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0월 31일 《우리 민족끼리》
통학배에 새겨진 글발을 보며
며칠전 아침 출근길에서였다.
락랑-서평양행 궤도전차에 올라 손전화에 게시된 《로동신문》의 제목들을 읽어내려가던 나의 눈길은 어느 한 곳에서 멎었다.
《당의 은정어린 <어머니>호통학배들 운항 시작》이라는 제목이였다.
기사에는 각지 녀맹일군들과 녀맹원들이 좋은일하기운동을 힘있게 벌려 《어머니》호통학배들을 마련한 사실과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남도, 강원도의 외진 산골마을의 학생들을 위해 이 통학배들의 운항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실려있었고 여러장의 사진들도 게재되여있었다.
아이들의 동심에 맞게 무어진 《어머니》호통학배와 거기에서 좋아라 웃고 떠들며 두 손을 흔들어대는 학생들, 그 모습을 격정속에 바라보는 학부형들…
여기에서 특별히 나의 심금을 울린것은 배전에 새겨진 《어머니》라는 글발이였다.
어머니!
흔히 일상생활에서 자주 듣게 되는 부름이다.
나도 두 자식을 가진 어머니로서 아침부터 밤에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이 말을 자주 들으며 산다. 아니 이 나라의 모든 어머니들도 그렇게 날과 달을 보내고있으리라.
하건만 어머니라는 그 부름이 왜 이다지도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것인가.
나는 통학배사진을 다시금 들여다보았다.
불과 20명도 안되는 아이들이 타고있는 작은 통학배, 이 배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다니.
생각할수록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내 나이 올해 50살을 가까이 한다.
이 기간 내가 보아온 승용차와 뻐스, 배, 비행기는 그 얼마였던가.
허나 그 어느 뻐스, 그 어느 려객선, 그 어느 비행기에서도 《어머니》라고 씌여진적이 없었다.
왜서인가. 아마도 그것은 어머니라는 그 부름이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진실한 사랑과 정을 담고있는 대명사이기때문일것이다.
하나를 주면 열을 주고싶어하고 열을 주면 백을 주고싶어 자기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려는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자식들의 얼굴에 피여나는 밝은 웃음과 기쁨을 위해 그 어떤 고생도 보람으로, 행복으로 여기는 어머니.
그래서가 아니랴. 우리 인민들모두가 자신들에게 정치적생명을 안겨주고 운명도 미래도 맡아안아주며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을 다 안겨주는
그 위대하고 성스러운 부름이 외진 산골의 몇명 아이들을 위한 통학배의 이름으로 새겨졌으니 어찌 마음속에서 격정의 세찬 파도가 일렁이지 않겠는가.
지그시 눈을 감으니 눈앞에 어려왔다. 몇해전 자성군 법동농장에 대한 취재길에서 보았던 통학배와 거기에 실려있던 사랑의 선물과 《소나무》책가방, 《민들레》학습장들이.
조용히 귀기울이니 들려왔다. 통학배, 통학렬차, 통학뻐스를 타고 좋아라 웃고떠드는 우리 학생들의 밝고 명랑한 웃음소리가.
진정 후대들을 위하시는
예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자식일수록 근심걱정으로 잠못이루는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했다.
외진 산골마을의 학생들을 위해 통학배가 만들어졌으니 이것을 어찌 한 어머니의 웅심깊고 뜨거운 사랑에 비할수 있으랴.
물론 통학배가 이 땅에 생겨난지는 벌써 수십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거기에 새겨진 이름 또한 많다.
하지만 그 통학배를 타고 졸업한 수많은 학생들의 진정어린 목소리와 그 배에 실렸던 사랑의 선물과 교육비품, 교복과 학용품들에 슴배여있는 뜨거운 사랑과 정을 합치고 합치면 그것이 곧 《어머니》라는 부름으로 되는것 아니겠는가.
그렇다. 새로 만든 통학배에 새겨진 《어머니》라는 글발, 정녕 거기에는 이 땅의 수많은 학생들을 한품에 안아 키우시는
어느덧 궤도전차가 멎어서 상념에서 깨여났지만 나의 귀전에는 《어머니》호통학배의 고동소리, 아니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울려퍼지는 수많은 통학배, 통학렬차, 통학뻐스들의 기적소리, 동음소리가 들려오는듯 싶었다.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거리에서는 《우리 어머니》의 노래소리가 은은하게 울려퍼지고있었다.
이 세상에 우리 어머니처럼
자식많은 어머니 어데있던가
백두의 노래를 자장가로 불러주며
천만자식 영웅답게 키운 어머니
모든 소원 꽃펴주는 따뜻한 그 품
아 그 사랑 우린 못잊어
어머니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
둘도 없는 우리 어머니
... ... ...
장 련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