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8월 14일 《우리 민족끼리》

 

민족의 추억속에 영생하는 애국인사로 내세워주시여

 

은혜로운 태양의 품에 안기면 인생고목에도 애국애족의 꽃이 피여난다.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이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이 참된 삶의 진리를 민족앞에, 력사앞에 증명하였다. 그들중에는 인생의 황혼기에 민족대단합과 통일애국을 위한 꽃을 피운 전 세계평화련합 총재 문선명선생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는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것이며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책임적이고도 인내성있는 노력을 기울일것입니다.》

주체80(1991)년 12월 어느날 《로동신문》에는 미국에 살고있는 세계평화련합 총재가 고향방문을 위해 평양에 온다는 소식이 실리였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남조선과 해외의 동포들 아니 온 세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문선명으로 말하면 평안북도 정주태생으로서 지난 전쟁시기 남조선으로 나가 종교활동을 하면서 줄곧 반공을 일삼아온 인물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로년기에 이른 문선명선생이 평양에 오겠다는 청원을 너그러이 받아주시고 그와 그의 부인에게 고향을 찾아보고 친척들을 만나보도록 하여주신것이다.

문선명선생이 조국땅을 밟을 때의 나이는 어언 70고개를 넘긴 인생의 황혼기였다. 허나 그는 자기가 태양의 밝은 빛을 받아 인생의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선명선생의 평양방문을 위하여 특별비행기를 띄워주시고 그를 동포애의 정으로 따뜻이 맞이하도록 하시였으며 명승지참관 등 일정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이 모든것은 조국을 멀리하고 살아온 그로서는 전혀 생각지 못한 특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선명선생이 평양을 떠나게 되였을 때에는 나라일이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친히 그들일행을 만나주시고 애국애족의 정 넘치는 따뜻한 담화도 오랜 시간 하시고 기념사진까지 찍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사상과 정견보다도 조국통일이라는 민족적위업과 한피줄이라는 동포애적감정을 더 귀중히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애국의 뜻에 문선명선생은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자리에서 고향을 찾아보려는 평생소원을 풀어주신것만도 고맙기 이를데 없는데 친히 만나주시기까지 하시니 너무도 감동되여 이 심정을 어떻게 표현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그동안 공화국을 비방하는데 앞장서온것을 깊이 사과하고 이제부터는 조국통일에 이바지하겠다고 자기의 진정을 말씀올렸다.

이때부터 문선명선생은 반공의 길에서 뛰쳐나와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에 자신의 남은 생애를 바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문선명선생과 맺으신 인연을 귀중히 여기시여 그가 통일애국의 길에서 참된 삶을 빛내이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3(1994)년 7월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슬픔을 누를길 없어 평양에 조문사절을 보내려는 문선명선생의 뜨거운 진정을 깊이 헤아려주시였다. 하여 세계평화련합 사무총장이며 《세계일보》 사장인 박보희가 평양을 방문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령전을 찾아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누구보다도 크신 상실의 슬픔과 추모행사준비로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평양으로 달려온 박보희사장을 친히 만나주시고 뜻깊은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으며 사랑의 선물까지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후에도 문선명선생이 공화국을 방문하고 백두산에도 오를수 있게 해주시였으며 그들부부가 생일을 맞을 때마다 따뜻한 축하와 함께 산삼을 비롯한 귀중한 선물들도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활짝 꽃피우시는 동포애와 민족대단결의 화원속에 안긴 문선명선생은 장군님의 사랑과 광폭의 품이야말로 온 겨레가 운명을 맡기고 안겨살 진정한 삶의 품이라는것을 다시금 가슴깊이 새겨안았다. 하기에 그는 위대한 장군님 뜻밖에 잃고 온 나라, 온 겨레가 비분에 잠겼을 때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조의대표단을 주저없이 파견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자애로운 사랑의 품속에서 민족을 위한 생의 참된 길을 찾은 문선명선생의 삶은 수령님들의 높으신 뜻을 이어 민족대단결의 화원을 아름답게 가꾸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품속에서 우리 민족사와 더불어 영생하는 삶으로 더욱더 빛을 뿌리고있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주체101(2012)년 문선명선생이 병환으로 사망하였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평양에서 그를 추모하는 행사를 크게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을뿐 아니라 친히 유가족들에게 조전과 위로의 말씀과 함께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도 보내주시였으며 그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경애하는 원수님께서는 주체102(2013)년과 주체104(2015)년 문선명선생의 서거 1돐과 3돐때에도 한학자 세계평화련합 총재와 유가족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씀과 조전을 보내주시였으며 주체102(2013)년 7월 30일에는 위대한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경축행사에 참가한 해외동포들과 기념촬영을 하시면서 박상권 세계평화련합 사무총장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따뜻한 고무격려의 말씀을 해주시고 그와 함께 따로 기념사진을 찍어주시는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이 감동의 화폭들앞에서 남조선의 종교인들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은 《문선명총재는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을 하늘같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고계시는분이시라고 하였다. 사망한 문선명총재를 내세워주시는 김정은원수님은 주석님과 국방위원장님의 도량과 포옹력을 그대로 이어받으신분이시다.》라고 경애하는 원수님에 대한 존경과 흠모심을 토로하였다.

진정 지난날 곡절많은 운명의 길을 걸어오면서 조국과 민족앞에 죄를 지은 문선명선생이 인생말엽에 어지러운 과거와 결별하고 통일의 길을 걸으며 애국의 뚜렷한 자욱을 남길수 있은것은 대해같은 포옹력으로 민족성원모두를 한품에 안아주시고 조국통일을 위해 떨쳐나서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신 절세위인들의 다심한 손길이 있었기때문이다.

세월은 흐르고 시대는 바뀌여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뜻과 동포애와 더불어 문선명선생은 민족의 화합과 나라의 통일을 위한 길에 오늘도 영생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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