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은 못잊습니다
《오국리의 건설주는 내가 되겠소!》
(평양 6월 7일발 조선중앙통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63(1974)년 5월 어느날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를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어귀에 이르시여 주변을 일일이 둘러보시다가 동행한 일군들에게 여기는
농사를 아주 잘하는 곳인데 살림집을 지어주지 않아 아직도 적지 않은 농민들이 더 화려한 문화주택에서 살지 못하고있다고 하시며 못내
가슴아파하시였다.
일군들은 자그마한 성과에 자만하면서 오국리를 하루빨리 도시의 수준에로 끌어올리시려는 수령님의 높으신 뜻을 잘 받들지
못한 자책감으로 하여 머리를 들지 못했다.
마을의 전경을 다시한번 둘러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래일 신천에서 농촌살림집건설문제를 더 토론해보자고 하시며 협의회때
좋은 안을 내놓으라고 당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리의 일군에게 살림집건설계획을 잘 세워가지고 오국협동농장의 면모를 완전히 개변시키자고 하신 다음에야 마을을 떠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다음날 아침 신천군에서 열린 농촌건설부문 일군협의회에서 리의 일군을 찾으시고 오국리의 지형도를
짚어가시며 마을의 위치와 살림집의 모양, 내부구조, 난방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건설자재와 건설기계, 운수기재 등 무엇이든 다 주겠으니 1 000세대를 목표하고 1년동안에 오국리를 현대적이며 문화적인 농촌으로
건설해보자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무엇을 하나 설계하고 건설해도 통이 크게 일판을 벌리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담력과 배짱에
일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국리의 건설주는 내가 되겠소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오국리의 건설주는 내가 되겠소!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가난과 몽매, 천대와 멸시, 한숨과 눈물속에서 살아오던
오국리사람들을 사회주의리상촌에서 하루빨리 살도록 하시려 그토록 마음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아래 오국리에서는 마을을 사회주의리상촌으로 전변시키기 위한 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