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7월 14일 《우리 민족끼리》
헤그의 경종
한낮의 무더위가 채 가셔지지 않은 저녁이다.
신문을 보는 내옆에서 책을 읽고있던 소학교학생인 아들애가 불쑥 나에게 물었다.
《아버지, 이 책에 만국평화회의라는것이 나오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없어요. 무슨 회의였나요? 그리고 헤그밀사사건은요?》
아들이 읽던 책에 잠시 눈길을 주던 나는 웃음을 띄우고 말했다.
《만국평화회의라는건 지난날 세계 여러 나라 외교대표들이 어느한 유럽나라의 수도였던 헤그에 모여앉아 평화에 대해 토론한 국제회의란다. 그리고 헤그밀사사건은 바로 그 만국평화회의가 두번째로 열린 1907년에 당시 조선봉건왕조의 고종황제가 일본에 의해 날조된 <을사5조약>의 부당성을 세계에 알리고 국권회복을 실현해보려고 비밀리에 사신들을 파견한 사건이란다. 그때 세명의 밀사중 한명이였던 리준이라는 사람이 국권을 되찾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다가 일본의 교활한 방해책동과 조선침략을 비호하는 미국을 비롯한 렬강들의 모략으로 뜻을 이룰수 없게 되자 참을수 없는 울분을 안고 스스로 자기 배를 갈라 자결하는것으로 항거하였지.》
나의 말을 유심히 들으며 이젠 알겠다는듯이 머리를 끄덕이던 아들애는 문뜩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되물었다.
《그런데 나라를 되찾겠다면서 왜 다른 나라에 찾아가 남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배까지 갈랐나요?》
아들애의 물음에 나는 일순간 굳어졌다.
옳은 질문이다. 자기 나라를 찾겠다면서 남의 나라에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자결까지 하였다는 사실이 어린 아들에게는 도무지 리해가 되지 않을것이다.
아들의 의문대로 리준은 왜 머나먼 만국평화회의장으로 찾아갔으며 어이하여 낯설고 물설은 타국땅에 선혈을 뿌리며 쓰러지지 않으면 안되였는가.
그것은 뿌리깊은 사대와 외세의존때문이였다. 나라와 민족을 지켜낼 자기 힘이 없었기때문이였다.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의 끈질긴 사대와 외세의존정책으로 하여 국력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져 대포와 군함을 끌고온 섬나라침략무리들앞에 창과 화승총으로 맞서야 했던 어제날의 조선이 아니였던가.
어제는 저 렬강의 힘을 빌어 왕궁을 지키고 오늘은 이 렬강을 등을 업고 국권을 유지하는 외세의존적인 《이적견적》을 국시로 삼다가 지구상의 그 어느 민족도 당해보지 못한 《을미사변》과 《아관파천》, 《춘생문사건》의 비극을 겪었던 우리 민족의 비참한 처지.
제 집안에 들어온 날강도와 맞설 힘이 없어 땅을 치며 피눈물을 흘릴수밖에 없었던것이 바로 한세기전 이 하늘아래에 펼쳐진 엄연한 현실이였다.
헤그밀사사건은 바로 봉건통치배들의 뿌리깊은 사대의식을 잡아 흔드는 하나의 힘있는 경종이였다. 만국평화회의장을 붉게 물들인 리준의 피는 후대들에게 세계의 그 어떤 강대국도 조선독립을 선사하지 않는다는것과 남의 덕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성취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경고해주었다.
사대와 외세의존은 망국의 길이며 자기 힘이 없으면 눈을 펀히 뜨고 상가집 개만도 못한 노예가 된다는것, 외세에게 그 어떤 기대나 환상도 가져서는 안된다는것이 바로 115년전 피로 물들여진 만국평화회의장이 남긴 력사의 교훈이다.
하지만 헤그의 경종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민족의 살길은 오직 민족자주, 민족자존에 있다는 진리를 한사코 외면하면서 사대와 외세의존에 명줄을 걸고 비극적인 과거를 답습하는자들이 지금도 저 남녘땅에 살판치고있다.
돌이켜보면 그 어느 나라도 우리 민족이 강대해지고 잘사는것을 바라지 않으며 오히려 분렬과 대립을 야기시키고 그 공간을 통해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할뿐이다.
사대와 아부추종에 환장한 매국노들을 유혹하여 돌격대로 내몰아 민족내부에 불신과 리간을 조성하고 끊임없이 분렬약화시켜 종당에는 완전히 집어삼키려는것이 외세의 변함없는 침략적흉심이고 지배전략이다.
그런데 무엇때문에 대양건너에까지 찾아다니며 동족에 대한 제재와 압박을 구걸하고 외세를 등에 업는것을 자기가 살아갈 길, 유일한 출로로 여기는가.
외세에 대한 기대와 환상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힘없고 불쌍한 약소민족의 설음을 배를 가르는것으로 세계앞에 고해야 하였던 우국지사의 선혈은 결코 지나간 력사의 가슴아픈 상처로, 115년전의 흔적으로만 남아서는 안된다.
나는 력사의 갈피에 새겨진 피의 교훈을 아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너무도 분통하여 목숨을 끊은 순국지사들의 절규를 낱낱이 들어보면서, 의병을 일으키고 목숨바쳐 침략의 괴수들을 처단한 렬사들, 대국들의 웃음거리가 되여버린 약소국의 설음을 안고 이국만리에서 배를 가른 헤그밀사의 피의 호소를 생생히 새겨보면서 오늘의 이 시대, 이 조선을 다시 보라고.
이 력사의 교훈은 남조선의 윤석열패당에게도 준절히 경고하고있다.
사대와 외세의존을 숙명처럼 여기던 매국노들에게 내려진 력사의 준엄한 징벌, 민심의 엄정한 심판은 시효가 없으며 오늘도 유효하다는것을.
헤그의 경종을 망각하고 여기저기 남을 찾아다니면서 동족에 대한 압살을 구걸청탁하는것은 내외의 더없는 조소거리로 될뿐이며 외세공조는 살길이 아니라 자멸의 길이라는것을.
박 정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