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1월 2일 《우리 민족끼리》

 

나는 어머니를 자랑한다

 

양력설 아침에 있은 일이다. 만수대언덕을 내려선 나의 발걸음은 자연 어머니가 의사로 일하는 동진료소로 향했다. 새해 설인사를 하기 위해서이다.

대학생인 내가 함께 사는 어머니에게 새해 설인사를 하려 집을 나섰다는것이 사람들에게는 의문점을 주겠지만…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의 양력설도 아름다운 설풍경을 그리며 찾아왔지만 받아안는 감흥은 참으로 류달랐다. 흘러온 지난해로 추억의 노를 젓는 나의 마음속에 눈부시도록 하얀 위생복을 입은 어머니의 모습이 다가온다.

흔히 사람들은 외아들, 외동딸이라고 하면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할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외동딸인 나의 생활은 정반대로 흘렀다. 그것은 나의 어머니가 자기에게 딸이 있다는것을 잊고 사는듯했기때문이다.

철없던 유치원시절이나 중학교에 다닐 때에도 그러하였지만 대학생이 된 오늘에도 불이 켜지지 않은 집문을 열고 들어서는것이 나의 저녁일과였다.

그래서 나에겐 어머니가 없구나 하면서 눈물흘린적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의 어머니는 늘 봐야 바쁘다. 자그마한 동진료소의사, 더구나 소장도 아니고 보통의사에 불과한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돌봐줄 짬시간도 없이 오직 일에만 파묻혀 산다. 언제봐야 때없이 왕진이요, 구급환자요 하는것이 일상사처럼 되여버렸다.

어머니없이 사는 생활에 습관되여서인지 마치도 그것이 내 생활의 전부인듯 만성화되고말았다.

그런것으로 하여 어느때인가는 참고참았던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고 내가 어머니의 자식이 맞는가며 막 해본적이 있다.

지난해의 5월이였다.

악성전염병으로 격리되여 누구나 다 두려움에 휩싸여있은 때였다. 후두염으로 앓고있는 이 딸을 집에 혼자 둬두고 어머니는 그날도 병원으로 나가셨다. 나는 눈물로 바래며 원망의 눈길을 보냈지만 어머니는 미안하다는 단 한마디의 말만 남기고 끝내 집을 나섰다.

혼자 격리되여 20여일간 어머니는 한번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혼자 있다고 매일매일 관심해주는 반장어머니가 내 어머니 같았고 반찬이랑은 떨어지지 않는지 알아보고 보살펴주는 옆집어머니가 더 고마웠다.

허나 그때는 다 몰랐다.

환자들을 돌보느라 한시도 쉬지 못하고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가를, 열에 떠서 앓으면서도 늘 딸자식걱정만 했다는것을.

격리가 해제된 다음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를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맞이했고 참고참았던 설음을 터쳐놓았다.

남들 보기에도 나같이 못된 딸이 또 있을것같지 않았지만 딸자식조차 제대로 돌봐주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고까운 마음을 풀수가 없었기때문이다.

그러던 나에게 있어서 어머니에 대한 모든 오해를 풀고 이런 어머니를 가진 긍지를 한껏 느끼게 되는 계기가 있었으니 그날이 바로 8월 10일이였다.

위대한 당중앙의 두리에 천만이 굳게 뭉친 일심단결의 불가항력으로 준엄한 보건위기를 타개하고 최대비상방역전의 승리를 선포한 력사적인 날!

이 영광의 자리에 바로 나의 어머니가 서있었던것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기승을 부리던 전염병확산사태를 성공적으로 평정하고 방역안전을 회복하는데서 방역부문과 보건부문의 일군들이 수고를 제일 많이 하였다고 하시면서 당의 붉은 방역전사, 보건전사들이 발휘한 당과 혁명에 대한 충실성, 인민에 대한 헌신성, 자기 임무에 대한 책임성을 당중앙은 억만금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또한 당과 국가가 맡겨준 인민의 생명수호를 위한 전구들에서 힘과 지혜와 정성을 아낌없이 바치며 분투, 활약한 방역, 보건전사들은 전화의 나날 피로써 조국과 인민의 안녕을 결사보위한 화선용사들과 다를바 없는 우리 시대의 참된 애국자들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억만금보다 더 소중한 우리 시대의 참된 애국자!

나는 그날에야 알게 되였다.

환자들을 위해 바치는 어머니의 그 헌신과 노력이 무엇을 위함이였는가를…

딸자식에게서까지 원망과 오해를 받으면서도 우리식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남김없이 발휘하는 보건전사된 자각을 안고 오직 당과 조국,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자기를 묵묵히 바쳐가는 나의 어머니.

조국이 제일 어렵고 제일 힘들 때 자기 맡은 초소에서 조국의 아픈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애쓴 나의 어머니.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높이 치하해주신 애국자어머니의 딸임을 나는 가는 곳마다 소리쳐 웨치고싶다.

오늘도 어머니는 환자들을 위한 길을 걷고있다.

수십년세월 변함없는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자책하군 한다. 어머니의 그 마음을 모르고 여태껏 철없이 속을 태운 이 딸을 용서해달라고…

나는 어머니를 소리높이 자랑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훌륭한 나의 어머니를 더없이 존경하고 사랑한다.

양력설 아침 나 역시 어머니처럼 경애하는 원수님을 애국의 한마음으로 받드는 참된 인간이 되리라고 굳게 마음다졌다.

김형직사범대학 학생 주 복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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