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식 

평양의 운하유적

 

평양성유적에서 주목되는것의 하나는 운하시설이다. 247년 평양성(청암동성)의 동문근처에는 성안으로 배를 끌어들일수 있게 작은 운하가 굴설되여있었다. 또 427년 평양성에서는 안학궁 서남쪽 가까이까지 운하시설이 있었다. 이것은 다 조세, 공물 등 물자들을 왕궁 가까이까지 편리하게 수상으로 운반하기 위하여 만든 시설이다.

중요한것은 586년 새 평양성 외성안에 근 3km에 달하는 긴 운하를 판것이며 특히 운하입구에 갑문시설을 한것이다. 이 운하는 《평양지》에 의하면 조수를 리용하여 물이 불어날 때에는 많은 로선(갈대로 지붕을 만들어 씌운 배)들이 양명포(일명 로문포)로 해서 동쪽으로 정양문앞까지 물건들을 운반하였다고 하니 고려, 리조중기까지 리용된 운하였다고 볼수 있다. 운하의 두 기슭은 돌로 쌓았다.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이 운하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런데 주체22(1933)년에 다경문밑에서 큰 판석으로 만든 갑문시설이 있었다는것이 알려졌다. 즉 조수의 간만에 따라 수위가 높아졌을 때 갑문을 여닫음으로써 성안 운하의 수위를 보장한것이다. 중세기의 조건에서 이처럼 갑문시설을 갖춘 운하는 다른 곳에는 아마도 없었을것이다.

이것은 고구려사람들의 기술문화수준이 대단히 높았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운하가운데는 외성밖(오늘의 보통강구역 운하동)에 파놓은것도 있다. 이 운하도 두 기슭을 돌로 쌓아올렸고 너비도 10여m나 되는 비교적 큰 운하였다.

이것은 아마도 예비운하, 보조운하였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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