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7월 15일 로동신문

 

  공화국력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지식인들

백두산을 노래한 혁명시인 조기천

 

우리 공화국의 력사에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희생되였지만 오늘도 시대의 명작과 함께 영생하는 혁명시인이 있다. 그가 바로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창작한 조기천선생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기천은 언제나 시대의 가장 본질적인 사상정서를 노래한 혁명시인이였습니다.》

혁명시인 조기천은 1913년 함경북도 회령군(당시)에서 출생하였다. 일제가 우리 나라를 강점한탓에 그는 부모를 따라 다른 나라에 갔다. 청소년시절을 이국땅에서 보냈지만 그는 조국에 대하여 언제나 잊지 않았고 모국어에 대한 학습을 꾸준히 하였다. 더우기 백두의 눈보라를 헤치시며 일제놈들을 통쾌하게 족치시는 항일의 전설적영웅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는 조국해방의 날을 굳게 믿었다.

뜨거운 조국애를 안고 살아온 그는 나라가 해방되자 조국으로 귀국하였으며 창작의 나래를 활짝 펼치였다. 주체35(1946)년에 해방의 기쁨을 노래한 서정시 《두만강》을 발표한 후 《땅의 노래》, 《을밀대에서 부른 노래》를 련이어 창작하였다.

이해에 그는 꿈결에도 그리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옵는 크나큰 영광을 받아안게 되였다. 이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기천선생이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도 우리 말을 열심히 익히고 조선문학을 공부한데 대해 높이 치하해주시였으며 그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주시여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있었던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온 조기천선생은 커다란 창작적흥분과 열정에 휩싸이게 되였다. 그는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과 고매한 풍모를 장편서사시 《백두산》에 담기 위하여 길도 제대로 나지 않은 천고의 밀림을 헤치고 백두산에 올라 시상을 무르익혔으며 시어를 한자한자 골라서 서사시를 엮어나갔다.

민족의 태양을 모신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심장의 피를 끓여온 조기천선생은 항일의 전구를 밟으며 창작한 장편서사시를 어버이수령님께 직접 랑송해드리였다. 하여 장편서사시 《백두산》은 주체36(1947)년에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어버이수령님을 형상한 장편서사시로 태여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령도밑에 인민의 행복이 꽃펴나는 조국을 열렬히 사랑한 조기천선생은 불같은 정열을 쏟아부어 《흰 바위에 앉아서》, 《보뚝에서》, 《휘파람》과 같은 훌륭한 시작품들을 창작하였으며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종군작가로 인민군군인들과 함께 락동강까지 나아갔다. 그때에 보고 듣고 느낀 강렬한 체험에 기초하여 그는 《불타는 거리에서》, 《문경고개》, 《조선은 싸운다》, 《죽음을 원쑤에게》, 《나의 고지》를 비롯한 전투적인 시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준엄한 전쟁시기에 작가, 예술인들을 만나주시여 그들의 창작활동을 고무해주시였으며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의 영웅적인 투쟁을 진실하게 반영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뼈에 새기고 조기천선생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인민군군인들을 원쑤격멸에로 부르는 시창작을 벌리였다.

우리 공화국력사에 조기천선생이 남긴 생의 자욱은 길지 않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기천선생이 조국과 혁명앞에 세운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혁명시인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안겨주시였으며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혁명영화로 각색하도록 하시고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예술영화도 만들도록 해주시였다.

혁명시인 조기천선생의 값높은 삶은 우리 공화국은 곧 절세위인들의 품이며 대를 이어 수령복을 누려가는 우리 인민의 앞길에는 오직 승리와 영광만이 있다는 철리를 깊이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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