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9월 6일 《우리 민족끼리》
지상이 꿈인 《땅속사람》들
《지상으로 가기엔 아무래도 힘들것 같다.》
얼마전 남조선의 인터네트에 올랐던 한 기사의 대목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9년동안이나 반지하에서 살았다는 서울시 동작구의 어느한 녀인의 이야기.
괴로움에 젖은 녀인의 목소리가 금시라도 들려오듯 귀전을 아프게 때린다.
문득 떠오른다. 지난 8월 한밤중에 뙤창으로, 문틈으로 쓸어들어오는 흙탕물속에 잠겨 아까운 목숨을 허무하게 잃은 서울시 관악구의 세 모녀.
안타까운 죽음, 참혹한 그 광경앞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던가.
한순간에 무덤으로 변한 《집》아닌 집, 마치도 죽음과 이어진 단어처럼, 두려움의 대명사처럼 되여버린 반지하.
하다면 끔찍한 참상의 목격자들이 무서운 공포속에 시달리면서도 왜 《땅속삶》을 이어가는것인가.
단순히 반지하생활에 《정》이 들어서도, 모험을 즐기는 《용감한 사람》들이여서도 아니며 지상의 생활이 싫어서는 더욱 아니다.
한줄기 빛조차 스며들기를 저어하는 컴컴한 방, 곰팽이로 《장식된》 벽, 지나가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가봐 가족끼리 큰 소리로 이야기도 못한다는 감옥같은 그곳, 오솔오솔 내리는 비소리에도 심장이 쫄아들고 불안속에 잠 못든다는 그러한 《집》아닌 집에서 과연 누가 한시인들 살기를 원하겠는가.
《지상으로 옮겨가고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반지하주택이 사라지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조용하나 산천을 울리는 그들의 말속에는 땅우의 집같은 집에서 사람답게 살고싶은 간절함이 짙게 묻어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상의 집은 한갖 꿈일뿐이다.
하늘을 찌를듯 높아만지는 보증금, 월세비, 이사비…
미친 집값을 《자랑》하는 남조선의 거리에는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위세를 뽐내듯 높이 치솟은 고층건물, 번쩍이는 번화가들이 있다.
하지만 돈없고 권세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깃을 펼 곳은 정녕 거기엔 없다.
인간의 생명보다 돈이 먼저인 썩고 병든 사회, 사랑과 정이라는 말조차 사라져버린 차디찬 세상은 빈곤속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삶을 펼 자그마한 터전조차 내주지 않았거니.
하기에 그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보다 더 무서운 집값, 지옥같은 세상을 저주하며 《땅속사람》들, 《묻힌 인간》들로 남아있다.
땅우의 보금자리를 그토록 간절히 애원하면서도 《땅속삶》을 이어가는 비참한 인생들이 남조선에 과연 몇이던가.
죽음의 그림자가 떠도는 그 《보금자리》조차 없어 《내집마련》의 꿈을 깡그리 포기한채 아까운 목숨을 내던진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돈이 사람들의 가치관, 인생관의 중심에 놓이고 극단한 개인리기주의가 모든 사회관계를 규제하는 황금만능의 썩어빠진 세상, 《안전대책》의 미명하에 《반지하퇴출》을 읊조리며 근로대중의 가냘픈 삶까지 무참히 짓밟는 반인민적정치를 고발하며 그들은 오늘도 이렇게 부르짖고있다.
《불평등이 재난이다.》, 《부패정치가 참변을 몰아온다.》…
한방울의 물에 온 우주가 비낀다고 남조선인민들의 비참한 삶속에는 감출래야 감출수 없는 진실이 비껴있다.
돈없고 권세없는탓에 수많은 생들이 해빛을 등지고 《땅속삶》을 이어가야 하는 황금만능의 남조선사회야말로 사람못살 《지옥》같은 세상, 근로대중의 무덤이다.
김 주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