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2월 28일 《민주조선》

 

피눈물나는 노예살이

 

세월이 흐르고 세기가 바뀌여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는 일제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있다.

금야군 수룡리에서 살던 김명준로인도 10대의 어린 나이에 일제놈들에게 끌려가 가혹한 노예로동을 강요당한 수난자의 한사람이였다.

1943년 초가을 어느날 아침 어린 명준은 일본놈의 마수에 걸려 수십명의 자기또래 소년들과 함께 화차에 짐짝처럼 실려 고향을 떠나게 되였다.

10대의 소년들을 꼬드겨 부산까지 끌고간 일본놈은 그들을 배에 태워 일본의 어느한 군수공장으로 끌고갔다.

거기에는 벌써 수백명의 조선사람들이 끌려와 고역을 치르고있었다.

처음으로 공장에 들어서는 어린 명준의 가슴은 놀란 새마냥 활랑거렸다.

공장안에 가득찬 뽀얀 먼지, 고압전류가 흐르는 개방된 위험한 로앞에서 땀을 흘리며 비칠거리는 자기또래의 소년들.

그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쳐 눈을 감고 주춤했다.

이때였다.

갑자기 휙- 하는 휘파람소리와 함께 감독놈의 가죽채찍이 연방 명준의 어깨로 날아들었다.

《이 자식 뭘 멍청하니 서있어. 여기가 바로 네 일자리란 말이다. 빨리 빨리 일이나 해!》

피흐르는 어깨를 한손으로 싸쥔 어린 명준이는 로앞으로 다가갔다.

그때부터 그의 피눈물나는 노예살이가 시작되였다.

하루에 12~16시간 뜨거운 열이 내뿜는 로앞에서 시달리고나면 서있을 맥도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정신만 약간 헛팔아도 고압선에 감전되여 목숨을 잃을수 있었다.

매일 초긴장과 힘든 노예로동으로 허약해진 사람들에게 일본놈들은 콩깨묵으로 지은 《밥》에 절인 무우 몇쪼박을 던져주었다.

그러다나니 공장에서는 매일과 같이 사고가 났다.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너무 배가 고파 잠들지 못하고있던 명준은 감독놈의 발길에 채워 날도 밝기 전에 작업장으로 끌려갔다.

그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끔찍한 작업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악-》하는 비명소리가 아츠럽게 울렸다.

소리가 난 곳으로 뛰여가보니 한 아이가 쓰러진것이 보였다. 너무 지쳐 비칠거리다가 고압선에 넘어졌는데 수천V의 고압이 그를 쇠물바가지앞으로 쳐버렸던것이다.

그애의 머리와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내렸고 현장에서는 살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명준이를 비롯한 애들이 그를 둘러싸고 어쩔줄 몰라하는데 새된 고함소리가 울렸다.

《이건 뭐야? 일들은 안하고, 나쁜 놈의 새끼들…》

《사고가 났어요!》

《어디다 대구 말대답질이야. 이 새끼!》

감독놈은 명준의 얼굴에 가죽채찍을 후리였다. 그리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 소년을 개처럼 질질 끌고갔다.

그런 일은 그때만이 아니였다.

매일이다싶이 전기에 감전되여 많은 조선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간 사람들 대부분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이처럼 일제가 지난날 우리 인민에게 강요한 강제로동은 나라가 없고 주권이 없었던탓에 당해야 했던 망국노의 피눈물나는 노예생활이였다.

하기에 김명준로인은 지난날의 피눈물나는 일들을 자식들에게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정말 저 섬나라 왜놈들이야말로 인두겁을 쓴 야수들이다. 지금도 그 살인귀들에 의해 눈도 못감고 떠나간 조선사람들을 생각하면 잠들수가 없다.》

그렇다.

지난날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우리 인민에게 피눈물나는 노예살이를 강요한 일제는 우리와 한하늘을 이고 살수 없는 철천지원쑤이다.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지난날 일제가 우리 인민에게 저지른 죄악에 찬 과거를 언제나 잊지 말고 천백배로 그 대가를 받아내야 할것이다.

 

본사기자 조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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