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1월 24일 《로동신문》

 

영예군인대학졸업생의 《어머니》

김일성장학금수상자의 영예를 지닌 한 특류영예군인의 생활을 따뜻이 돌봐준 신의주시 신선동의 한옥희녀성에 대한 이야기

 

한장의 사진이 우리앞에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하반신마비의 몸이였지만 오늘은 김일성장학금수상자이며 신의주영예군인경제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신의주시 수문동의 특류영예군인 리명성동무와 그를 열렬히 축하해주는 신의주시 신선동의 한옥희녀성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남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것을 미덕으로, 미풍으로 여기며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고 남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방조하며 이끌어 덕과 정으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우리 사회의 도덕적기초로 굳건히 뿌리내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한옥희녀성은 10여년전에 의학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리명성동무를 일으켜세워주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온갖 지성을 기울이였다.

얼마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의 아름다운 소행을 료해하시고 온 나라가 다 알도록 내세워주시였다.

사회주의 우리 집에 꽃펴난 또 하나의 감동깊은 이야기에서 우리가 가슴뜨겁게 절감하게 되는것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낳은 정다운 부름

 

우리의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5년전 뜻깊은 광명성절의 아침으로부터 시작된다.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가족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이 높이 모셔져있는 신의주시의 역전광장을 찾았던 한옥희녀성은 네바퀴차에 몸을 실은 30대의 젊은 청년을 보게 되였다. 앞가슴에 빛나는 영예군인메달과 그가 정히 안고있는 향기그윽한 꽃다발을 보는 순간 한옥희녀성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게 그에게로 향했다.

《내가 좀 도와줄가요.》

영예군인과 그의 안해와 함께 광장계단을 오른 한옥희녀성은 그들과 나란히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에 삼가 인사를 올리였다.

잠시후 한옥희녀성은 그 영예군인이 군사임무수행중 뜻하지 않은 일로 부상을 당한 리명성동무라는것과 자기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살고있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당시 인민반장으로 사업하면서 이웃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곧잘 헤아려주어 사람들로부터 《인심좋은 인민반장》, 《우리 인민반장》이라고 불리우던 한옥희녀성은 리명성동무와 헤여지면서 약속했다.

《후에 한번 찾아가겠어요.》

이렇게 되여 그는 며칠후 리명성동무의 집을 찾게 되였다. 역전광장에서 알게 된 고마운 녀인을 뜻밖에도 자기 집에서 다시 만나게 된 영예군인의 가족은 못내 반가와하며 서둘러 그를 집안으로 맞아들이였다.

리명성동무의 안해인 황은정동무의 손에 이끌려 방에 들어선 한옥희녀성의 눈길이 어느한 벽면에서 떠날줄 몰랐다. 영광의 기념사진이 정히 모셔져있는 그 벽면에 여러개의 지원증서도 걸려있었던것이다.

《제가 대학시절 제2차 전국청년미풍선구자대회에 참가하여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시고 찍은 기념사진입니다. 그리고 이 지원증서들은 저의 남편이 제대되여 인민군대원호사업을 잘하여 받은것들이구요.》

《그러니 동무네부부는 청년미풍선구자들이구만요.》

이렇게 말하는 한옥희녀성의 목소리는 감동에 젖어있었다.

비록 나이상으로는 자기의 자식벌이 되는 청년들이였지만 자신보다 먼저 나라를 위하고 동지를 생각하는 그들부부의 모습은 얼마나 돋보이는것인가.

그날 한옥희녀성은 오랜 시간에 걸쳐 영예군인가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 그는 리명성동무가 부상당하게 된 경위와 병명은 물론 그의 취미와 식성까지도 일일이 알게 되였다.

밤이 깊어 자리에서 일어난 한옥희녀성은 배웅나온 리명성동무의 어머니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들이 다시 걸을수 있습니까?》

그런데 방금전까지 웃음이 비꼈던 녀인의 입에서 긴 한숨이 새여나왔다.

《치료를 해봤지만 워낙 병이 깊다보니 별로 차도가 없군요. 두벌자식을 안아봤으면 좋으련만…》

손자, 손녀들을 셋씩이나 거느린 한옥희녀성은 자기와 거의 동갑인 녀인의 심정이 충분히 리해되였다. 그래서인지 집으로 돌아오는 그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으로 무거웠다.

(동지들과 집단을 위해 바친 삶으로 하여 누구보다 마음껏 행복을 누려야 할 영예군인부부가 아닌가. 하다면 나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거듭하며 집으로 들어선 그는 어머니에게 안타깝게 말했다.

《어머니, 난 왜 의사가 될 생각을 못했을가요?》

아들딸 다섯남매가운데서도 한옥희녀성을 류달리 고와했던 박룡순로인은 딸의 마음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영예군인을 찾아간다고 집을 나선 딸자식이 이렇게 밤이 퍽 깊어서 돌아왔을적에야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으랴.

《의술은 없어도 어머니구실이야 할수 있지 않겠느냐. 그 영예군인이 너에게 자식벌이 된다던데…》

어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옥희녀성의 머리속에 리명성동무의 안해인 황은정동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기 딸의 나이또래인 녀성들도 당에서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는 영예군인들을 위해 그렇듯 장한 결심을 하는데 나라고 왜 영예군인의 어머니가 되지 못하겠는가.

이렇게 리명성동무와 인연을 맺은 한옥희녀성은 때없이 그의 가정을 찾아 혈육의 정을 두터이하였다. 리명성동무가 적적해할세라 가정에서 쓰던 음향기재도 안겨주고 보약재들도 마련하여 치료에 요긴하게 쓰도록 하였다. 한옥희녀성과 영예군인가정은 차츰 한집안식솔처럼 가까와졌다.

그 나날 한옥희녀성의 가슴속에는 하나의 생각이 자리잡았다. 리명성동무가 다시 대지를 제발로 걷게 할수 없겠는가 하는것이였다.

물론 전문병원에서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그의 병치료를 도와나선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인지를 그는 모르지 않았다. 또한 그것이 몇해가 걸릴지 기약할수 없다는것 역시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조국보위를 위해 피흘린 영예군인들을 위해서라면 돌우에도 꽃을 피우고 하늘의 별이라도 따와야 한다는 숭고한 자각이 그로 하여금 그렇듯 쉽지 않은 용단을 내리게 한것이였다.

그후 한옥희녀성에게는 하나의 일과가 생겨났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이면 리명성동무의 집을 찾아 안마를 해주는것이였다. 처음 해보는 일이여서 손가락에 강직이 오고 비오듯 흘러내리는 땀으로 온몸이 화락 젖어들었지만 그는 어느 하루도 중단하지 않았다. 그 나날 리명성동무의 베개잇도 매일과 같이 젖어들었으니 그것은 그의 뜨거운 눈물이였다.

아무리 애써도 여전히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리명성동무를 볼 때마다 맥이 풀리군 하였지만 한옥희녀성은 그 모든 원인이 자신의 정성이 모자라는데 있다고 생각하며 더욱 분발하였다.

한달이 지나서부터 한옥희녀성은 리명성동무의 병구완에 더 많은 시간을 돌렸다. 때로는 유능한 의사들을 데리고와 새로운 치료방법을 적용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리명성동무와 그의 가족은 다는 알수 없었다. 한옥희녀성이 매일 오후마다 의학대학에 찾아가 의학공부를 하고 밤에는 밤대로 치료방법을 연구한다는 사실을.

언제부터인가 한옥희녀성의 집에는 토끼우리와 닭우리도 생겨났다. 병치료를 하느라 쇠약해진 리명성동무의 몸보신을 위해 한옥희녀성이 지금껏 키운 검정토끼와 검정닭만 해도 수십마리나 된다.

손자, 손녀를 거느린 할머니의 몸이였지만 치료를 하느라 쌓인 피로를 미처 가실새도 없이 매일같이 자정이 넘도록 치료방법도 터득하고 토끼곰과 닭곰도 만드느라 그는 언제 한번 발편잠을 자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는 어느 하루도 그 일을 멈춘적 없었다.

그가 그렇게 남모르게 바친 정성은 얼마였고 걸은 길은 얼마였던가. 그 진정이 마침내 돌우에도 꽃을 피웠는가 치료를 시작한지 꼭 다섯달만에 기적이 일어났다.

리명성동무가 처음으로 발바닥의 아픔을 호소하였던것이다. 《앗 따가와!》라는 환자의 외마디소리를 듣고 부모도 안해도 깜짝 놀랐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굽을 적시였다. 이윽하여 《어머니! -》라는 목메인 부름과 함께 리명성동무가 한옥희녀성의 품에 와락 안겼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을 파고들며 오열을 터뜨렸다.

한옥희녀성도 난생처음 들어보는 부름인듯 리명성동무를 품에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영예군인의 《어머니》, 정녕 그것은 부모잃은 아이들과 돌볼 사람이 없는 로인들에게는 친혈육이 되고 조국보위성전에서 부상당한 영예군인에게는 일생의 길동무가 되여주는것이 하나의 기풍으로 된 이 땅의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낳은 또 하나의 정다운 부름이였다.

그로부터 한해후 리명성동무의 가정에는 귀여운 딸애가 태여났다. 또 몇해후에 그는 쌍지팽이에 의지하여 제발로 걷게 되였다.

 

어머니의 소원에는 끝이 없다

 

어머니라면 누구나 자식이 잘되기를 바란다. 스스로 리명성동무의 어머니가 된 한옥희녀성의 소원도 다를바 없었다.

그가 리명성동무에 대한 치료를 시작한지 한달쯤 되던 어느날이였다.

때는 3월이라 훈훈한 봄바람이 강산을 어루쓸고있었다. 새로운 치료방법을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던 한옥희녀성은 안해와 함께 공원에 나온 리명성동무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

무등 반가운김에 그에게로 급히 다가가던 한옥희녀성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자기가 곁에 다가서는줄도 모르고 리명성동무가 어딘가를 부러움에 찬 눈길로 줄곧 바라보고있었던것이다.

그가 눈길을 준 곳을 바라보던 한옥희녀성의 눈가에 새 교복을 산뜻하게 차려입고 무엇인가 열심히 토론하며 멀어져가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밟혀왔다.

(명성이는 지금 공부를 하고싶어하는구나. 그런데 나는 명성이의 어머니구실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그의 속생각조차 모르고있었으니…)

그날 한옥희녀성은 리명성동무의 부모와 마주앉아 대학입학문제를 토의했다. 아들의 치료를 도와준것도 고마운데 어떻게 그런 부담까지 끼치겠는가고 미안해하는 부모에게 한옥희녀성은 절절히 말하였다.

《예로부터 마음 절반, 약 절반이라는데 배우려는 소원을 이루게 되면 병치료에도 도움이 될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난 한옥희녀성은 해당 기관과 신의주영예군인경제대학을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며 필요한 수속을 하였다. 하반신마비의 몸으로는 끝까지 대학과정안을 마칠수 없다고 하던 일군들도 그의 진정에 감복하여 리명성동무가 입학시험을 성과적으로 치를수 있도록 적극 도와나섰다.

리명성동무가 입학통지서를 받은 날이였다. 그 무슨 보물인양 한장의 입학통지서를 소중히 쓸어보는 한옥희녀성의 눈가에는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고여올랐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가장 뜨겁게 간직한 어머니들만이 흘릴수 있는 행복의 눈물이였다.

그는 가정에서 성의껏 마련한 콤퓨터와 학용품들을 안겨주며 이렇게 당부했다.

《어머니당의 고마운 사랑에 꼭 보답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라면 대학공부가 얼마나 힘겨운가를 잘 알것이다. 하거늘 성한 몸으로도 하기 힘든 대학공부를 병치료와 함께 한다는것은 참으로 힘에 부친 일이였다.

창밖에 번개가 치고 폭우가 사납게 쏟아져내리던 어느날 이른새벽, 밤늦게까지 병치료도 하고 학습과제도 끝마치고 굳잠에 들었던 리명성동무는 문가에서 울리는 귀익은 목소리에 문득 눈을 떴다. 이윽고 비물에 온몸이 흠뻑 젖은 한옥희녀성이 방안으로 들어서며 하는 말이 그의 귀전에 들려왔다.

《날씨때문에 강의에 지장을 받으면 되겠니. 오늘은 좀 일찍 떠나자꾸나.》

리명성동무는 불시에 눈언저리가 달아올랐다. 매일 이른아침이면 대학에 데려다주고 또 강의가 끝나면 정문에서 기다리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느라 늘 고생하는 그에게 궂은날 하루만이라도 페를 끼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어머니, 날씨도 사나운데 오늘만은 대학에 가는것을 그만두렵니다. 아마 선생님들도 리해해줄겁니다.》

이렇게 말하며 한옥희녀성을 바라보던 리명성동무는 흠칫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언제나 다심한 어머니의 정이 흘러넘치던 그의 눈가에 노기가 짙게 어려있었던것이다.

《난 네가 그처럼 나약한 인간인줄은 정말 몰랐구나. 그래 넌 자기 하나만을 위해 대학공부를 한다고 생각하느냐.》

이윽하여 리명성동무를 타이르는 한옥희녀성의 목소리가 조용히 방안에 울리기 시작했다.

《너도 얼마전에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락랑영예군인수지일용품공장을 현지지도하신 소식을 들었겠지. 난 지금도 몸이 불편한 공장일군의 팔을 꼭 끼고 걸으시며 마음속에 군사복무시절의 별을 새겨주시던 그이의 자애로운 영상을 잊을수 없구나.

명성아, 명심해라. 네가 나라의 훌륭한 역군이 되는것은 이 어머니의 소원이기 전에 영예군인들을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소원이란다.》

얼마후 리명성동무는 한옥희녀성의 등에 업혀 집문을 나섰다.

흔히 사람들은 자식 하나를 키우는데 오만공수의 품이 든다고 한다. 하물며 친자식도 아니고 몸조차 성하지 못한 특류영예군인의 학습과 생활을 위하여 바쳐온 한옥희녀성의 공을 어찌 다 헤아릴수 있겠는가.

그 무엇으로도 다 헤아릴수 없는 한옥희녀성의 남모르는 그 고생속에 리명성동무는 김일성장학금수상자로 자라났고 대학과정안도 성과적으로 마치였다.

지금도 리명성동무의 가슴속에는 대학전과정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대학교직원, 학생들의 축하의 꽃다발속에 교문을 나서던 때의 추억이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매일 강의가 끝날무렵이면 대학에 찾아와 자기를 기다리군 하던 한옥희녀성.

그날따라 졸업식이 끝나기 훨씬 전부터 대학정문에서 기다리고있던 그에게 받아안은 꽃다발을 통채로 안겨주며 눈물젖은 목소리로 고마움의 인사를 할 때 그가 한 말은 과연 무엇이였던가.

《이 꽃다발을 받으셔야 할분은 경애하는 원수님이시다. 영예군인들을 나라의 보배로 내세워주는 우리 당의 품이 아니였더라면 어떻게 오늘과 같은 행복과 영광을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니. 우리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

얼마후 리명성동무는 그와 처음 만나던 잊지 못할 그날처럼 한옥희녀성과 함께 역전광장에 높이 모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을 찾았다. 그는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해하며 이렇게 삼가 아뢰이였다.

(위대한 수령님, 위대한 장군님, 자본주의나라같으면 길가의 막돌처럼 버림받았을 제가 오늘은 생의 활력을 되찾고 대학졸업생이 되였습니다. 한없이 고마운 사회주의 우리 집을 위해 저의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나가겠습니다!)

 

*     *

 

우리 나라에는 한옥희녀성과 같은 아름다운 녀인들, 미덕의 소유자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훌륭한 인간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여 온 나라에 널리 내세워주고 빛내여주는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없이야 어찌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람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줄수 있으랴.

조국과 인민을 위해 기울인 헌신과 노력을 가장 값높이 내세워주는 위대한 당의 품이 있어 미덕, 미풍소유자들의 대오는 날로 더욱 늘어나고있으니 정녕 그것으로 하여 아름다운 하나의 크나큰 미덕의 화원, 그것은 오늘도 래일도 영원한 우리 나라의 또 하나의 긍지높은 이름으로 전해질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정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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