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7월 17일 《우리 민족끼리》

 

전화의 나날에 꽃펴난 숭고한 동포애의 전설

 

사람들은 흔히 전쟁을 철과 피의 소모전, 랭정성과 무자비성의 극치라고 말한다. 인류전쟁사는 사생결단의 싸움마당에서 인정이나 동정이 있을수 없다는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남녘인민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뜨거운 사랑은 불비가 쏟아지던 전화의 그 나날 가장 숭고한 동포애의 전설로 꽃펴났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가장 숭고한 인간애,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천품으로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으며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시였습니다.》

미제와 그 주구들의 무력침공을 단호히 물리치고 반공격에로 넘어간 우리 인민군대가 서울을 해방하기 위한 총공격진지를 차지하였던 주체39(1950)년 6월 27일 저녁이였다.

최고사령부 작전대를 마주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은 무거우시였다. 한밤중에 총공격을 들이대면 서울시민들의 생명재산이 피해를 입을수 있었던것이다. 서울해방전투로 하여 피해를 입게 될 남녘의 동포들이 무엇보다도 걱정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단호히 결심하시였다. 그리하여 만단의 준비가 갖추어지고 승리가 약속된 서울해방전투가 옹근 하루밤이나 미루어지는 전쟁사상 류례없는 일이 벌어지게 되였다.

그뿐이 아니다. 주체39(1950)년 7월 4일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할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조선농민들의 세기적념원을 헤아리시여 그들을 봉건적예속과 착취에서 해방시키고 땅의 주인으로 되게 중요한 조치를 취하여주시였던것이다. 땅이 없는탓에 대대로 내려오면서 사래긴 이랑마다에 피와 땀과 눈물을 뿌려온 남조선의 농민들이였으니 그들의 감격과 환희는 온 남녘강토에 물결쳤다.

가렬처절한 전쟁의 불도가니속에서 남조선인민들에게 베푸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은 해방지구에 수립된 인민정권에도 깃들어있고 남조선인민들에게 민주주의적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하여 로동법령과 남녀평등권법령을 실시하도록 취해주신 조치에도 력력히 어려있다.

전화의 그 나날에 남녘겨레들의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일일이 보살펴주신 우리 수령님의 사랑은 또 얼마나 뜨거운것이였던가.

주체39(1950)년 8월 내각청사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하에 서울시민들의 땔나무문제를 토의하는 긴급회의가 소집되였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모여온 일군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적아간에 치렬한 격전이 벌어지고있고 더구나 아직 삼복더위가 한창인데 서울시민들의 겨울철땔나무문제라니…

그러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이 해방되여 공화국의 품속에 안긴 오늘에도 이전과 같이 고통을 당하게 할수는 없다고, 하루빨리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여러모로 도와주어야 하며 땔나무문제같은것도 예견성있게 풀어주어야 한다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설악산이 한강상류와 잇닿아있기때문에 강물을 리용하여 나무도 운반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친히 그 위치까지 정해주시고 인민군대에 탄원한 수백명의 청장년들까지 나무베기전투장에 보내주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던 때 일군들은 전선형편을 생각하면서 설악산에 베여놓은 나무들을 몽땅 불태워버리려 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추위가 당장 시작되겠는데 땔나무가 없어 떨게 될 서울시민들이 걱정된다고 근심하시면서 나무를 토막내여 강물에 띄워 내려보내주면 인민들이 건져쓸수 있을것이니 이런 방법으로라도 그들을 도와주어야겠다고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남조선인민들에게 보내줄 수십만㎥의 땔나무가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을 싣고 한강으로 떠내려가게 되였으며 이 사실은 그후 《설악산의 전설》이 되여 온 남녘땅에 전해지게 되였다.

어느덧 70여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 수령님의 위대한 전승업적과 함께 전화의 포연속에 수놓아진 그이의 숭고한 동포애를 담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은 오늘도 겨레의 가슴속에 절세위인에 대한 경모의 정을 더욱 뜨겁게 하여주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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