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8월 6일 《로동신문》

 

오늘도 광부들을 위훈창조에로 떠밀어주는 참된 당초급일군

고무산세멘트공장 채광직장 굴진작업반 당세포비서였던 김철남동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세포비서들은 마음속진정이라는 거대한 힘으로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란한 정치활동가가 되여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한장의 사진을 마주하고있다. 약간 불그스름한 볼, 정기어린 눈매, 무겁게 다물린 입술…

청춘의 가슴에 넘쳐나는 왕성한 정력과 뜨거운 인정미가 그대로 비껴있는 사진이다.

조선로동당의 수십만 당세포비서들중의 한사람이였던 김철남동무는 지금 우리곁에 없다. 얼마전 석회석생산전투를 벌리던중 위급한 순간에 사랑하는 동지들과 귀중한 설비를 구원하고 희생되였던것이다.

그가 당세포비서로 사업한 년한은 불과 4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비상한 각오와 헌신적인 노력으로 당초급일군의 정신세계와 사업기풍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심장의 웨침-《나를 따라 앞으로!》

 

10년전 가을 제대배낭을 메고 부령군 고무산로동자구에 있는 고향집으로 들어서는 청년이 있었다. 김철남동무였다.

군사복무의 나날 몰라보게 성장하고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닌 외아들을 두팔벌려 맞이할 때 어머니의 기쁨과 기대는 얼마나 컸던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려느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조용히 말하였다.

《아버지가 섰던 일터에서 일하겠어요.》

김철남동무의 아버지는 20여년동안 채광직장에서 당세포비서로, 부문당비서로 사업하였었다. 그는 일터에 대한 남다른 애착과 광부들에 대한 헌신으로 하여 집단의 각별한 존경을 받은 오랜 당초급일군이였다. 초급당일군들은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당초급일군들에게 김영기부문당비서를 거울로 삼고 일하라고 말하군 하였고 지금도 오랜 광부들이 어제날의 부문당비서를 자주 회억하는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채광직장에서 일하려는 아들의 결심을 지지해주며 어머니는 약간 색이 바랜 당원증주머니를 내놓았다. 아버지가 수십년세월 가슴에 품고있었던 당원증주머니였다.

아버지의 체취가 스며있는 사연깊은 그 주머니에 자기의 당원증을 정히 넣고 가슴에 간직할 때 그가 어떤 마음을 다졌는지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채광직장 굴진작업반에서 일하면서 행동으로 자기의 신념과 지향, 의지를 보여주었다.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에 솔선 어깨를 들이밀고 병사시절의 본때로 굴진작업에서 선봉적역할을 하는 김철남동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는 남달리 컸다. 작업반당원들은 대오의 앞장에서 돌파구를 열어제끼는 기수이고 집단의 단합을 위해 뜨거운 진정을 기울이는 그를 당세포비서로 선거하였다.

당조직의 믿음과 동지들의 사랑을 청춘의 가슴에 받아안은 김철남동무는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의 한개 당세포를 책임졌다는 높은 자각을 안고 분발하였다.

몇해전 가을 5만산발파를 위한 굴진작업을 할 때였다. 갑자기 붕락구간이 나타났다. 일부 로동자들속에서는 발파날자를 보장할수 있겠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

이때 김철남동무는 막장에서 당원들의 협의회를 열었다. 가슴으로 적의 화구를 막고 부대의 진격로를 열어제낀 전화의 나날 당원들처럼 살며 일하자는 당세포비서의 절절한 호소는 당원들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언제 돌사태가 쏟아져내릴지 알수 없는 위험한 구간으로 당원들이 서슴없이 들어섰고 그 앞장에 착암기를 억세게 틀어잡은 김철남동무가 섰다. 그들의 희생적인 투쟁에 의하여 붕락구간이 극복되고 발파는 제 날자에 성공적으로 진행되였으며 세멘트생산의 돌파구가 열리게 되였다.

지난해 여름 직장앞에는 장마철피해막이공사과제가 제기되였다. 수백m구간에 물길을 새로 내고 제방도 높이 쌓아야 하는 공사는 방대하였다. 그런데 일부 행정초급일군들은 석회석생산이 긴장하다고 하면서 소극적인 립장을 취하였다. 이때에도 김철남동무는 작업반당원들의 심장에 불을 달았다. 그는 당원들과 함께 교대작업을 마치고 집으로가 아니라 물길공사장으로 달려나갔다. 당원들의 투쟁기세에 고무된 청년동맹원들과 직맹원들은 한사람같이 떨쳐나섰고 광부가족들도 삽과 곡괭이를 들고 공사현장으로 달려왔다. 그리하여 석회석생산계획을 일정대로 수행하면서도 큰물피해막이공사도 장마철전으로 끝내게 되였다.

세멘트생산의 첫 공정이며 제일 힘든 일터인 굴진막장에 스스로 자신을 세우고 어떤 어려운 과업이 제기되여도 사소한 주저도 없이 맞받아나간 당세포비서의 비상한 각오와 헌신적인 투쟁기풍은 당원들과 광부들을 혁신에로 불러일으킨 원동력이였다.

 

다심한 어머니의 사랑과 정으로

 

김철남동무가 입고다닌 작업복의 웃주머니에는 자그마한 수첩이 있었다. 거기에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밝혀주신 당세포앞에 나서는 10대과업과 세포비서들이 지녀야 할 12가지 기본품성이 또박또박 적혀있었다. 그는 언제나 귀중한 그 가르치심을 자로 하여 사업을 설계하고 매일 저녁 량심적으로 총화하였다.

자식들의 생활과 성장에 늘 관심을 돌리고 바른길로 인도해주는 어머니처럼 한생을 살려는것은 그가 간직한 삶의 지향이였다.

몇해전 어느날 퇴근길에 올랐던 김철남동무는 채광장주변의 내가에 홀로 앉아있는 작업반장을 보게 되였다. 그는 조용히 다가가 무슨 생각을 하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자기는 아무래도 작업반장사업도 직맹초급단체위원장사업도 그만두어야 할것같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김철남동무는 그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작업반장은 직맹원이였던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근 30년동안 굴진공으로 일해왔지만 성격과 말투가 거칠어 사람들은 그에게 좀처럼 곁을 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당원의 영예를 지니고싶은 열망만은 간절하였다. 당세포비서가 작업의 휴식시간에 또는 아침모임이나 저녁총화가 끝난 다음에 《당원들은 모이시오.》라고 할 때 자기 가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고 하던 작업반장의 목소리가 김철남동무의 귀전에서 맴돌았다.

그날 밤 김철남동무는 잠들수 없었다. 작업반장이 당원의 영예를 지니려던 결심을 포기한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수록 작업반장 한명을 당원으로 키워주지 못하는 자기가 무슨 당세포비서이랴 하는 자책감이 뇌리를 쳤다.

그후 김철남동무는 작업반장과의 사업에 품을 넣었다. 그가 매일 작업조직을 대담하게 하도록 떠밀어주는 한편 행정지시가 무조건 집행되도록 광부들을 이끌었다. 월 굴진계획을 수행하였을 때에는 그 비결을 작업반장의 사업에서 찾으며 높이 평가해주었다. 성의껏 마련한 부식물과 약재들을 가지고 작업반장과 함께 광부들의 가정에 자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군중과의 사업방법을 배워주기도 하였다. 그 나날 작업반장은 자기의 결함을 심각히 반성하였고 고상한 품성을 갖추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마침내 그는 광부들의 존경을 받는 초급일군으로 자라났고 꿈결에도 바라던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지난해 10월 당세포총회에서 입당청원서를 눈물속에 읽은 작업반장은 그날 저녁 자기보다 나이가 10년이상이나 아래인 당세포비서의 두손을 뜨겁게 잡고 고맙다고, 당조직의 믿음을 명줄처럼 안고 살겠다고 말하였다.

광부들의 마음속고충과 생활상애로를 어머니의 심정으로 헤아리면서 진정을 바쳐 보살펴주고 손잡아 이끌어준 당세포비서에 대한 광부들의 추억은 각별하다. 박동길동무에게는 나이도 많은데 건강을 돌보면서 일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어려운 일을 도맡아하던 당세포비서의 모습이 새겨져있고 신철범동무에게는 병에 걸려 앓고있는 자기의 이마를 짚어가며 열도 가늠해보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바닥도 덥혀주던 당세포비서에 대한 추억이 있다. 천일동무는 가정사정으로 출근하지 못한 자기의 집에 찾아와 막냉이가 없으니 작업반에 웃음이 사라졌다고, 신심을 가지고 생활하자고 하던 당세포비서의 목소리를 잊지 못하고있으며 황명철동무는 작업반에 갓 배치된 자기에게 굴진작업의 묘리와 방법을 하나하나 배워주며 혁신의 길로 떠밀어주던 당세포비서의 손길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광부들을 뜻과 정을 같이하는 혁명동지로 되게 하기 위해, 당세포를 인간적으로 굳게 뭉친 생명체로 만들기 위해 당세포비서가 기울인 심혈은 화목하고 단합된 집단의 자양분으로 되였다.

 

*     *

 

지난 7월 2일이였다. 그날 아침 김철남동무는 오전에는 굴진작업을 하고 오후에는 락석작업을 하겠다고 자진해나섰다. 점심시간에 발파를 하는 조건에서 락석작업을 따라세워야 석회석상차작업의 안전성을 보장할수 있었다.

위험한 락석작업을 스스로 맡아나선 당세포비서를 작업반장과 직장장은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수 없었다. 그래서 위험개소를 퇴치하기 위해 채광장의 비탈면으로 오르는 당세포비서의 뒤를 따른 그들이였다.

김철남동무가 30m정도 올라갔을 때였다. 그는 몇발자국앞에 있는 큰 바위가 움씰거리는것을 발견하였다. 집채같은 그 바위가 그대로 굴러내린다면 뒤따라오는 동지들은 희생되고 채광장에 있는 굴착기도 파괴될수 있었다. 순간 그는 직장장과 작업반장에게 《피하라!》 하고 소리치고는 지레대를 바위밑에 주저없이 들이밀었다. 그러자 방향을 바꾼 바위가 좌측으로 선회하며 굴러내렸고 뒤따라 돌사태가 쏟아져내렸다.

자기 한목숨을 서슴없이 바쳐 사랑하는 동지들과 귀중한 설비를 구원하고 희생된 당세포비서를 찾는 광부들의 젖은 목소리가 채광장을 울렸다. 피젖은 가슴에 간직된 사연깊은 당원증주머니와 수첩의 갈피에 있는 4살 난 딸애의 사진을 두손으로 받쳐든 사나이들의 얼굴에서는 뜨거운것이 줄줄이 흘러내렸다.

38살, 너무도 젊은 나이에 김철남동무는 동지들의 곁을 떠났다.

몇해전 큰물에 집을 잃은 자기에게 아담한 새 살림집을 안겨준 당의 은정에 기어이 보답해야 한다고 하면서 굴진막장에서 살다싶이 한 김철남동무였다. 지난 태양절을 맞으며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선물을 받아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당초급일군의 영예를 빛내여가리라 마음다졌던 당세포비서였다.

김철남동무의 영웅적희생정신은 광부들의 심장을 쾅쾅 두드렸다. 당세포비서의 몫까지 합쳐 석회석증산으로 당을 받들자고 그들은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조선로동당의 붉은 기폭에 싸여 영생의 삶을 빛내이고있는 김철남동무, 그의 고귀한 생은 우리 당의 핵심중의 핵심인 당세포비서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를 생동하게 보여주었으며 오늘도 광부들을 새로운 위훈에로 부르는 기치로 되고있다.

 

본사기자 김승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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