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동신문

(제 20 회)

 

9. 지경밖을 다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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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불이 너울거리는 방안 한쪽벽에 수묵화가 그려진 병풍을 등지고 앉은 왕유는 자정이 지난무렵인데도 자리에 누울념을 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오늘 하루 있은 일을 더듬어보는중에 개운치 않은 한가지 일이 뇌리를 맴돌며 잠을 이루게 하지 않고있는 까닭에서였다.

왕건은 왕유의 이번 잠행을 칭찬절반, 나무람절반 하며 그닥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 아니였다. 자기 일을 줴버리고 너무 오랜 기간 나가있었다면서 다시는 지경밖을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였다.

왕건은 사람들의 동태를 남모르게 살피며 장악하라고 한 자기의 지시를 왕유가 감감 잊고있다고 나무랐다.

지난해 산동 등주로 떠나기 전에 왕건이 이 일을 부탁한적이 있었다.

그때 왕유는 그 일이 당초의 약조와 차이나는 일이라며 사양하다가 퉁을 맞았었다. 왕궁의 내실들을 돌보는 일도 왕궁의 안전을 기하는 일일진대 그에 덧붙여서 궁중안의 동태를 살피는 일을 도와주면 나쁠게 무언가고 하였던것이다.

왕건은 민심전반으로부터 왕궁내부의 소소한 싱갱이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동향파악을 위한 사조직을 여러개 두고있었다. 왕유자신도 알수 없는 각이한 신분의 사람들이 궁성안으로부터 고려지경밖 사방천리 곳곳에 스며들어가서 소문없이 왕건의 눈과 귀가 되여주고있었다.

왕유는 신라와 함께 거란의 동태를 파악하고 대처하는 일은 신라출신 최언위가 전문으로 맡아하고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최언위는 당나라에 류학도 갔다왔고 신라조정의 관료직도 두루 거치다가 초야에 숨어있었는데 왕건이 고려국을 세운 해에 찾아와 왕유처럼 공개된 관직이 없이 태자사부로 있으면서 뒤에서 왕건을 돕고있는 숨은 모사였다.

이런 최언위가 925년 가을 비밀리에 거란에 사신을 파하는 일을 주관하였었다. 일설에는 그가 직접 사신단의 수석으로 갔다왔다고도 하였다.

하지만 이 일은 왕건이 극비밀리에 한 일이여서 조정안의 대신관료들은 전혀 모르고있었다. 왕건은 그 전해에도 거란에 사신을 보내였지만 왕유 자기에게는 일절 내막을 내비치지 않았었다.

동족 발해국을 해치려드는 거란과 화친이란 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못박고 거란의 국교수립요청을 애초에 밀막아버린 왕건이 이즈음에 지경너머 거란에 대고 두번씩이나 말발굽을 울린것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였다.

924년에 거란에 사신을 파한것은 그 전전해인 922년 2월에 거란에서 약대와 주단바리를 끌고 불원천리 압록수까지 다가와 조심히 고려에 화친과 국교교섭의 첫문을 두드린것을 귀찮게 여기면서 문전박대한것이 너무 지나친감이 있다는데로부터 동방례의지국으로서의 고려의 체모에 흠이 되는 흔적을 남겨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였고 925년 10월에 사신을 보낸것은 거란의 속대를 한번 찔러보자는데서였다.

거란의 발해정복야욕을 꼬집어 규탄하고 고려를 보는 거란의 눈높이를 가늠해보는겸 고려의 강경위압자세를 보여주자는것이였다.

실은 922년 그해에 고려에 찾아온 거란의 첫 사신일행을 고려조정에서는 처음에는 국경침범자로 락인하고 포로로 취급하였었다. 그때 거란사절이 경유해온 구간은 발해 회원부(지금의 내몽고자치구), 안원부(지금의 료녕성)를 거쳐 고려(고려후국)지경안의 압록수까지였다.

고려후국은 발해가 자기의 5경 15부 62주에 포함시키지 않고 독자적인 자치권을 행사하게 한 소국으로서 고구려이후시기부터 발해존립 전기간 존재해왔었다.

발해는 시시각각으로 박두해오고있는 거란과의 전면전쟁을 눈앞에 둔 때이므로 동족인 고려국이 이 지역(고려후국)으로 시급히 영향력을 확대하여줄것을 바라고있었으며 고려가 건국초기에 압록수 량안일대부터 장악한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있었다.

사실을 말하면 압록수 량안일대는 왕건이 궁예시절 그때부터 주근주근 군사를 올리밀어 경계력량을 착실하게 보강해온 곳이였다.

이런 갈데없는 고려지경안에 사전에 승인도 받지 않고 들어선것은 아무리 화친을 표방하러 온 사절이라 해도 용서할수 없다는것이 거란사절을 문전박대한 리유였었다.

아울러 이후에 벌어질수 있는 거란의 령토야욕야망을 애초에 눌러버리려는 사전압박책이기도 하였다. 거란을 대하는 고려의 립장을 명백히 하는 한편 적을 알자면 일정한 대화와 래왕은 해야 하는 외교업무상 필요때문이였다.

왕유가 료동반도일대를 잠행한것은 거란에 점령당한 발해땅의 형편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거란의 차후기도를 판단하여 왕건의 북방전략을 용이하게 뒤받침하려는데 있었다. 물론 거란과 대치하고있는 후량의 조정실태와 민심파악도 포함해서였다.

왕유는 고려의 남진정책이 순조로이 실현되려면 고려북방의 안전이 절대적으로 담보되여야 하리라는 점을 더없이 중시했다.

현재 발해를 타고앉은 거란이 다음의 목표를 어디에 둘것인가. 후량인가 아니면 고려인가. 만약 고려라면 그 시기는 언제일것인가. 그리고 그에 대처하기 위한 방비책은 어떻게 미리 세울것인가?!

좋기는 거란이 지금 자리에 주저앉아 발해점령지를 소화하는데 급급하거나 아니면 중원으로 내닫도록 유도하는것인데 그것까지는 바랄 처지가 못되는 일이였다.

926년에만 해도 3월에는 옛 발해땅의 장령부, 안변부, 막힐부, 정리부일대에서, 5월에는 남해부(오늘의 함경남도일대)에서 폭동을 일으키면서 반거란항전이 그치지 않아 거란은 일시 주저앉아 뭉개고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왕유가 직접 가서 확인해본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있었다. 고려와 접한 압록강이북의 료동일대가 너무도 빨리 평정되여가고있는 형편이였다.

왕유가 다급해난것은 이런 때에 후백제가 거란과 손을 잡고 우아래서 협공하려 하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백에 하나 후백제조정의 어느 한명의 모사라도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나서지 않는다고 단언할수 없다는 생각에 왕유는 몸서리를 쳤다.

왕유는 서둘러 산동으로 건너갔고 호괴를 만난 자리에서 후백제조정에서 이런 꿍꿍이를 하는 단서를 쥐지 않았는가부터 알아보게 하였다.

다행히도 거란도 후백제도 아직은 이런 생각을 하고있다는 정보가 없었다. 한편 후량은 당장은 거란의 남하를 경계하고 대처하느라 고려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미를 보이는것이 없었다.

왕유는 이런 실정을 파악하고 그에 따르는 대처안을 세워가지고 돌아온것인데 왕유의 이런 속내를 넘겨짚지 못했는지 왕건은 왕유가 지경밖을 너무 오래 나가있었다고 나무람을 한것이였다.

그건 그런대로 지나쳐버릴수 있었지만 왕유가 섭섭해하는것은 다른것이였다. 그것은 왕건이 가끔 가다 한번씩 왕유 자기의 비위를 거슬려놓군 하기때문이였다.

천문을 보니 사자별자리가 좌로 치우쳤는데 그것이 무슨 조짐인가고 묻기도 하고 (실은 제자리에 있었지만) 별다름이 없이 제자리에 있다고 하면 그런데 왜 최근엔 벌려놓는 싸움마다 빈번히 패하는가고 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내보이군 하였다.

오늘 저녁도 이런저런 말끝에 또 별자리이야기를 끄집어내고는 자기의 운이 불길하게 그려져있다고 하였다.

무엇을 보고 그러는가고 물으니 꼬리살별이 자기 별자리(왕건은 자기가 사자별자리에 해당된다고 하였다.)의 꼬리쪽으로 가로 그으며 북으로 지나가는것을 보지 못했느냐고 하였다.

왕유가 자기는 미처 보지 못한 일이라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리자 궁예시절엔 그리도 밝던 눈이 지금 와선 왜 그렇게 흐려졌는가고 퉁을 놓았다.

궁예밑에 있었던 일을 거드는것자체가 기분잡치는 일이 아닐수 없는데다 궁예밑에 있을 때보다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말하는데는 속이 알알해지는게 도무지 기분이 나지 않았다.

(페하께서 왜 자꾸 그러실가?…)

뭔가 왕유 자기에게 불만이 있는것은 확실한데 그 갈래를 알수 없었다.

왕유는 왕건이 혹시 자기가 왕궁안의 내실단속을 너무 엄격히 하는것이 고까와서 그러는게 아닌가고 생각해보았다.

왕유가 왕궁안의 내실단속을 엄격히 하는것이란 다른것이 아니였다.

왕유는 왕비 류씨와 짜고서 왕건이 새로 맞아들이는 후실들에 대한 몸단속을 보다 엄격히 하는 제도를 새로 세워놓고 실행하고있었다.

왕건이 임금이 되기 이전과는 달리 임금이 된 이후부터는 왕건이 후실을 정하면 먼저 류씨의 주관하에 나리를 위시한 그밖의 녀의들이 후실의 몸에 별다른 사정이 없는가를 깐깐히 알아보고 정해진 절차대로 가꾸기를 원만히 한 다음에 자리에 들도록 하는것이였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거나 미흡한 점이 있다고 판단되면 하루고 이틀이고 정해진 수준에 올려놓고야 들게 했다. 임금의 신상에 조금이라도 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데서였다.

하지만 그 일은 왕건이 내키는대로만 때를 맞춰줄수는 없는 일이여서 드문히 왕건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적이 없지 않았다.…

그 일때문일가.…

아니다, 왕유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러면…

자기의 운이 불안하게 그려져있다고 한 왕건의 말을 곰곰히 되새겨보던 왕유는 비로소 무릎을 쳤다.

왕건이 자기의 신변안전을 내비친것이였다.

궁예때 후백제가 송악성 왕건의 집에 자객을 들여보냈던 그런 일이 지금의 고려궁성안에서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수 있으랴.

불현듯 왕유의 뇌리에 913년 초가을에 있었던 그 일이 되살아났다.

궁예의 태봉국시절, 왕건이 시중으로 임명되여 1년가량 쇠두레도성에 눌러앉아 조정일을 보고있던 때였다.

그때까지 왕유는 왕건과의 상면이 이루어지지 않고있었지만 왕건의 부인인 류씨나 왕건의 가시아버지인 류천궁과는 련계를 가지고있었다. 류천궁의 조언대로 송악성밖 천마산 수림속의 폭포터(지금의 박연폭포)에 거처를 정하고 태봉국의 조락을 지켜보고있던중이라 송악성에서 벌어졌던 생각만 해도 섬찍한 그 일을 잘 알고있었다.

싸움판에 왕건이 나타나기만 하면 영낙없이 패하는데 약이 오를대로 올라있던 후백제조정에서는 왕건이 태봉국의 왕 다음가는 시중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왕건의 가족을 사살하여 왕건의 기를 꺾어보려는 극단의 결심을 굳히고 주도세밀하게 준비시킨 자객을 들여보냈었다.

그 당시 왕건의 가족들은 쇠두레도성 왕궁안에 있지 않고 송악성안의 본가에 거처하고있었다. 왕건이 사시절 전장을 누비느라 언제 집안에 눌러앉아있을 사이가 없는데도 있었지만 조정의 관직을 가지지 않은 왕건이 부디 쇠두레도성안에 자기 처자를 거느리고 들어가 거처할 명분이 없었기때문이였다.

왕건은 시중이 되여서도 처자권속을 송악에서 데려오는 일을 서두르지 않고있었는데 그만에야 일이 터졌었다.

하지만 왕건의 집안에 대한 후백제의 자객전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때 왕건은 속으로 몹시 놀랐을것이였다. 오죽했으면 궁예까지 펄쩍 놀라 왕건가족을 모두 쇠두레도성안에 들여오게 하였으랴. 그때의 송악성이 바로 지금의 고려국 궁성인것이다.

궁성뿐이랴. 늘쌍 전장에 나가사는 왕건에게 있어서 궁성안에서나 전장에 나가서나 자기를 노리는 적수들의 칼날을 어찌 생각하지 않을수 있으랴.

왕유는 이마를 쳤다. 물론 이 일은 내군을 맡은 박술희나 복지겸이 밤낮으로 빈틈이 없이 하고있는 일이지만 그들의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것이다. 더우기 박술희는 말이 내군장이지 쩍하면 임금을 따라 전장으로 나가기가 일쑤여서 왕궁경비는 복지겸이 혼자서 맡아하는 실정이였다.

박술희가 왕건을 따라 출전하는것은 임금의 신변호위를 겸한것이라 (왕건은 출전할 때 내군력량을 많이 동원하는것을 반대하였고 대신 박술희에게 내군장직을 겸직시켜 그가 전장에서의 자기 호위를 겸하게 하였다.) 응당한 일이기도 하였다.

또 임금이 궁성밖으로 나갔을 때는 궁성방어의 탕개를 늦추어도 별일없으리라 생각할수도 있는 일이였다.

복지겸은 이 점을 늘 불안해하였다.

복지겸은 임금이 궁성안에 있을 때보다 없을 때에 더 각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의 말은 자객은 임금이 궁성에 없는 때에 궁성경비가 늦추어진다고 보고 그때를 노려 미리 스며들려 할수 있다는것이였다.

복지겸은 송악성 궁성안의 경비와 궁성밖의 경비를 다같이 중시했다.

궁성밖 경비는 백보간격으로 정해놓은 고정보초에 의한 감시경계와 야간에 증강되는 순라에 의한 순찰경계외에 사복차림의 경계력량을 두고있었다.

이 사복경계병들은 궁성밖 천오백보 또는 그 이상의 거리에까지 나와서 장사군, 행인 등의 행색으로 차림을 하고 자기가 맡은 구간을 오가면서 지나가는 행인들속에 수상쩍은 기미가 없는가를 탐지하고있는것이였다.

왕유는 그 정도의 내막은 알고있었지만 그것으로 안심할 일이 아니라는것도 생각하고있었다. 이미 후백제의 도성안에 눈과 귀를 들이밀어넣은 왕유였지만 최응이나 복지겸이 지지해준 완산주도성안에 대한 간자전을 실속있게 끌고가야 하리라는 생각으로 늘 모대기고있었다.

그런데 임금한테서 자기의 안전을 내비치는 일을 당하고보니 자기가 지금 하느라 하는 일이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신하라면 누구나 제일먼저 생각하여야 하는것이 바로 임금의 안전이 아닌가.

지금 룡득이네는 아직 맡은 일을 원만히 할수 있는 자리에 배겨들어 가지 못하고있었다.

이태가 지난 지금 룡득이는 호위군사시험에 합격하고 견훤의 왕궁호위군사로 뽑혀들어가는데까지는 성공하였다고 한다. 당초에 계획하였던 목표의 첫걸음은 뗀셈이였다.

하지만 드넓은 궁성안의 어느 한귀퉁이나 지켜서있는 일반호위군사로는 맡은 중임을 원만히 감당해내기가 힘에 겨웠다.

왕유는 룡득이가 군교자리까지 올라가기도 조련치 않으리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속단할수는 없는 일이지만 룡득이는 잠복해있는 전기간 일개 병졸로밖에 지탱하지 못할수도 있는것이였다.

그러나 어찌 되였든 룡득이가 완산주도성 호위군사로 뽑힌것은 천만다행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견훤은 자기의 호위군사들을 체격이 장대하고 무예에 특기가 있는자들을 제가 직접 시험쳐보고 골라서 꾸리게 하는 취미가 있었다.

칼쓰기와 창쓰기, 활쏘기와 말타기는 물론 주먹질, 발길질에 공중돌이, 골받이까지 특별히 표가 나는 재기가 한가지라도 있으면 쉽게 뽑히웠다.

견훤은 룡득이의 머리받기와 공중뒤발질을 보고 합격시켰다.

룡득은 한번은 머리받기로, 한번은 뒤발타격으로 군마를 쓰러뜨렸다.

머리받기를 할 때에는 오른발로 말의 뒤다리가운데에 데룽거리는것을 동시에 내질러 쓰러뜨렸고 발길질을 할 때에는 말잔등에서 공중 튀여올랐다가 떨어지는 속력으로 먼저 말의 허리사등뼈를 타격하여 말이 맥을 잃으면서 비칠거리는 순간을 노려 모둠발로 재차 발꿈치타격을 하여 쓰러뜨렸다.

머리받기를 할 때 발 하나로 말의 배밑 급소를 동시에 타격한것은 자기 이마에 닿는 힘을 조절하여 머리를 보호하자 함이고 발길질할 때 말의 사등뼈를 먼저 내리찍은것은 말이 순간적으로 다리힘을 잃게 하여 잇달은 뒤발질에 쉽게 넘어가게 하려는 꾀였다.

견훤도 다른 군사들도 룡득이의 머리받기에만 시선을 주면서 그의 한쪽발끝이 말의 사채기로 가는것이 진짜타격인것을 가려보지 못하였다. 실지로는 말의 사등뼈를 먼저 내리찍은것이 결정적인 타격인것도 이들은 알지 못하였었다. 뒤발질을 위한 가동작으로 얼리워넘어간것이다.

이렇게 되여 룡득은 어렵게 생각하였던 완산주궁성 호위군사취재에 통과되고 궁성안에 들어가는 첫 임무를 해내였던것이다.

하지만 왕유는 이후에 룡득이로부터 이렇다할 정보가 전해져오지 않아 점차 조바심이 났다.

후백제의 두뇌진, 찍어말하면 견훤이나 그의 모사들속에서부터 왕건을 해치려는 기도를 알아내려 하였던 일은 생각대로 순조로이 될것 같지 않았기때문이였다.

왕건의 핀잔에 가까운 말을 듣고난 뒤여서 왕유는 자기의 할바를 놓고 더더욱 모대기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왕유는 생각끝에 이 문제를 최응과 복지겸에게 의논에 붙여보기로 작정했다.

왕유를 반갑게 맞이한 최응은 사연을 듣고나서 먼저 말을 떼였다.

《전날에 왕유도사께서 견훤의 코밑에 눈과 귀를 들이밀어야겠다 하였을 때 나는 피뜩 어릴 때 우리 마을사람들이 하던 일을 생각했소이다. 범이 많이 나는 시골들에서 늘쌍 있는 일이지오만 내가 살던 고장에서도 호환을 막는 최상의 방법은 범의 움직임을 미리 발견해내는것으로 보고 범의 굴가까이에 사람을 항시 파해놓고있었소이다.

어떤 마을들에서는 범의 굴 가까이에 아예 초막을 쳐놓고 마을장정들이 순번제로 가서 살면서 지키게 하기까지 하였지요. 범이 움직이는 기미를 즉시 알아서 대처하는것이지요.

지금 왕유도사께서 취하신것이 바로 이와 같은 호환방비책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 말이오이다. 집안에 앉아 범의 화를 입느니 집밖에서 호환을 막자, 그래서 가외대첩이라 말해준것 아니오이까.》

《그러나 그것만으론 성이 차지 않고 우리가 목적한바를 원만히 할수 있는 최상의 방도는 아니라 생각되여 그러오이다.》

왕유가 이렇게 말하는데 복지겸이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범이란 놈은 사람이 굴앞에서 초막까지 치고있는걸 보면 제딴에도 어지간히 겁이 나겠지?》

《사람이 지키고있는것이 보이면 겁을 먹을수 있지요. 혹시 나를 잡으러온건 아닐가? 하고… 범도 제 생각은 하고 사는 놈일터이니까.》

이렇게 받아외우던 왕유의 뇌리에 피뜩 한가닥의 생각이 번개를 일듯 번뜩 떠올랐다.

《가만, 우리가 견훤에게 너를 지금 우리 고려가 지켜보고있다 하고 내놓고 엄포를 놓아보면 어떻겠소?》

《내놓고 엄포를 놓는다고요?》

복지겸의 눈에도 열기가 번뜩했다.

《최응학사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시골사람들이 범의 굴앞에 초막을 쳐놓고 지킨다 함은 사람들이 범에게 이놈, 우리가 너를 지켜보고있으니 함부로 거동을 말라 하는 일종의 엄포가 아니겠소?》

왕유의 이 말에 복지겸은 무릎을 치고 최응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견훤에게 직접 통고를 하는것이요. 너희 후백제가 우리 고려임금의 안전을 해치는 경우 너 견훤도 같은 대가를 치를것이니 알아서 조처하라, 이런 통고를 하자는거요.》

왕유는 이렇게 말하고나서 잠간 이마를 짚고 생각을 굴리다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이거 너무 빤드름하고 직선적인게 좀 유치해보이는 일이 아니요? 상책은커녕 하책도 못되는짓인것 같은게…》

《아니, 그런게 아니오이다.》 최응이 즉시 정정했다.

《이 일은 은밀히 하는것과 내놓고 하는것을 병행해도 무방하오이다. 페하의 안전을 위한 일이고보면 방법을 가릴 일이 아니지요. 내놓고 직통으로 들이대는 방법이야말로 상책중의 상책이라고 나는 생각하옵나이다.》

《하오면 그 무슨 통고장 같은것을 만들어 견훤에게 보내야 하는것 아니요?!》

《통고장보다는 약조문이 되여야 하리라 보오이다. 앞서 말한대로 상대방 임금의 안전을 서로가 담보한다는 밀약서지요.》

왕유의 말에 복지겸은 성수가 났다.

《밀약서에 우리가 약조사항이 지켜지는가를 늘 지켜보고있다는것도 찍어밝혀야 하리다. 그리고… 정말로 우리 사람들이 가서 지켜보고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지금 가있는 사람으로야 감당하겠소?》

복지겸의 말에 왕유가 머리를 끄덕였다.

《옳소이다. 나에게 적합한 사람들이 있소이다.》

《후량 산동에서 온 그 검객들을 말하는것이요?》

복지겸이 물었다. 왕유가 이 검객들을 궁성호위군사로 쓸 의향이 없느냐고 복지겸에게 말한적이 있어 복지겸도 이들을 알고있었다.

《그렇소이다.》

《나는 반대없소. 더 필요하면 내 수하의 군사들을 주겠소.》

복지겸은 선선히 응하면서도 걱정을 따라세웠다.

《그들을 완산주에 밀파하는 일이 수월하지는 않으리다.》

《들어가기도 쉽지 않을터이지만 궁성안에 뽑혀들어가기는 더우기 힘들것이요. 먼저 들어간 사람때처럼 무예재기를 기본으로 받아들이는 견훤의 취미가 그대로이면 일없을것이지만…》

《그들의 무예수준은 어떻소? 내 좀 보기요.》

《그러시오이다, 아마 내군장어르신 눈에 찰것이오이다. 그들은 후량의 유명짜하다는 검객들도 간단히 눌러놓던 고급한 무예광들이라오. 그들의 정신상태도 좋소이다. 그들은 신라나 태봉엔 침을 뱉고 떠나갔었으나 새로 선 고려국엔 헌신하리라 마음먹고 자진해서 찾아온걸요. 이들이 송악으로 걸음을 한것은 고려국의 지붕아래서 겨레의 기강을 한껏 떨쳐보자는 욕망에서오이다.

이들은 페하의 측근호위군사도 좋고 일개 군사로도 좋으니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 넣어주면 최선을 다하겠다 하고있소이다.

나는 이들을 페하께 이야기하였고 궁성호위군에 넣는것도 좋지만 더 요긴하게 쓸데가 있으리라 생각되여 천마산 폭포터에 가있게 하였소이다. 준비가 되면 이들을 즉시 완산주에 밀파하겠소이다. 최응학사께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왕유의 물음에 최응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약조문을 완산주도성안에 누가 들고 들어가는가 하는것과 서신을 날라간 사람은 신분이 로출되게 되는데 만약에 견훤이 반대의사를 표명한다면 그를 돌려보내지 않고 죽일수도 있다는것을 생각해야 하오이다. 나의 소견으로는 밀서를 왕유도사님 수하의 검객들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으로 들여보내야 한다는것이오이다. 검객들은 범(견훤)을 지켜보는 임무를 수행해야 할것이라 한명한명이 천금맞잡이인데 함부로 목숨을 내대게 하면 안될 일이오이다.》

《그러니 인명의 손실을 피하면서 서신이 정확히 들어가게 하는 방도는?… 최응학사는 다른 사람의 손이라 하였는데…》

복지겸의 물음에 최응은 미소를 지으며 왕유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일은 왕식렴대광에게 부탁하면 수월히 되리라 생각되오이다. 왕유도사께서 그를 만나 론의해보시옵소서.》

《이 일은 극비밀리에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되는데… 이 일을 아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되겠군.》

복지겸의 말에 최응은 머리를 끄덕였다.

《극비중의 극비여야 하오이다. 하오나 왕식렴대광의 손을 빌려야 서신은 정확히 들어갈것이오이다. 그가 궁예이전부터 삼남일판에 장사줄을 늘여놓고있는걸로 나는 알고있소이다.》

《그건 옳소이다. 참, 이 일은 페하께서도 알고계셔야 할 일이지요?》

복지겸이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무슨 아이들 장난같은 일을 하고들 있느냐고 웃어넘겨버리실것이지요. 나는 모르는것으로 해둘것이니 아직은 정식으로 윤허해달라 제의하지는 마시고 그냥 밀고나가시는게 좋을가보오이다. 참, 그리고 내 생각에는 약조문을 견훤에게가 아니라 견훤의 측근모사인 간무에게 보내는것이 좋을것 같소이다.》

《견훤의 모사에게요?》

《그렇소이다. 견훤도 모름지기 이런 일은 코웃음쳐버리고말수 있소이다. 하지만 모사는 자기 임금의 신변을 생각할것이므로 받아들일수 있지요.》

《그렇군요. 그런데 모사라면 능환이를 먼저 꼽아야 하는것 아닌가요?》

《아니오이다. 능환이보다는 군사를 보좌하는 간무라는 측근모사가 더 적합할것이오이다.》

《간무라면…》

왕유가 머리를 기웃하자 최응이 미소를 지으며 튕겨주었다.

《최승우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소이까?》

《최승우라면… 최치원, 최언위와 함께 한때 신라의 3최라고 꼽아 주던 그 최승우를 말하는것이요?》

《옳소이다. 바로 그 최승우가 견훤에게 와있소이다. 간무라는 지금 이름은 후백제에 와서 고쳐지은 이름이고요.》

《간무가 최승우라… 내가 알건대 그는 신라 진성녀왕때 당나라에 류학갔다가 그곳에서 잠시 벼슬까지 하다가 돌아온 인물이 아니요? 최치원, 최언위와 키를 다투는 문장가라 들은것 같은데…》

《그러던 최승우가 인생방향을 바꾸어잡은것이지요. 돌아와서 보고있노라니 신라조정의 모양새가 엉망인데 최치원은 이미전에 속세로 돌아가고 최언위는 송악으로 찾아오지 않았소이까.

그러자 그는 락심해서 당나라로 다시 갔다가 그곳 형편도 시원치 않자 다시 돌아온것이오이다. 돌아오는 길을 목포로 잡고 후백제지경안에 들어왔다가 도선이 은거해있던 선암사에 들려 운암대사를 만난 뒤에 그의 소개로 견훤을 만나 눌러앉고만것이지요.

그가 군사에도 밝아 견훤은 대체로는 최승우와 아니, 지금은 간무지요, 이 간무와 늘쌍 상종한다 하오이다.

왕식렴대광이 페하께 알려준 자료이오이다. 그러니 약조문을 그에게 보내면 좋은 결실을 볼것이라 믿소이다.》

최응은 녀인의 눈빛같은 고운 눈매로 왕유를 바라보며 말을 맺었다.

《나의 생각을 지지해주고 살을 붙이고 틔여주기까지 하니 정말 고맙기 그지없소이다. 앞으로도 계속 조언을 주기 바랄뿐이오이다.》

왕유는 최응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가만, 내가 세사람중에선 그중 앞서는 무장이라 한가지 보태고싶은것은…》 왕유가 말을 끝맺는데 복지겸이 손을 들며 뒤를 달았다.

《견훤에게 우리 페하와 전장에서 정정당당히 맞서싸울 때에는 안전의 담보를 론하지 말자는것을 밝혀야 한다고 보오이다. 다만 궁성안에 계실 때나 자기 후방지경안에서 정사를 보는 때에만 비렬한 자객전을 하지 않도록 눌러놓는것이요.》

《그 말은 옳소이다. 아닌 말로 전장에서 대결할 때야 서로가 드러내놓고 싸우는것이니 항복하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죽인다 해도 할말이 없는것이지요. 고금을 통털어 전장에서 대결하는 량측이 임금만은 죽이지 말자는 약조를 하고 싸운 례는 있어본적도 없거니와 또 있을수도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그들도 그 점은 알리라고 생각하나이다. 서로가 상대측 궁성에 대한 자객전을 하지 말자는 약조만으로도 모든걸 알아차릴수 있는것이지요.》

최응의 말은 후백제도 아이들이 아니니 대방의 뜻을 충분히 알아서 대처하리라는 뜻이였다.

《여하튼간에 왕유도사께서 오늘 정말 중요한 대책을 하나 세우시였소. 임금의 안전이야말로 국사중의 제일국사가 아니오이까. 왕유도사의 고심어린 노력에 정말이지 머리가 숙어지오.》

《과분한 말씀이시오이다. 우리 고려국의 안전과 부흥이, 겨레통합의 대업이 기어이 실현되려면 우선 페하께서 안전하셔야 될 일이라서 자꾸 이런저런 궁냥을 해보는것이옵니다만…》

《왕유도사, 페하와 한솥밥을 먹어온 나이로 봐도 내가 우인 사람인데 나는 그런 생각을 왜 해내지 못하는지… 난 왕유도사를 칭찬하면서도 한편으론 나를 꾸짖고있소이다.》

《무슨 당치않은 말씀을… 페하를 곁에서 지키는 복지겸어른이나 페하의 머리가 되여주고있는 최응학사나 나에게 비길분들이오이까. 오늘 나를 깨우쳐주어 고맙소이다. 앞으로도 많이 가르쳐주시오이다.》

왕유는 달아오른 마음을 누르며 자리를 일었다.

그리고 서둘러 다을, 오복, 검갑 세 검객을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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