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3월 16일 《우리 민족끼리》

 

세대를 이어 영원불멸할 조선혁명의 천리길

 

우리 공화국의 변혁적발전을 위한 새로운 국면이 열리고있는 격동적인 시기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배움의 천리길에 오르신 100돐을 맞는 우리 인민의 감회는 참으로 류다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주체혁명위업의 승리적전진과 완성을 위한 만년초석을 마련하신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이시며 주체의 태양이시다.》

배움의 천리길,

이 땅의 누구나의 마음속에 소중히 새겨져있는 길이다.

주체12(1923)년 3월 16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의 뜻을 받드시여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단신으로 배움의 천리길에 나서시였다.

그날은 아침부터 눈보라가 일고 바람이 사납게 불어쳤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속에는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던 아버님의 말씀이 굳게 자리잡고있었다.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알아야 한다!

김형직선생님의 이 말씀에는 일제의 발굽밑에서 신음하는 겨레의 불행과 설음을 깊이 체험하고 우리 나라의 력사와 문화를 더 잘 알아야 빼앗긴 내 나라를 다시 찾을 불타는 애국심을 가슴깊이 간직할수 있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배움의 천리길에 오르시던 때를 추억하시며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나는 지금에 와서도 그때 아버지가 나를 조선에 내보내준것이 옳은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우리 아버지가 열두살도 되지 않는 자식을 당시는 무인지경이나 다름없었던 천리길에 홀로 내세운것을 보면 보통성미가 아니였다. 그 성미가 오히려 나에게는 힘으로 되고 믿음으로 되였다.》라고 쓰시였다.

압록강을 건너 천고의 수림을 헤치고 찬바람, 눈보라 휘몰아치는 험한 령을 수없이 넘어야 하는 이 천리길은 참으로 멀고도 힘겨운 로정이였다.

그 길에 10대의 어리신 아드님을 선뜻 세우신 김형직선생님. 결코 쉽게 내릴수 없는 용단이였다.

그러나 혁명은 한세대에 끝나는것이 아니였기에 일찌기 자제분들께 대를 이어서라도 기어이 제힘으로 간악한 일제침략자들을 몰아내고 이 땅에 인민의 새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지원의 사상과 열렬한 조국애를 심어주신 김형직선생님이시였다.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기억속에 생생히 남아있던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강도들이 집에 들어와 칼부림을 하는데 목숨을 살려달라고 아우성친다고 그 강도놈이 목숨을 살려줄리는 없다. 집밖에 있는 놈도 역시 강도라면 아우성소리를 듣고 달려와 도와줄리는 없다. 제 목숨을 지키려면 제힘으로 강도놈들과 싸워야 한다. 칼든 놈하고는 칼을 들고 싸워야 이길수 있다.》

이것은 그대로 민족자력으로 일본제국주의를 타승하고 무산민중의 권리와 리익을 보장하는 새 사회를 건설하시려는 김형직선생님의 드팀없는 신조였고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속에 새겨주신 자력자강의 넋이였다.

지금도 푸르러 설레이는 남산의 소나무를 그려보느라면 위대한 수령님께 사철 푸르른 소나무처럼 강의한 의지를 지니고 곤난과 시련을 맞받아나가 나라의 독립을 기어이 이룩하여야 한다고 하시던 김형직선생님의 간곡한 당부가 들려오는듯싶다.

그날에 하신 아버님의 간곡한 당부, 절절한 념원을 심장에 새기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배움의 천리길에 오르시였다.

압록강을 건느시여 조국땅 포평에 들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낯익은 거리를 걸으시며 깊은 추억에 잠기시였다.

팔도구에 있는 동무들과 이곳에 오시여 씨름도 하시고 또 언제인가는 포평상점에 들리시여 어머님께서 주신 돈으로 운동화가 아니라 어머님의 고무신을 사가신 일, 아버님의 말씀을 받들어 자주 이곳에 오시여 통신도 전달하시고 비밀우편물과 출판물들을 가져다드리시던 일…

잊을수 없는 그 나날을 더듬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평을 지나 두지동을 거쳐 하산령을 넘어 월탄리에서 하루밤을 주무시였다.

다음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높고 험한 오가산령으로 향하시였다.

해발 천여m가 넘는 오가산령은 울울창창한 천연원시림으로 뒤덮여있어 대낮에도 어두컴컴하고 맹수들이 수시로 나타나군 하였다.

그래서 어른들도 혼자서는 감히 이 령을 넘을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런데다가 때는 아직 초봄이여서 눈이 키를 넘게 쌓여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험산준령도, 북방의 칼바람도 겨레의 운명을 생각하시며 눈길을 헤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걸음을 멈춰세우지 못하였다.

주체12(1923)년 3월 29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향 만경대에 도착하시였다.

고향집사립문으로 들어서시는 우리 수령님을 보시며 달려나오신 조부모님의 심정이 어떠했으랴.

할머님께서는 너무도 어리신 나이에 천리길을 걸어오신 위대한 수령님께 네가 아마 몇해후면 백두산에 걸터앉아 동해바다에다 대고 발을 씻자고 할게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의 현실을 알기 위하여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

정녕 그 길은 오직 자체의 힘으로 조국과 인민, 민족번영의 위업을 이룩해나가실 위대한 혁명가, 절세의 애국자의 신념의 맹세가 자욱자욱 빛발치는 거룩한 행로였다.

그 맹세는 그대로 광복의 천리길과 항일대전의 총성으로 이어져 삼천리금수강산에 조국해방의 환희를 안아왔고 자주, 자립, 자위의 불패의 사회주의조선을 일떠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신 때로부터 강산도 변하고 세대도 여러번 바뀌였다.

흐르는 세월은 모든것을 잊혀지게 한다지만 혁명의 천리길우에 남기신 우리 수령님의 거룩한 자욱은 오늘도 천만의 가슴마다에 깊이 간직되여있다.

위대한 력사와 전통은 위대한 계승으로 빛난다.

배움의 천리길은 혁명의 계승자들, 백두의 후손들이 영원히 심장에 새기고 따라걸어야 할 위대한 애국의 길이다.

하기에 오늘도 우리 새세대들은 절세위인의 불멸의 그 발자취를 따라 혁명의 길을 꿋꿋이 이어갈 불같은 결의를 안고 주체의 한길로 억세게 나아가고있다.

우리 인민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쳐 억년 드놀지 않을 신념을 안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온 혁명의 천리길을 끝까지 가고갈것이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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