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0(2011)년 10월 3일 《우리 민족끼리》

정치상식

조선어학회


  조선어학회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혁명투쟁의 직접적영향밑에 조국해방과 조선말의 정리와 보급을 위하여 활동한 애국적인 어문연구 및 운동조직이다.
  조선어학회는 일본말을 《국어》로 선포하고 그 《상용》을 강요하면서 조선말을 짓밟으려는 일제의 조선민족말살정책에 반기를 든 리극로, 리윤재, 정렬모, 한징 등의 애국적인 학자들에 의하여 조직되였다. 1929년 10월 3일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항거하는 언어학자들과 각계층의 인사들은 조선어사전편찬회를 뭇고 조선말의 서사와 그 규범화를 위한 맞춤법을 제정하기로 결정한후 그 담당위원들을 선정하고 이 사업을 밀고나가도록 하였다. 이 과업들을 집행하기 위하여 1931년 1월 10일에 리극로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 우리 나라 언어학계의 주요력량이 집결하여 조선어연구회를 조선어학회로 개편하였다. 이 조직은 일제의 민족문화말살정책에 항거하여 우리 민족의 민족성과 그 넋을 고수하고 조선말과 글을 연구보급하는 어문활동을 벌리는 한편 내적으로는 조국광복을 이룩하기 위한 정치활동을 벌릴 목적과 사명을 띠고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조선어학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왜정말기 국내에서 민족의 넋을 고수하기 위해 치렬한 투쟁을 벌린 조직가운데는 조선어학회도 있습니다.  리극로의 말에 의하면 조선어학회는 1930년대 초에 나왔다고 합니다. 조선어연구회라는것은 그 전신입니다. 조선어학회가 소문도 없이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 그러나 나라가 망한 때여서 온전한 사전을 만든다는것은 매우 힘든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조선어학회 성원들이 그 중임을 스스로 걸머지고나섰습니다. … 민족어사전을 편찬하는 작업은 품이 무한정 드는 일이였습니다. 그런데다가 그들에게는 돈도 없었습니다. 일본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뒤골목에서 가만가만 하는 일이여서 인민들의 후원도 받을수 없었습니다. 말과 문자의 표기에서 통일적인 표준으로 삼을만한것도 변변하지 못한 형편에서 방대한 사전편찬작업을 하자니 얼마나 간고했겠습니까. …  나라가 망한지도 수십년이고 일본말을 모르는 사람은 입이 있어도 벙어리이상으로 천시를 당해야 하는 때에 막돌처럼 버림받던 조선어낱말들을 보물처럼 하나하나 모아 사전에 올렸으니 얼마나 장하고 의로운 애국자들입니까.》  
  당시 조선어학회는 조선어연구활동을 힘있게 벌렸다. 학자들은 조선말사전편찬을 민족적인 중요사업, 학회적인 중심과업으로 제기하였다. 그들에게는 자금도 없었고 말과 글자의 표기에서 표준으로 삼을만한 자료도 매우 빈약하였다. 더우기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면서 위험하고 어려운 악조건에서 비밀리에 편찬사업을 진행하여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민족의 언어를 지키기 위한 의로운 애국활동을 굴함없이 힘있게 벌려나갔다.
  우리 나라에서의 조선말사전편찬사업은 이렇게 일제가 조선어말살을 강요하던 엄혹한 시기에 애국적인 학자들에 의하여 조선어학회가 조직된후부터 본격화되였던것이다. 학회는 1933년에 조선말과 글의 첫 서사규범의 기초로서 《조선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발표하였다. 이어  1936년에 조선말표준안을 사정하여 발표하였으며 1940년에는 외래어표기법까지 제정발표하였다.
  조선어학회는 항일혁명투쟁의 영향밑에 조국광복을 위한 운동도 벌려나갔다. 학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항일무장투쟁조직선과의 직접적인 련계밑에 힘있게 벌어지고있는 무장투쟁소식들과 조국광복회의 창건소식,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접하게 되였으며 날로 강화되는 항일혁명투쟁발전에 투쟁보조를 맞추기 위한 활동을 힘있게 벌리였다. 이로부터 1937년 7월에는 중일전쟁이 일어난 이후의 새로운 정치정세에 맞게 투쟁을 적극화하기 위하여 핵심성원들로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투쟁강령으로 하는 비밀조직을 따로 내오고 그것을 모체로 하여 반일애국투쟁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지향시키였으며 학회와 여러 민족운동조직들을 조국광복회강령실현에로 이끌었다.  학회는 주요국문신문들의 도움을 받아 새 맞춤법을 보급하면서 민족어와 민족글자를 보급하기 위한 투쟁도 보다 적극적으로 벌리였다. 학회는 국내외에 있는 다른 반일단체들과도 깊은 련계를 맺고 활동하였으며 이 과정에 일제와 친일반동들의 방해모략과 분렬책동을 짓부셔 나갔다.
  조선어학회는 비밀리에 대외활동도 적극 벌리였다. 학회는 1935년 영국에서 열린 국제음성학회와 그 이듬해 단마르크에서 열린 세계언어학대회에도 참가하여 일제의 조선어말살책동을 온 세상에 고발하였다.
  조선어학회는 1942년 가을부터 일제경찰의 탄압을 받기 시작하였다. 수십명의 학자들과 관계자들이 체포되고 고문이 너무 지독하여 몇사람은 예심과정에 함흥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일제경찰은 학회를 반일독립단체로 지목하였으나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리면서도 비밀을 끝까지 고수한 성원들의 투쟁에 의하여 항일혁명투쟁의 영향밑에 있는 조직이라는것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학회성원들은 민족의 얼과 조직의 비밀을 지켜 견결한 반일의지와 집단적인 애국심을 발휘하였던것이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일제의 민족어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조선말을 고수발전시키고 그를 통하여 인민들로 하여금 살아있는 조국, 살아서 싸우는 자기 민족을 알게 하는데 적지 않게 이바지하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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