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6월 1일 《로동신문》

 

영예군인미술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는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사회제도입니다.》

사람들은 락랑구역 락랑1동 69인민반에 사는 강철동무를 두고 영예군인미술가라고 부르고있다.

영예군인미술가, 결코 례사롭게 대할수 있는 부름이 아니다.

하다면 무엇이 하반신이 마비된 영예군인에게 그렇듯 놀라운 힘과 열정, 의지를 안겨준것인가.

강철동무가 군사임무수행중 뜻하지 않게 부상을 당한것은 20대초엽이였다. 그때 그를 괴롭힌것은 자기의 일신상에 대한 우려만이 아니였다. 나라에 아무런 보탬도 줄수 없다는, 벅찬 시대의 흐름에서 밀려나게 되지나 않을가 하는 두려움이였다고 한다.

이런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사랑과 정을 기울이였다.

구역의 책임일군들과 인민반주민들이 친혈육이 되여 따뜻이 돌봐주었고 나어린 소년단원들까지도 자주 찾아와 노래도 불러주며 힘을 안겨주었다.

평범한 영예군인에게 와닿는 사회적혜택은 또 그 얼마인지 몰랐다. 나날이 뜨거워만 가는 사랑은 그에게 생의 활력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언제부터인가 그의 가슴속에는 아름다운 사회의 현실을 화폭에 담고싶은 소원이 깃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기가 방조자의 도움없이 한걸음도 움직일수 없는 몸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어 그는 모대기였다.

그러던 어느날 낯모를 사람이 그의 집을 찾아왔다. 청년중앙회관 미술소조 지도교원이였다.

《동무와 같은 영예군인들이 누구보다 보람있는 삶을 누리게 해야 한다는것이 우리 당의 뜻이요. 우리가 도와주겠으니 용기를 내라구.》

이렇게 그는 미술소조원이 되였다. 그날부터 그의 집에서는 이동강의가 진행되였다. 지도교원과 함께 매일과 같이 찾아오는 미술소조원들속에 후날 강철동무의 한생의 길동무가 되여준 한성옥동무도 있었다.

몇해후에는 그에게 반가운 소식이 또 전해졌다. 그가 평양미술대학에 입학하여 통신교육을 받게 되였던것이다. 꿈만 같았다. 강철동무가 대학생이 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축하의 꽃다발이며 붓과 연필을 안고…

그는 제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고맙고 그런 사람들을 키워준 사회주의조국이 고마왔다.

그렇지만 영예군인의 몸으로 미술공부를 한다는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때마다 자기를 친혈육처럼 위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영예군인들을 적극 우대하고 내세워주는 사회주의조국의 사랑을 되새기며 이를 악물고 손에 붓을 들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그가 안해와 함께 완성한 첫 작품에 축전상과 함께 금메달이 수여되였다.

그후 그들부부는 나란히 조선미술가동맹 맹원이 되여 벅찬 시대의 숨결을 화폭에 담았다. 그들의 작품들은 전국적으로 진행된 여러 전람회에 출품되여 참관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얼마전 우리와 만난 자리에서 강철동무는 이렇게 말했다.

《사회주의제도가 아니였다면 제가 어찌 오늘처럼 영예군인미술가로 사회와 집단의 존경을 받으며 살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영예군인미술가는 힘차게 붓을 달리고있다.

영예군인들을 나라의 귀중한 보배로 떠받들어주고 내세워주는 사회주의제도와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고 진정을 다해 위해주는 친혈육과도 같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안고, 군사복무시절처럼 삶의 순간순간을 보람있게 수놓아갈 불같은 열의를 안고.

글 및 사진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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