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상식

《신민요》라는 용어의 유래

 

주체22(1933)년 어느날 레코드회사의 전속작곡가로 있던 리면상의 방에서는 여러 작곡가들이 모여앉아 론쟁을 벌리고있었다.
  론점으로 제기된것은 리면상이 작곡한 민요풍의 가요 《꽃을 잡고》를 놓고 그 종류를 어떻게 규정하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물론 《꽃을 잡고》가 창작되기 이전시기부터 새로 자라난 작곡가들속에서 민요형식을 본따서 지은 노래들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시 널리 류행되고있던 대중가요들을 《류행가》라고 부르던 인식그대로 민요풍의 노래들도 《류행가》라는 명칭으로 부르고있었다.
  이것은 작곡가 리면상에게 큰 의문을 주었다.
  (왜 조선의 전통적인 옛 가락을 본따서 지은 민요풍의 노래들을 무작정 《류행가》라고만 하는가? 《류행가》라고 하는 대중가요들과 조상전래의 민족적인 넋을 담은 민요풍의 노래들이야 곡조나 양상도 다르고 가수들의 창법까지도 엄연히 구별되지 않는가. 그래 작곡가들이 지은 노래를 민요라고 하면 안되는가.)
  그리하여 리면상은 《꽃을 잡고》를 민요풍의 곡조를 붙여 레코드취입에 넘기면서 그 종류적명칭을 《민요》라고 달아 내놓았던것인데 이것이 동료작곡가들속에서 론쟁을 일으킨것이다.
  민요에 대한 일정한 식견을 가진것으로 알려진 김룡환이 먼저 의견을 내놓았다.
  《이것을 어떻게 민요라고 할수 있나. 이 노래야 작곡가 리면상의 창작품이 아닌가.》
  그러자 곁에 앉았던 김교성이 풍채좋은 몸통을 뒤로 젖히며 주를 달았다.
  《음, 하긴 작곡가의 창작품을 전통적인 민요가락들과 같은 그릇에 담을수야 없지.》
  그럴만 한 주견들을 가진 의견이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민요라고 하면 그것이 인민들속에서 구두적인 방식으로 창작되고 전해지는 과정에 수많은 가창자들의 재능이 보충된 인민적인 창조물이라는 개념이 지배하고있었던것이다.
  그래서 민요라고 하면 조상전래의 옛 가락이라고만 생각하였으며 여기에 직업적인 작곡가의 개인창작품과 뒤섞을수 없다는 견해들이였다.
  이러한 의견을 의미하며 생각을 굴리던 리면상이 신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자네들의 의견들도 일리는 있다고 보네. 그러나 작곡가의 창조물이라고 하여 민요라고 못할 법은 없다고 보네. 민요를 조상전래의 옛 가락에만 귀착시킨다면 민요라는것은 자기 발전의 일로가 없이 100년전에도 그 가락이요, 100년후에도 그 가락으로 남아있어야 한단 말인가. 아닐세. 민요도 시대의 변천과 함께 발전하는것으로 보아야 하네.》
  잠자코 듣고있던 전기현이 머리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허허, 역시 면상선생다운 주장일세. 그렇게 보면 작곡가도 이 땅에 태를 묻은 백성이니 민요를 짓지 못할 법이야 없지. 그런데 사람들에게 정확한 인식을 주자면 무슨 구별은 줘야 할것 같구만.》
  그때 리면상이 무릎을 치며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그렇지! 전통적인 구전민요와는 다른 새로운 민요라는 뜻에서 새 <신>자를 덧붙여 <신민요>라고 하면 어떻겠나?》
  《그게 좋겠네. 신문화운동의 추세에도 어울리는 용어일세.》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적합한 용어라고 찬동하였다.
  그리하여 《포리돌》레코드회사에서 제작한 소리판에 처음으로 《신민요》라는 새로운 용어가 붙기 시작하였고 그후 다른 레코드회사들에서도 이것을 본따 새로 창작한 민요풍의 노래들에다가 《신민요》라는 명칭을 달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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