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6월 22일 《민주조선》

 

불구대천의 원쑤 일제의 죄악을 고발한다

조선의 산을 벌거숭이로 만든 강도의 무리

 

예로부터 우리 나라는 산좋고 물맑은 삼천리금수강산으로 불리워왔다. 그만큼 우리 나라에는 산림자원이 매우 풍부하였다.

압록강연안과 두만강연안에는 200여만정보의 대원시림이 펼쳐져있었으며 금강산, 묘향산, 구월산 등 전국의 이름난 산들에도 수백만정보의 아름드리나무들이 무성하였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나라를 침략한 이후부터 조선의 산림자원은 여지없이 파괴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의 산림자원에 눈독을 들인 일제는 1910년 3월부터 8월까지의 사이에 우리 나라의 산림자원실태를 구체적으로 조사한데 기초하여 1911년 6월에는 《산림령》을 조작공포하고 그해 9월부터 이를 실시하였다.

9개조와 부칙으로 구성되여있는 《산림령》에서 일제는 필요한 경우 《조선총독》은 모든 산림을 보안림에 편입할수 있다. 또한 조선의 산림을 《국유림》으로 만들어놓고 그것을 마음대로 일본자본가 또는 일본단체에 양도, 매각, 교환 등을 할수 있다는것을 밝히였다. 반면에 조선사람은 경찰관의 허가없이 산림에 드나들수 없으며 림야 또는 이에 접근한 토지에 불을 놓을수 없으며 불을 놓거나 놓으려던 사람은 징역 혹은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렇듯 날강도적인 《산림령》을 휘두르면서 일제는 수백만정보에 달하는 림지를 저들의 소유로 하였으며 백 수십만정보의 산림을 《동척》 등 일본단체, 일본인들에게 넘겨주었다.

조선의 림지를 차지한 일제는 산림채벌을 대대적으로 진행하여 우리 나라의 산들을 벌거숭이로 만들었다.

《조선총독부》의 알선밑에 조선의 산림중에서도 림목상태가 가장 좋은 산림을 골라잡은 《미쯔이물산》, 《스미또모재벌》, 《가다꾸라산업》 등 일본의 대재벌들과 기업체들은 높이 70~100여척, 둘레 7~16척에 달하는 큰 나무들을 채벌하여 목재부족이 심한 일본으로 반출함으로써 큰 폭리를 얻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간또지방에서 대지진이 발생하여 주택, 공장, 학교 등 수백만동의 건물이 파괴, 소각되자 일제는 대지진피해복구에 필요한 방대한 량의 목재를 전적으로 조선의 산림을 략탈하는데서 충당하기로 계획하고 《조선총독부》에 《림시물자공급령》 목재공급항목의 집행을 지령하였다.

하여 1923년 9월이후 우리 나라의 산림에는 일본의 대재벌들은 물론 소규모목재상들까지 기여들어 나무들을 마구 베내여 일본으로 반출하였다.

일제가 우리 나라의 산림자원을 마구 략탈한것으로 하여 우리 인민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였다.

산림자원이 일제의 수중에 들어간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에서 산림자원을 원료로 하는 민족공업 특히 팔프공업, 제지공업, 목재공업, 가구공업이 발전할수 없었다. 뿐만아니라 조선농민들은 국토를 종합적으로 리용할수 없었다.

경찰관의 허가없이는 산림에 드나들수조차 없었던 조선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땔나무조차 제대로 할수 없었다.

더 엄중한것은 우리 나라가 홍수지대로 되여 조선사람들이 커다란 인적 및 물적피해를 입은것이다.

1920년대에만 해도 락동강홍수, 대동강홍수, 한강홍수, 림진강홍수, 금강홍수 등 전례없는 대홍수들이 일어났다. 초보적인 통계자료에 의하더라도 1920년대의 수해는 1910년대에 비해 무려 3배에 달하였다.

홍수는 해가 바뀔수록 더욱 빈번히 일어났으며 조선사람들이 입는 피해도 그만큼 커갔다.

실로 일제는 우리 나라의 귀중한 자원을 깡그리 략탈해간 날강도무리였다. 일본이 자랑하는 경제적번영은 우리 인민의 피와 땀, 우리 나라의 귀중한 자원으로 이루어진것이다.

온갖 범죄로 얼룩진 과거에 대한 사죄와 배상은 일본이 반드시 짊어져야 할 법적, 도덕적의무이다.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가로막은 과거죄악에 대해 심각히 반성하고 하루빨리 청산의 길에 나서야 할것이다.

 

본사기자 김홍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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