀와 눈이 맞았댔습니다.》

홍구는 어줍게 웃었다.

김정숙동지께시는 느닷없이 가슴 한귀가 훈훈해오는것을 느끼시였다. 참혹하게 짓밟히고 못살던 홍구에게도 청춘시절의 첫시기에 순진한 첫사랑의 과거가 있었다는것이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시였다.

《그 처녀가 지금 어데 있어요?》

《모릅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처녀의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와 같은 배군이였습니다. 한날한시에 두 집이 선주놈한테 차압을 당했는데 처녀네도 그때 어데론가 살길을 찾아 떠났을겁니다.》

《선주놈이란 우리가 지난 겨울 장마당에서 돌아오다가 만났던 그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혹시 그 사람이 처녀의 행처를 알수 있지 않을가요?》

《모를겁니다. 처녀네 집에서도 필경 우리네처럼 야밤도주를 했을겁니다.》

《아무튼 기다려보세요. 그 처녀도 살아있다면 지금도 동무를 그리워할게 아닌가요. 서둘러 장가를 들었다가 후날에 그 처녀가 나타나면 서로 얼마나 괴롭겠어요.》

《알겠습니다.》

다시 마당쪽으로 돌아왔을 때 경위대원들이 보초를 교대하고있었다.

초소들을 돌아보던 강상호가 이쪽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정숙동지, 밤이 깊었습니다. 들어가 쉬십시오.》

그는 안타까이 간청했다.

장군님께서는 이밤을 새우시며 20개조 정강을 집필하고계십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편히 자리에 눕겠어요.》

《우리 경위대가 구실을 제대로 못하다보니 정숙동지가 매일 밤 이런 수고를 합니다.》

《아니, 그런게 아니예요. 습관때문에 돌아보는거예요.》

강상호는 경건한 표정으로 그이를 우러렀다. 빨찌산시절 김정숙동지께서는 경위중대가 보초를 서고있었으나 사령부를 밤새워 에돌군 하시였다. 장군님을 옹호하고 보위하시는것이 사상과 의지로써만이 아니라 체질로 굳어지셨다. 그 시절 친위전사의 자세와 발걸음이 이밤에도 그대로 이어지고있는것이다. 경위대원들에게 그 자세와 걸음을 따라배우도록 하여야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강상호는 가슴속에 그득히 차오르던 날숨을 길게 내불었다.

달빛 아름다운 저택의 밤은 이렇게 깊어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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