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4월 12일 《우리 민족끼리》
[한평생 인민들속에서] 한 농촌청년의 성장에 깃든 이야기

사무치는 그리움의 세월이 흐르고흐르는 이 땅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의 태양으로 높이 솟아오르신 때로부터 111돐의 년륜이 새겨지고있다.
기나긴 그 세월 추억이 아닌 오늘의 생활속에서, 마주오는 래일의 행복속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늘 뵈오며 그이와 함께 사는 우리 인민이 마음속으로 되새겨보는 말이 있다.
한평생 인민들속에서!
이 짧은 말속에 위대한 수령님의 천출위인상이 어려있고 가없는 우주에도 다 담을수 없는 그이의 심오한 철학이 있으며 위대한 력사가 집약되여있거니,
진정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생애를 함축할수 있는 말이 있다면 인민들속에서, 오직 이 한마디일것이다.
오늘도 위대한 태양의 모습을 숭엄히 우러르는 우리 천만인민은 언제나 인민을 하늘처럼 여기시며 한평생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시고 인민대중의 힘에 의거하여 승리와 번영의 력사를 창조하여오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의 위대한 한생을 가슴뜨겁게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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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은 이민위천을 평생의 지론으로,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을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오신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십니다.》
사회주의농촌진지를 강화하는것은 우리 당이 중요하게 내세우는 문제의 하나이다.
나라의 곳곳에서 농촌마을들이 사회주의리상촌으로 전변되고 수많은 청년들이 농장으로 탄원해가는 미더운 모습들을 볼 때마다 잊을수 없는 하나의 이야기가 돌이켜진다.
수십년전 어느날 평안남도 순안군 중석화리(당시)를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 농촌집에도 들리시였다.
그이께서 이 집을 찾으신것은 처음이 아니였다.
3년전에도 찾아오시여 각별한 정을 기울이시였고 한달전에도 들리시여 가정형편을 념려해주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집 아들에게 나이는 몇살인가, 공장에서 무슨 일을 하였는가 하는것을 일일이 물으시였다.
사실 그는 어느한 전문학교(당시)를 졸업하고 얼마전까지 시내에 있는 식료공장에서 일하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 집을 다녀가시였다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돌아왔었다.
그는 고향을 떠났던 자신이 부끄러워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그러는 그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부한 젊은 사람들이 공장이나 도시에만 가있으면 농촌은 누가 떠메고나가겠는가고 가볍게 나무라시였다. 그러시고는 고향농촌을 타고앉아야 한다고, 그래서 아버지가 못다한 일을 주인이 돼서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청년들을 묶어세워서 농촌앞에 나서는 큰일들을 떠받들고나가는 기둥이 돼야 한다고 믿음어린 당부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심장에 새기고 그는 아버지가 목숨바쳐 지켜낸 고향땅을 더욱 살기 좋은 문화농촌으로 만들기 위해 앞장에서 청년들을 이끌어나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사랑과 믿음속에 리민청위원장(당시)으로 사업하던 그는 민청중앙학교(당시)에서 공부하게 되였다.
그 나날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대회의 주석단에 앉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그를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반가와하시며 민청위원장일을 잘해서 핵심을 튼튼히 꾸리고 민청원들이 동맹조직생활을 잘하도록 교양해야 한다고 다정히 이르시였다.
고향의 믿음직한 주인이 되여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다해나가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고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그는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의 손길이 있었기에 평범한 농촌청년이였던 자기가 오늘과 같이 값높은 삶을 누릴수 있은것 아니던가.
그의 가슴속에는 이런 맹세가 불타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땅, 전세대들의 피땀이 스며있고 고귀한 넋이 깃들어있는 고향땅을 대를 두고 지켜가리라.
못잊을 그날의 이야기는 사회주의농촌의 강화발전을 위해 끝없는 심혈과 로고를 바치신 위대한 수령님의 고귀한 한평생을 뜨겁게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