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3(2014)년 6월 3일 《우리 민족끼리》

 

6. 3봉기

 

6. 3봉기는 남조선일본《회담》의 《조기타결》책동을 분쇄하며 남조선괴뢰도당을 타도하기 위하여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이 벌린 반제반파쑈애국투쟁이다.

6. 3봉기는 주체53(1964)년 5월 20일 《군사정변》조작 3돐과 관련하여 서울대학교마당에서 서울시안의 여러 대학의 5 000여명 학생들이 참가하여 가진 《민족적민주주의장례식 및 성토대회》를 계기로 시작되였다.

당시 청년학생들의 급격한 진출에 겁을 먹은 남조선괴뢰도당은 무장한 《공수단》을 학생탄압에 내몰았다.

분노한 청년학생들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100만학도가 단결하자》는 구호밑에 투쟁대렬의 행동통일을 강화하는 한편 5월 30일부터 종래의 시위투쟁의 범위를 벗어나 실력행사에로 넘어갔다.

6월 2일 서울에서는 외세를 배격하며 남조선괴뢰도당을 반대규탄하는 시안의 여러 대학, 고등학교 학생들과 시민들의 대중적시위투쟁이 일어났다. 이날 3 000여명의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독재<정권> 타도하라!》, 《미국은 가면을 벗으라!》 등의 구호를 웨치면서 시위투쟁을 완강히 벌렸다. 청년학생들은 100여명의 괴뢰경찰들을 까눕혔으며 경찰차들을 마사버렸다. 청년학생들의 시위투쟁은 전주, 청주를 비롯한 지방도시들에도 확대되였으며 남조선인민들과 광범한 사회계의 적극적인 지지와 동정을 불러일으켰다.

6월 3일에 투쟁은 폭력적인 형태로 넘어갔다. 이날 서울시안의 대학,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수만명의 시민들은 반혁명무력의 발악적인 탄압을 물리치고 마침내 괴뢰중앙청을 일시 점령하고 괴뢰국회의사당을 포위하였으며 청와대에까지 육박해들어갔다. 시위자들은 경찰 848명을 까눕히고 서대문경찰서, 안암동, 아현동, 충정로, 동대문파출소를 비롯한 8개의 경찰파출소를 파괴소각하였으며 경찰기동대본부를 점령하였다. 시위자들은 괴뢰군 찦차와 《데모불도젤》, 군용트럭을 빼앗아타고 서울시청, 성동소방대, 중앙선거사무소, 경찰무기고 등을 습격하여 그 일부를 파괴 또는 점거하여 학생탄압에 혈안이 되여 날뛰는 괴뢰경찰을 완전히 제압하였다. 이에 당황망조한 남조선괴뢰도당은 미제의 지시에 따라 6월 3일 서울지구에 파쑈적인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괴뢰군병력을 동원하여 학교를 페쇄하였으며 일체 시위, 집회를 금지시키는 한편 언론, 출판에 대한 엄격한 보도관제를 실시하고 수많은 애국적인 학생, 교수, 언론인들을 체포투옥하였다. 그리고 6월 5일에는 남조선 전역의 대학들에 《방학》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광주, 춘천, 부산, 인천, 목포, 대구, 청주, 음성, 천안 등 지방들에서는 청년학생들과 시위군중들이 경찰과 육박전을 벌리면서 투쟁을 계속하였다. 이와 같이 5월 20일부터 6월 5일까지 17일간에 걸쳐 치렬하게 전개된 6. 3봉기에는 33개 지역의 89개 학교에서 7만 3 5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하였으며 1만여명의 시민들이 합세하였다. 6. 3봉기에서 남조선의 청년학생들과 애국적인민들은 매국적이며 반인민적인 괴뢰정권타도를 전면에 내걸고 투쟁함으로써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의 파쑈통치체제를 밑뿌리로부터 뒤흔들어놓았으며 미제의 조종밑에 남조선괴뢰도당과 일본당국사이에 조급하게 벌어지고있던 범죄적인 회담의 《조기타결》책동을 짓부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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