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5월 29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죽음의 고역살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과거 일본제국주의는 거의 반세기동안이나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조선인민을 가혹하게 착취하고 야만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해방전 일제에게 짓밟힌 우리 인민의 피눈물의 원한은 현해탄건너 이역의 지하막장에도 력력히 서리여있다.

황주군의 어느한 마을에서 지주놈의 머슴살이를 하던 염치근은 17살 나던 해 봄에 일본 혹가이도의 탄광에 끌려갔다. 수십명의 조선청년들과 함께 그가 배치된 갱은 위험요소가 제일 많은 3호갱이였다.

갱안에서의 작업은 첫날부터 인간이하의 천대와 멸시속에 진행되였다. 조선사람을 짐승만도 못하게 여긴 왜놈들은 쩍하면 그들에게 채찍을 휘둘렀고 아무러한 안전보호시설도 없는 갱에서 하루에 20시간 지어 22시간씩 고역을 강요하였다. 그로 하여 갱에서는 사고가 매일같이 련발하였고 생때같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염치근이 탄광에 끌려온지 1년반이 되던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그는 무더위속에서 알몸으로 탄차를 밀고있었다. 그런데 곁에서 함께 일하던 영수라는 소년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그자리에 쓰러졌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온종일 살인적인 로동강도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차례지는것이란 작은 그릇에 골싹하게 담긴 콩깨묵이나 새알같은 감자 몇알이 고작이였다. 합숙이라는것도 좁디좁은 방에 30명이상씩 쓸어넣은탓에 잠마저 제대로 잘수 없었다. 그러니 억대우같은 장정들도 힘에 부치는 고역살이에 영수같은 소년이 견딜리 만무하였던것이다. 게다가 영수는 학질까지 걸려 운신하기조차 힘든 상태였다.

페갱속에 소년을 눕히고 탄을 부린 염치근이 물을 떠가지고 돌아오고있을 때였다. 《거마리》라고 불리우는 감독 오무라놈의 돼지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달려가보니 영수를 발견한 왜놈감독이 그를 사정없이 때리고있는것이 아닌가.

염치근은 감독놈에게 다가가 이 애는 앓고있다고, 영수몫까지 내가 하겠으니 사정을 좀 봐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조선사람에게 고통을 주는데서 쾌락을 느끼는 왜놈살인귀에게 그의 말이 통할리 없었다.

조선사람은 탄을 캐다가 죽어도 마땅하다고, 석탄이 네놈들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다고 지껄이며 감독놈은 무작정 영수를 작업에로 내몰았다. 하는수없이 떨리는 몸으로 작업에 나간 영수는 끝내 탄차에 깔려 숨지고말았다.

그렇게 한많은 세상을 떠난 사람이 어찌 영수 하나뿐이겠는가. 수많은 조선사람들이 이역의 수천척지하막장에서 망국노의 한을 품은채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그것은 나라를 빼앗긴탓에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겪지 않으면 안되였던 피눈물나는 운명이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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