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0(2011)년 10월 1일 《우리 민족끼리》

정치상식

10월인민항쟁


  10월인민항쟁은 1946년 10월 남조선인민들이 미제의 식민지예속화정책과 그 앞잡이들의 매국배족행위를 반대하여 일으킨 전인민적인 반미구국항쟁이다.
  8. 15해방후 남조선은 미제의 남조선강점과 식민지예속화정책으로 말미암아 테로와 학살이 지배하는 무법천지로 변하였다. 남조선의 경제는 혹심하게 파괴되고 인민들은 정치적무권리와 굶주림속에서 신음하게 되였다.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이러한 탄압략탈정책은 인민들의 강력한 항거에 부딪치지 않을수 없었다. 남조선로동계급은 1946년 9월에 식량보장과 임금인상, 미군정의 온갖 폭압의 즉시 중지, 민주주의적로동법령의 실시를 요구하여 총파업을 일으켰다. 이에 대한 미제의 파쑈적탄압이 강화되자 남조선인민들은 대중적인 시위투쟁에로 넘어갔다. 
  10월 1일 대구의 수천명 로동자, 학생, 시민들은 《쌀을 내놓으라!》고 웨치면서 시위투쟁을 벌리였다. 미제침략군과 괴뢰무장경관대는 평화적시위군중에게 총탄을 퍼부어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하였다. 이에 격분한 시위군중들은 《정권을 인민위원회로 넘기라!》, 《북조선에서와 같은 민주개혁을 실시하라!》 등의 구호를 웨치면서 격렬한 투쟁을 벌려 대구시내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대구의 투쟁소식은 삽시에 남조선 전지역에 퍼져갔으며 온 남조선땅은 전인민적반미항쟁의 도가니로 전변되였다. 항쟁군중들은 시위, 파업, 동맹휴학, 군중집회 등을 벌리는 한편 여러곳에서 폭동을 일으켜 경찰서, 군청 등 반동통치기관들을 습격하고 경찰과 악질분자들을 처단하였다. 1946년 9월 남조선로동계급의 총파업으로 시작되여 10월에 이르러 전인민적인 반미항쟁에로 발전한 이 투쟁에는 로동자, 농민들을 비롯하여 청년학생들과 도시소시민 등 230여만명의 각계각층이 참가하였다. 
  이처럼 광범한 대중이 항쟁에로 떨쳐나설수 있었던것은 그들모두의 가슴마다에 북에서와 같은 참다운 민주주의적인 정치하에서만이 인간답게 살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깊이 간직되여있었기때문이다. 남조선인민들은 영웅적으로 싸웠으나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류혈적탄압으로 말미암아 진압당하였다.
  그러나 남조선인민들은 10월인민항쟁을 통하여 북에서와 같이 참다운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해주는 진정한 인민적정치에 대한 갈망과 그 실현을 위한 굳센 투쟁의지를 힘있게 과시하였으며 남조선에서 미제의 식민지통치에 커다란 타격을 가하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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