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11월 20일 《로동신문》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펼치고

소사하에서 간직하신 어머님의 모습

 

강반석어머님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추억의 세계는 한없이 숭고하고 뜨거운 사연들로 엮어져있는것으로 하여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울리고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그 준엄하고도 시련에 찬 길에서 혁명가의 신념을 검열하는 그런 곡경에 처할 때마다 나는 그 어떤 리념이나 철학적명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나를 남만으로 떠밀어보내면서 어머니가 하던 말씀과 흰옷을 입고 나를 바래주던 어머니의 마지막모습을 회고하며 의지를 가다듬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강반석어머님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회고하시였다.

주체21(1932)년 남만원정준비를 본격적으로 다그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대를 찾아온 김철주동지로부터 어머님의 병세가 위독해져 이제는 음식마저 전페하시였다는 소식을 받으시고 그 다음날로 소사하의 토기점골로 떠나시였다.

위독한 병세를 감추시며 아드님을 반갑게 맞이하신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신 좁쌀 한말이 들어있는 쌀자루며 종일 산에 올라 해오신 땔나무단을 두고 이렇게 심각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네가 쌀자루까지 지고다니며 어머니를 부양하게 될줄을 나는 몰랐다. 앓고있는 이 에미걱정때문이겠지. 너의 효성이 지극하니 고맙기는 하다만 그만한것으로 위안을 받을 내가 아니다.

…너에게는 더 큰일이 있다. 아버지의 유언을 지켜야 하지 않겠니.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조선사람이 얼마나 많으냐. 내 걱정은 말구 어서 네 갈길이나 빨리 가거라.》

그때를 두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에 어머니의 인생관이 마디마다 집약되여 그것이 온 심혼을 폭풍처럼 흔들어놓으며 페부에 깊숙이 새겨지는 천금같은 순간이였다고 쓰시였다.

어머님께서는 잠시 숨을 돌리시고나서 이 세상에 어머니나 동생들이 없었던셈치고 집걱정은 아예 말라고 하시면서 부대를 데리고 곧 떠나라고, 그것이 자신의 소원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머니는 녀성으로서는 실로 드물다고 할만치 강의한 성품을 지니고있었다고, 이런 어머니였기때문에 그처럼 쓸쓸한 병상의 고독속에서도 서슴없이 아들이 갈길을 재촉할수 있었고 아들에게 매를 대는 심정으로 온몸과 넋이 짜릿짜릿하게 한생의 좌우명으로 되는 심각한 훈계의 말씀을 해줄수 있었던것이라고 회고하시였다.

그때 어머님에 대한 하많은 걱정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뜻 집을 떠나지 못하시였다. 강반석어머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이렇게 이르시였다.

《상기두 무엇이 걱정돼서 그렇게 떠나지 못하구 우물쭈물하느냐? 나라를 찾겠다구 결심품구 나선 사람이 그렇게도 마음이 예리고 집걱정이 많아서야 어떻게 대사를 치르겠니.

…빼앗긴 나라를 생각하구 백성들을 생각해야 한다.

…너두 조선의 사내라면 맘을 크게 먹구 걸음을 크게 떼야 할게 아니냐. 네가 장차로도 이 에미걱정때문에 집으로 찾아올 생각이라면 아예 이 문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라. 나는 그런 아들은 만나지 않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처럼 의에 불타고 열로 빛나는 강직하고 숭고한 어머니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고, 어머니는 온몸에 불붙는 그 의와 열로 하여 순식간에 재가 될것같은 형상이였다고 하시면서 《그때의 모습은 차라리 어머니라기보다도 스승에 가까운 모습이였다.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 고마운 어머니를 모시고있다는 자랑으로 하여 나는 가슴이 터져나갈것만 같은 행복감을 느끼였다.》고 회고하시였다.

정녕 세상에 이처럼 강직한 어머니, 이처럼 애국적이고 희생적이며 순결무구한 어머니의 사랑이 그 언제 있었던가.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서 바라는것이 무엇이며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어떤 진정을 바쳐야 하는가를 강반석어머님의 그날의 모습은 오늘도 뜨겁게 가르쳐주고있다.

본사기자 최혁철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