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6월 4일 《로동신문》
《혁명전우관》련속참관기
옥도리를 3년이나 에돌아다니신 사연
조선혁명박물관 《혁명전우관》에는 로력영웅이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였던 룡강군 옥도협동농장 관리위원장(당시) 림근상동지에 대한 자료도 전시되여있다.
이 자료를 통해서도 우리는 수령과 전사사이에 맺어진 혁명적동지애의 세계를 뜨겁게 절감할수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오랜 기간 혁명을 해오시면서 그가 누구든 일단 동지적관계를 맺으시면 그의 운명과 미래를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해주시였으며 수천수만의 혁명전사들을 한품에 안아 크나큰 믿음을 주시고 온갖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주체59(1970)년 이른봄 어느날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천일대를 현지지도하시기 위하여 그곳으로 떠나시였다.
평양-남포도로(당시)를 따라 달리던 승용차가 룡강쪽으로 꺾어들었을 때였다.
문득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운전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시는것이였다. 승용차가 멈춰서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없이 차창밖의 어느 한곳을 한동안 바라보시였다.
그러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포쪽으로 차를 돌리라고 나직이 말씀하시였다. 사실 온천으로 빨리 가자면 직선길이라고도 할수 있는 룡강쪽으로 나진 길을 리용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만약 남포쪽으로 향한 길을 리용한다면 상당한 정도로 길을 에도는것으로 되였다.
동행한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께 어디 다른데 들리실 곳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천으로 간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렇다면 왜 길을 에돌아가려 하실가?)
그러는 그들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옥도리앞을 지나가고싶지 않아 그런다고 하시였다.
이윽하여 승용차가 남포방향으로 꺾어들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림근상동무가 없는 옥도리앞을 지나고싶지 않다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순간 일군은 물론 운전사의 가슴속에는 불덩이같은것이 울컥 치밀어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림근상동지를 얼마나 위하시였는지 너무도 잘 알고있던 그들이기때문이였다.
언제인가 그가 만든 파종기를 보시고 못내 기쁘시여 북두갈구리같은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진짜농민의 손을 잡아본다고, 참 잘 만들었다고 값높은 치하를 주시고 또 언제인가는 손수 종이에 그림도 그려주시며 마을의 건설전망설계를 만들어가지고 한번 해보라고, 근상동무가 해야지 누가 하겠는가고 크나큰 힘을 안겨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옥도리를 통과할 때면 늘 운전사에게 차를 천천히 몰라고 이르시고는 림근상동무가 달려오지 않을가 은근히 기다리기도 하시고 그러시다가 정작 그를 만나시면 기쁨에 넘치시여 그와 흉금을 터놓고 농사문제를 의논해주신 우리 수령님의 따뜻한 손길에 이끌려 그는 온 나라가 다 아는 어엿한 농촌혁명가로 자라날수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받으시고 우리 수령님 슬픔을 억제하지 못해하시며 당에 충실한 아까운 농촌혁명가를 잃었다고 못내 가슴아파하신 이야기는 또 얼마나 뜨거운것인가.
이때부터 3년동안이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천일대로 가실 때면 남포방향으로 에돌군 하시였다.
이 세상 그 어디에 한 나라의 령도자가 평범한 농촌일군과 맺은 정을 소중히 여기시고 두고두고 잊지 못해하신 그런 이야기가 새겨진적 있던가.
옥도리를 3년이나 에돌아다니신 사연,
그를 통해서도 우리는 심장깊이 절감할수 있다.
우리 수령님이시야말로 가장 뜨거운 동지애, 고결한 인간미를 지니신 불세출의 위인이시였다는것을.
본사기자 최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