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6월 10일 《우리 민족끼리》

 

6. 10만세시위투쟁

 

6. 10만세시위투쟁은 1926년 6월 조선인민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반대하여 벌린 대중적시위투쟁이다.

6. 10만세시위투쟁은 간악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대한 조선인민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에서는 로동자, 농민들의 혁명적진출이 적극화되고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강화되여 전국적범위에서 반일기세가 앙양되였다. 이러한 때인 1926년 4월 조선봉건정부의 마지막황제였던 순종이 죽은것을 계기로 조선인민의 반일감정이 더욱 격화되였다. 이것은 조선봉건정부에 대한 애착이나 미련의 표현은 아니였다. 나라가 망한 다음에도 순종이 마지막황제로 조선봉건정부를 대표하고있었는데 그마저 없어지니 쌓이고쌓였던 망국의 설음이 다시금 폭발한것이다.

순종의 장례에 참가한다는 명목밑에 《망곡단》의 형식을 빌어 수많은 군중이 서울에 모여들어 군중집회를 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날로 높아가는 대중의 반일기세에 의거하면서 순종의 장례식날인 6월 10일에 전국적인 반일시위투쟁을 벌릴 준비를 비밀리에 추진시켰다. 대중적투쟁기세를 눈치챈 일제는 당황하여 각 도의 경찰대와 군부대까지 동원시켜 서울시내에 삼엄한 경계망을 펴는 한편 인천에 정박하고있던 4척의 순양함 해병들을 《의장병》이란 명목밑에 상륙시켜 대기시켰다. 수많은 군대와 경찰로 삼엄한 경계망을 늘어놓고 대대적인 검거선풍을 일으킨 결과 반일시위투쟁을 준비하던 많은 성원들이 체포되여 난관이 조성되였다. 그러나 선진적로동자들과 청년학생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사태를 수습하면서 처음계획대로 서울에서 대중적반일시위투쟁을 조직하였다.

수만명의 시위군중들은 《조선독립 만세!》, 《일본군대는 물리가라!》 등의 힘찬 구호를 웨치면서 기세를 올렸다. 일제군경들은 확대되는 시위투쟁을 진압하려고 발악하였다. 격노한 시위군중들은 무장한 경관들에게 달려들어 용감하게 싸웠다.

6. 10만세시위투쟁은 일제의 야수적탄압으로 하여 결국 실패하였다.

그러나 이 투쟁을 통하여 조선인민은 반드시 나라를 되찾고 민족의 존엄을 고수하려는 불굴의 의지와 투쟁기세를 과시하였으며 일제식민지통치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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