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2 장

4

 

《아름다운 이 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정신옥은 푸르게 열린 하늘을 아득히 바라보며 입속으로 뇌이였다. 멀리 흘러간 소녀시절처럼 가슴부푸는 시정에 감기였다. 중화군의 농촌마을들에서 받아안은 깊은 인상이 내처 머리속에 맴돌며 락관의 정서를 불러냈다. 며칠전에 발포된 토지개혁법령으로 땅을 분여받은 농민들은 형언못할 환희에 넘쳐있었다. 정신옥은 여러 마을을 돌아보며 그들의 기쁨을 자신의것으로 받아들이였다. 농민들과 함께 북장단에 맞추어 춤도 추고 그들의 요청에 따라 연설도 하였다. 카바이드등을 밝혀가며 농민들이 일성장군님께 올리는 감사의 편지를 보아주기도 하였다. 큼직한 붓에 듬뿍 먹을 찍어서 송진내 싱그러운 지경패말을 써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사흘을 지내고 시내로 돌아오는 길이였다. 정녕 이 봄은 력사의 새봄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러웠다.

집에 들어서니 청소를 하던 딸이 뛸듯이 기뻐했다. 이제는 혼기가 되였으나 어린시절처럼 옷섶에 매달렸다.

어머니, 왜 오늘에야 오나?》

응석과 불만이 엇섞인 물음과 함께 서분영은 눈을 곱게 할기였다.

떠날 때는 그날 저녁으로 돌아온다고 약속을 했으니 그럴만도 했다.

《땅을 분여받은 농민들이 놓아주질 않더구나. 나도 그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늦어졌구나. 그래 그사이 어머니없이 혼자 자기가 무섭더냐?》

《무섭기야 뭐, 약속대로 돌아오지 않으니까 어머니가 걱정되였어요. 토지개혁이 벌어지면서 지주와 반동놈들이 날뛴다던데…》

《농민들의 기세에 눌리워서 그렇겐 못해. 너도 한번 틈을 내서 농촌에 나가봐라. 지금 농민들이 얼마나 기쁨에 휩싸여있는지 모른다.》

나들이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고 방안을 둘러보던 정신옥은 그사이 화분의 위치가 달라진것을 발견했다. 웃방에 있던 룡설란화분이 아래방 창턱으로 옮겨졌다.

《화분을 왜 이 방으로 옮겼느냐?》

《어머니, 왜 그랬겠는지 맞혀보세요.》

살눈섭이 긴 분영의 고운 눈이 새물새물 웃고있었다.

정신옥은 웃음진 얼굴로 마주보았다. 10여년전부터 키워오는 화분이였다. 분영이보다 세살 우인 아들이 집에 있을 때에는 그들남매가 물을 주며 함께 가꾸었다. 그들의 성장과 함께 화분도 자랐다. 아들 기환이가 집을 떠난 후에는 분영이가 혼자 가꾸었다.

그런데 왜 내 방으로 옮겼을가? 알수 없었다.

서분영은 머리를 기웃거리는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리기가 지루했던지 제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밤 나는 오빠가 집으로 돌아오는 꿈을 꾸었어요. 거리에서 우리 집을 바라보면 이 방의 창문이 먼저 보이지 않겠나요. 집을 바라보며 걸어오는 오빠의 눈에 얼른 화분이 들라고 옮겼어요.》

《그랬었구나.》

그 마음이 갸륵하고 기특했다. 어쩌면 오누이의 정이 저리도 자별할가. 피를 나눈 사이도 아닌데… 서분영은 친딸이 아니였다. 그애가 세살때 친구가 사망하여 데려다가 키웠다. 처음 몇달동안은 엄마를 찾으며 슬피 울었다. 그때 분영이를 달래며 속을 썩이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애절한 그 무엇이 명치끝을 어이는듯 했다. 철없던 기환이녀석은 청승맞게 울기만 한다고 분영의 머리를 쥐여박군 했었다.

《이 앤 네 동생이야. 알겠니?》

유복자로 키운 아들이였지만 사정없이 매를 들었다. 점차 철이 들면서 기환이는 불쌍한 분영이를 친동생처럼 사랑하기 시작했다.

과자 한개나 사탕 한알이 생겨도 자기는 먹지 않고 분영이한테 주었다. 그러다보니 분영이 역시 그림자처럼 오빠를 따랐다. 커가면서는 서로 다투는 일이 한번도 없었다. 세상에 그렇게 다정한 남매는 있을상싶지 않았다. 그러나 피줄은 속일수 없없다. 정신옥은 성장한 분영의 모습에서 오래전에 세상 떠난 옛벗의 모습을 다시 보는듯 한 때가 많았다. 살결이 희고 륜곽이 조화롭게 둘러맺힌 얼굴은 물론 상큼한 목덜미로 흘러내린 검은 머리칼까지도 제 어머니를 닮았다. 재빠른 손세로 뒤머리채를 묶어내고 고개를 살짝 흔드는 습관도 신통히 그 어머니를 련상시켰다. 그럴 때면 여러해 옥살이를 하다가 보석으로 출옥한 분영의 어머니가 숨을 거두며 남긴 당부가 귀가에 울려왔다.

《언니, 우리 분영이를 맡아 잘 키워주세요.》

정신옥은 벗의 유언에 충실했다. 기환이보다도 분영에게 더 정을 기울이려고 애를 썼다. 인제는 애지중지 키워온 그들이 다 자랐다. 기환이는 24살이고 분영이는 21살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수난많던 옛시절을 추억하며 아들딸을 거느리고 단란하게 살고싶었다.

힘이 닿는껏 녀맹사업에 기여를 하며 그들의 사랑속에 여생을 보낸다면 얼마나 좋을가?

그런데 기환이 소식은 알길이 없었다. 분영이의 말에 의하면 그애는 옥에 갇혀있던 어머니를 면회하려고 서울로 떠났다고 한다. 그것이 지난해 7월이였다. 그러니 해방을 한달가량 앞둔 때였다.

그때 정신옥은 서대문형무소에서 함흥형무소로 이감되여있었다. 놈들이 은밀히 이감시켜버린것은 까닭이 있었다. 서울과 도꾜의 기자들이 몇번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있는 정신옥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오래동안 옥고를 치른 그의 심중을 타진해보려고 놈들은 례외적으로 면담을 승인했다. 이를테면 문제로 되였던 《눈물의 호소》와 정반대의 호소가 정신옥의 입에서 나올것을 기대했던것이다. 어리석은 기대였다. 정신옥은 찾아온 기자들에게 어머니와 안해들의 품에서 아들과 남편들을 떼내여 참혹한 죽음이 기다리는 전쟁터에로 내모는것은 리성을 잃고 인륜을 모독하는 극악한 범죄라고 여전히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불가능했지만 일본의 어느 한 신문에는 그의 주장이 실리였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정신옥과 외계를 엄격히 차단할 필요를 느꼈다. 야밤중에 한감방의 동료들조차 모르게 그를 함흥으로 이감시킨것은 그때문이였다.

그후에 서대문형무소를 찾아갔던 기환이는 어머니의 행처를 알수가 없었을것이다. 법이 없고 무지한 폭력만이 살판을 치던 세상이였다. 수감자의 신상이나 행처를 알려줄 의무따위는 저버린지 오랜 형무소였다. 필경 기환이는 이 어머니가 잘못되였을거라고 여겼을것이다. 절망과 슬픔에 몸부림치던 그 애가 어떤 극단적인 행동이나 저지르지 않았는지, 눈물을 뿌리며 서울거리를 방황하다가 《황군》에 징모되여 남양전선으로 끌려갔을수도 있었다.

하염없이 바라보는 룡설란화분에 기환의 모습이 그려졌다. 놈들에게 잡혀가면서 아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것은 4년전이였다. 살아있다면 인제는 퍼그나 숙성했을것이다.

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났다. 뒤따라 주인을 찾는 소리가 울리였다.

《선생님 계십니까?》

무척도 귀에 익은 지종수의 목소리였다.

정신옥은 튕겨나듯 일어서서 출입문을 열었다. 휴식일의 오후이면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랑스럽고 미더운 제자였다.

《어서 들어오게.》

지종수가 방안에 들어서자 분영이도 반겨맞았다.

《아저씨, 그간 안녕하셨어요?》

《나야 여전하지.… 선생님, 내 오늘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지종수는 전에없이 들뜬 기분이였다.

정신옥은 흥분으로 혈조가 번진 그의 말쑥한 얼굴을 얼없이 바라보았다.

《기쁜 소식이라니?》

《기환이 소식을 알게 되였습니다. 우리 사람들이…》

지종수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신옥은 다그쳐 물었다.

《이 사람, 그 애가 살아있단 말인가?》

금시 숨이 막혀오면서 전신의 피흐름이 멎는듯 했다.

《살아있습니다.》

종수의 대답에 정신옥은 멈추었던 날숨을 길게 터치였다. 동시에 눈물이 솟았다.

《선생님, 앉으십시오. 이제 사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제서야 정신옥은 손님에게 자리를 권할 생각을 까맣게 잊고 여직 선채로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눈물을 훔치고 치마폭을 감싸며 자리에 앉았다. 지종수와 서분영이도 그와 마주앉았다.

《선생님이 아들의 소식때문에 속을 태운다는걸 알고 제가 좀 관심을 돌렸습니다. 물자교역으로 서울에 나가는 우리 사람들에게 알아보라고 일렀댔습니다. 그야말로 서울에서 김서방찾기지만 행여나 해서 당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있었습니다. 미군정당국이 <조선국군학교>를 해산해버렸는데 그 학교에 다니던 기환이가 어느 신문에 <찬탁>을 설교하는 글을 실었습니다. 우리 사람이 그 신문을 보고 기환이의 행적을 추적했던것입니다. 역시 기환이는 선생님을 닮아서 언변도 좋고 글도 잘 쓰나봅니다. 그래서 소식을 알게 되였습니다.》

《이 사람, 고맙네. 서울에 갔던 그 사람에게도 내 인사를 전해주게.》

정신옥은 눈물속에 웃었다.

《기환이는 선생님이 옥사한줄 알고있더랍니다. 그래서 해방후에는 서울에 그냥 눌러있으면서 선생님의 유해를 찾으려고 공동묘지를 여러날 헤매다가 <조선국군학교>에 입학하였답니다. 참 기막힌 일이지요. 선생님이 평양에서 중앙녀맹부위원장으로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 놀랍고 기뻐서 어쩔줄을 모르더랍니다.》

정신옥은 아직 혼란된 의식을 수습하지 못했다. 꿈결에서 지종수의 이야기를 듣는듯 하여서 그의 입귀를 멍하니 바라볼뿐이였다.

《어머니한테는 그렇다치고 나한테는 왜 여적 소식이 없었대요?》

분영이가 물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어머니와는 달리 그 눈물에는 반가움만이 아니라 원망과 의분이 어렸다. 자기를 뒤돌아보지 않은 오빠를 두고 서러운 감정이 끓어올랐다. 지종수가 그에게 머리를 돌렸다.

《너한테 두번이나 인편에 편지를 썼다더라. 그런데 닿지 못한걸 보면 부탁을 받았던 사람들이 편지를 도중에서 잃어버렸거나 38도선을 넘다가 잘못된 모양이다.》

《오빠가 왜 너를 잊겠니. 네가 어제 밤 꿈에서 오빠를 본것처럼 기환이도 너를 꿈결에 그려보군 했을거다.》

정신옥은 분영에게 다심히 타이르고 지종수에게 물었다.

《그애가 입학하였다는 <조선국군학교>란 도대체 어떤 학교인가?》

《려운형선생이 8. 15후에 조직한 군사학교랍니다.》

《몽양과 같이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도 군대부터 꾸릴 생각을 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한때 고려공산당에도 기웃했던 좌익계인물이니까요. 공산주의는 폭력혁명만을 제창하니까 려운형씨도 그러했나봅니다.》

《몽양이야 자네보다 내가 더 잘 알지. 손문처럼 공산당과도 합작을 해서 항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뿐이지 공산주의자는 아니네.… 아무튼 해방된 오늘에 와서 서로 총잡을내기를 하면 종당에는 동족끼리 류혈이 벌어질텐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네.》

정신옥이 한탄을 하자 지종수가 눈을 빛내이며 응대했다.

《선생님생각이 옳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도 아다싶이 지난 2월 23일에 정치군사간부를 키우는 평양학원이 개원되였습니다. 프로독재를 제창하는 공산주의자들로서는 그 정치적수단을 총칼에 의거할수밖에 없겠지요.》

지종수의 얼굴에 적의가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내심을 드러냈다. 눈에서 전에는 볼수 없었던 이상한 빛이 번뜩이였다.

정신옥은 놀란 눈길로 그를 마주보았다. 하지만 믿음이 컸던 나머지 다르게는 생각하지 않았다. 옛 스승의 자세로 깨우치듯 말했다.

《그건 지나친 생각이네. 우리 장군님께서는 인민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하셨지 프로독재를 제창하신적이 없네. 지금 토지개혁이 한창 벌어지고있지만 얼마나 옳은 시책인가. 그뿐아니라 림시인민위원회가 펼치는 모든 정책은 어느것이나 백성들의 의사를 따르고있네. 단지 나는 서로 다른 리념들이 엇갈리고 자주독립국가가 서지 못한 현 조건에서 반드시 피해야 할 군건설을 서두르는것을 못마땅히 여길뿐이네.》

지종수는 서뿔리 속마음을 비쳐보인 자신을 후회하며 표정을 바꾸었다.

《선생님과 같이 진정으로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고 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나 군건설을 저지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일제의 폭압속에서 발표되지는 못했지만 나는 선생님이 이 나라 녀성들의 이름으로 <눈물의 호소>를 피력하셨던 일을 기억하고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선생님과 같이 명망높은분이 그런 용기를 다시 발휘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군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내 생각하는바가 있네. 이번에 중화군의 농촌을 몇군데 돌아보았네. 모두 땅을 분여받고 농민들이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르네. 그런데 어떤 녀성들은 분여받은 땅을 가꿀 손포가 없다면서 나를 보고 간절히 청원하는바가 있었네. 아들과 남편을 평양학원에 보낸 녀성들중의 몇사람들이지. 그들은 평양학원에 간 아들이나 남편이 집에 돌아와 분여받은 땅에서 함께 농사를 마음껏 지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네. 한두사람의 청원이라 하더라도 나는 무심히 듣지 않았네.》

《선생님은 그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신문에 성토문을 쓸 생각이네.》

지종수는 묻지 않고도 그 성토문의 내용이 어떤것인지를 짐작했다. 얼핏 스미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정신옥의 결심을 안다면 얼마나 만족해할가. 하마트면 이 순간 흥분한김에 스미스가 선생님을 만나겠다고 한다는 말을 입밖에 번질번 하였다. 하지만 자제하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참 훌륭한 생각을 하셨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존경하는건 그 어디에서도 정의를 주장하는 용기를 가지고계시기때문입니다. 정의를 말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지키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희생적인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단 말입니다. 선생님에게는…》

《가만, 자네 내앞에서 뭐 새삼스레 그런 말을 하나.》

정신옥은 지종수의 말허리를 자르며 가볍게 힐책했다. 그리고는 분영에게 눈짓을 했다. 거리에 나가서 반찬거리를 사오라는 뜻이였다. 기쁜 소식을 가져온 지종수를 대접하고싶었다. 분영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생님, 제가 뭘 좀 들고온것이 있습니다.… 분영아, 앉아있어라.》

눈치가 빠른 지종수였다.

정신옥은 만류하는 그에게 손을 저었다.

《가만있게. 번번이 자네가 들고오군 하네만 오늘은 내가 대접하겠네.》

서분영은 저자구럭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지종수는 그가 사라진 문쪽을 바라보더니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이제 기환이가 집으로 오겠는데 분영이와 짝을 지어줄 생각이 없습니까?》

《원, 당치않은 소리. 그런 말은 두번 다시 입밖에 내지 말게.》

정신옥은 차마 들어서는 안될 말을 들었을 때처럼 불쾌감을 드러냈다.

《저는 선생님의 가정에 결코 무관심할수가 없기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기환이와 분영이는 어느모로 보나 리상적인 배필이 될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의 여생도 행복할수 있을것입니다.》

《그만하게!》

정신옥은 분기를 드러내며 계속했다.

《그 애들은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친남매이상으로 다정히 자랐네. 나도 분영이를 친딸이상으로 여겨왔고. 만일 임자의 말을 그애들이 들었다면 자신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으로 여길걸세.

임자는 혹시 피가 섞이지 않은것만큼 그들이 결혼을 해도 인륜에 저촉되는것이 없다고 여길수 있겠지. 그러나 절대로 그럴수가 없네. 나는 분영이를 데려다 이날이때까지 키우면서 장차 며느리감으로 생각해본 일이 없었네. 그저 내 딸로만 여겨왔네. 혼사와 인륜에는 피줄관계만 작용하는것이 아니네.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형성된 도덕관념도 작용하는게 아닌가.》

지종수는 얼굴을 붉히였다. 공연한 권고를 했다. 세상에는 양딸로 키운 처녀를 며느리로 삼는 경우가 없지 않은것이다. 하지만 정신옥의 도덕의식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고있다. 그만큼 자그마한 사심도 없이 분영이를 친딸처럼 어머니로서의 애정을 다해 키워왔다.

《선생님, 노여움을 푸십시오. 제가 그만 잘못 생각했댔습니다.》

한순간의 침묵끝에 지종수는 머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정신옥은 노기를 가시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내가 분영이처럼 얌전하고 교양있는 처녀를 며느리로 맞았으면 하는 임자의 심정을 알고있네. 기환이가 이제 집에 돌아오면 임자가 며느리감을 하나 골라보게. 분영이 새서방감도 물색을 하고. 나는 그 애들의 혼례까지 치르어주면 어머니구실을 다한셈이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지종수는 또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정신옥은 그윽한 시선으로 창밖을 바라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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