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7월 20일 《로동신문》
《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대전해방전투
주체39(1950)년 7월 20일에 진행된 대전해방전투,
이는 미제의 《강대성》에 대한 신화를 완전히 깨뜨려버린 현대포위전의 빛나는 모범으로 조국해방전쟁사에 뚜렷이 기록되여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전해방전투와 1211고지방어전투의 빛나는 승리는
조국해방전쟁이 개시된지 한달도 안되였던 7월 16일 새벽이였다.
그날 아침 피로를 푸실 사이도 없이 서울시에 자리잡고있던 전선사령부에서 작전회의에 참석하신
당시 대전은 적들의 군사전략상 중요거점이고 리승만괴뢰도당의 림시《수도》였다. 미제는 금강의 《불퇴의 선》이 모래성처럼 무너지자 미제침략군 24보병사단과 1기병사단을 비롯한 숱한 병력을 동원하여 대전을 기어이 고수함으로써 어떻게 하나 전쟁형세를 돌려세워보려고 발악하였다.
조성된 정세를 통찰하신
당시까지만 해도 대무력에 의한 포위작전은 대체로 정면에서 공격하는 부대들과 적의 량익측에서 타격하는 부대들이 일정한 종심에서 합치는 타격형식과 포위의 외부전선과 내부전선을 형성하는 방법으로 실현되였다.
이것은 세계전쟁사의 굳어진 공식이였다.
하지만 이러한 전법은 산이 많고 기동로가 심히 제한되여있으며 수적,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과 싸워야 하는 우리의 실정에 맞을수 없었다.
이로부터
그날
인민군부대들의 행동이 얼마나 불의적이고 기동적이였던지 적들은 대전 남쪽 구봉산에서 인민군대를 발견하였다는 보고를 받고도 제놈들이 포위된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주체39(1950)년 7월 20일 새벽 5시, 결정적순간을 놓치지 않고 대전시가에 대한 총공격을 개시할데 대한
인민군련합부대들은 포병화력의 엄호밑에 북쪽과 서북쪽 및 서쪽에서 일제히 공격으로 넘어가 순식간에 적의 방어진지들을 점령하고 시가전을 벌리면서 적들을 소멸하였다.
인민군대의 포위망이 조여들자 적들의 지휘체계는 완전히 마비되고 전투서렬은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대전해방전투에서 우리 인민군용사들은 2만 4천 2백여명의 적들을 살상포로하였으며 수많은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를 로획하였다.
대전해방전투의 빛나는 승리!
참으로 그것은
본사기자 김설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