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5월 31일 《로동신문》

 

실화

뽕나무꽃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애국주의는 조국땅의 나무 한그루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키우는데 자기의 땀과 지성을 바치는 숭고한 정신이며 애국의 마음은 나무 한그루라도 제손으로 심고 정성껏 가꿀 때 자라나게 됩니다.》

산비탈에 규모있게 조성한 다락식뽕밭이 푸른색으로 단장되여가던 지난 5월초 어느날이였다. 애어린 뽕잎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다락밭의 전경을 바라보는 여러명의 녀인들의 입에서 연해연방 감탄이 터져나왔다. 그들은 피현군 백마로동자구의 녀맹원들이였는데 그 뽕밭의 주인인 리경순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것이였다.

뽕밭에서 병해충구제를 진행하는 리경순의 모습을 띄여본 그들은 손나팔을 하고 소리쳤다.

《뽕나무집어머니-》

일손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쪽을 바라보던 리경순의 주름깊은 눈가에 반가운 빛이 어리였다.

《어떻게들 왔나?》

《어머니의 경험을 배우자고 왔어요.》

《원, 경험은 무슨…》

리경순은 하던 일을 거두고 다락밭을 내리였다.

지난해 리경순의 다락식뽕밭에 대한 군녀맹위원회적인 보여주기사업이 진행된 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의 경험을 배워가군 하였다. 어떤 날에는 린접군에서까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수십년간 뽕밭비배관리에서 터득한 경험을 설명해주군 하던 그는 오늘은 무슨 말을 할것인가를 생각해보았다. 더우기 갓 녀맹생활을 시작한 그들에게 뽕밭비배관리경험에 앞서 자기가 인생길에서 찾은 진리를 말해주고싶었다.

녀맹원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어느덧 짙은 회억의 빛이 어리였다.

지금으로부터 40여년전 리경순은 봉화화학공장의 혁신자청년과 가정을 이루었다. 그때부터 녀맹생활을 하게 된 그는 단란한 가정의 행복에 도취되여있었다.

그가 가정을 이룬지 몇해가 지난 어느날 저녁이였다.

리경순이 집주변의 빈땅을 일구고있는데 하루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거기서 뭘 하오?》

《녀맹에서 누에치기운동을 벌리고있기에 뽕나무를 몇그루 심으려고 해요.》

말없이 안해의 일손을 도와주던 남편인 김도명은 문득 집옆의 벌거숭이산비탈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여보, 내 언제부터 생각해오던 일인데 이왕이면 저 산비탈에다가 뽕밭을 만드는게 어떻겠소.》

《예? 아이참 당신두, 내가 무슨 힘으로 온통 돌투성이인 산비탈을 뽕밭으로 만든다는거예요. 그리고 그런 일이야 다 맡아할 사람이 있겠지요.》

《…》

김도명은 안해를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이기라도 한듯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기만 하였다. 한가정의 행복에만 도취되여있는 안해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가슴속에 차오른것인지.

그 다음날부터 남편의 퇴근길은 여느때없이 늦어졌다. 리경순이 무슨 일이 있는가고 물으면 공장에서 야간작업을 한다고 대답할뿐이였다.

지친 기색으로 밤늦게 집에 들어와 살뜰한 말 한마디 없는 남편의 모습을 볼 때면 리경순은 새살림의 행복에 벌써 금이 가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경순은 길가에서 남편과 한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였다. 그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매일 저녁이면 제시간에 퇴근한다는것이였다.

그날밤도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경순은 그냥 앉아서 기다릴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밖을 나서는데 집옆의 산비탈에서 전지불이 번쩍이더니 한사람이 천천히 산을 내려오는것이였다.

경순은 그 사람이 다름아닌 남편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남편의 어깨에는 질통이 지워져있었다.

그때에야 경순은 남편이 매일 밤 다락밭을 조성하기 위해 홀로 돌을 져나르고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어쩌면 자기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이럴수 있는가고 야속해하는 경순에게 남편은 말했다.

《물론 저 산비탈에 나무를 심지 않는다고 우릴 탓할 사람은 없소. 하지만 벌거숭이산비탈을 볼 때면 내 량심이 허락치 않았소.》

경순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채 남편의 말에 귀를 강구었다.

《당신은 언젠가 나에게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전선원호사업에서 모범을 보여 위대한 수령님의 표창장까지 받아안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들려주었지. 그들처럼 조국을 위해 공민의 의무를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난 생각하오. 바로 그 길에 우리 가정의 행복도 있는것이 아니겠소.》

《여보! …》

경순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지금껏 남편의 진정을 너무도 모르고 살아왔다는 생각, 한가정의 행복밖에 모른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하여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그후 경순은 녀맹일군으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 뽕나무는 빨리 자라기때문에 비탈진 밭이나 묵은밭같은데다 심으면 얼마 안가서 좋은 뽕밭이 될수 있다고, 뽕밭을 만들어놓으면 사태를 막는데도 좋다고 교시하시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였다.

뽕나무심는 운동을 널리 벌려 도처에 뽕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특히 녀맹원들과 녀성당원들이 뽕나무를 한해에 적어도 10그루이상씩 심도록 하여야 한다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옷감을 안겨주려 그처럼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받들 마음이 그의 가슴속에 소중히 싹트고 자라났다.

그때부터 리경순은 산비탈에 다락밭을 조성하는 일에 달라붙었다.

정작 다락밭을 만들자고보니 그렇게 많은것같던 돌도 모자랐다. 그래서 늘 손수레를 끌고다니며 돌을 모아들이군 하였다. 길을 가다가 돌 하나 보여도 그것을 안고가군 하였다.

운전사인 남편이 돌을 모아놓기만 하면 차로 실어주겠다고 했지만 경순은 굳이 사양하였다. 자기의 순결한 땀을 뽕밭에 바치고싶었던것이다.

그의 남편은 이른새벽 출근하기 전과 하루일을 마친 저녁이면 어김없이 안해의 일손을 도와주군 하였고 어린 자식들까지 떨쳐나섰다. 그러다나니 온 가족이 휴식일, 명절날이 따로 없었고 단란하게 모여앉아 식사 한끼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이런 정성이 깃들어 다락밭은 하루가 다르게 자기의 면모를 드러냈다.

품들여 조성한 다락밭이 체모를 갖추게 되자 경순은 우량품종의 뽕나무종자를 구하기 위해 수백리 먼길도 주저없이 걸었다.

그 길에 힘이 들고 나약해질 때면 그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군 하였다. 그러면 어느새 힘이 솟고 내 손녀가 용타고 고무해주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 산비탈이 석비레땅이여서 여느 나무들도 자라기 힘든 곳인데 괜히 고생을 사서 하지 말라고 하였지만 경순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과정에 경순은 석비레땅에서도 뽕나무를 얼마든지 자래울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되였다.

경순은 봄, 여름, 가을동안은 뽕밭비배관리와 누에치기를 하고 겨울이면 돌각담을 쌓으며 다락밭을 더 조성했다.

겨울철에 언땅을 까내고 돌을 찾아 쌓느라 그가 겪은 신고는 이루 헤아릴수 없었다.

언 손을 불며 돌을 하나하나 찾아 돌각담을 쌓는 그를 보며 마을사람들은 한겨울에 무슨 고생을 사서 하는가고 혀를 차군 했다.

그때마다 그는 입가에 웃음을 띠우고 흔연히 말했다.

《다른 계절에야 뽕나무를 가꾸고 누에를 치느라 언제 다락밭을 만들새가 있어야지요. 겨울철밖에 시간이 없어 그래요.》

그러다나니 그의 손은 늘 험해있었고 작업신발은 얼마 못가 밑창이 나군 하였다.

뽕밭도 가꾸고 누에도 치면서 다락밭도 조성하느라 그는 늘 잠이 그리웠다. 그런 속에서도 뽕밭비배관리와 누에치기에 대해 서술한 과학기술도서들을 탐독하며 불같은 정열을 바치였다.

그는 뽕밭비배관리를 하면서 자기가 얻은 경험을 늘 수첩에 적군 하였는데 수첩의 첫장에는 이런 글을 써넣었다.

《땅과 뽕나무+정열=애국》

그가 해마다 삽목한 뽕나무는 수백그루나 되였다. 그 나날 그는 뽕나무집어머니로, 그의 집은 뽕나무집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어느날 리경순은 급병으로 병원에 후송되게 되였다.

그의 상태를 진찰하고난 병원의료일군들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이렇게 병이 경과할 때까지 어떻게 참고 견디였는가고 묻는 그들에게 리경순은 말했다.

《뽕밭비배관리로 한창 바쁜 때인데 어디 몸을 뺄수가 있어야지요.》

이렇듯 뽕밭은 그에게 있어서 애국열로 심장의 피를 끓게 하는 원동력이였다. 이런 그를 구사무소 당조직과 녀맹조직에서 적극 떠밀어주었고 이웃들도 떨쳐나 일손을 도와주었다.

두해전 안해를 적극 도와주던 리경순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자기를 애국의 길에 세워주고 몸이 불편한 속에서도 힘들어할세라, 지칠세라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던 남편이 자기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그는 눈앞이 아뜩해졌다.

그의 머리속에는 생의 마지막순간에 뽕밭을 바라보며 하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없어도 당신이 끝까지 한길을 걷기 바라오.》

비록 길지 않은 말이였지만 그 말은 경순이 나약해질 때마다 채찍질해주군 하였다.

경순은 아글타글하며 애써 키운 수많은 뽕나무에서 딴 뽕으로 누에를 쳐서 해마다 많은 누에고치를 나라에 바치였고 수종이 좋은 뽕나무모들을 군과 도안의 여러 단위에 보내주는 애국적소행을 발휘하였다. …

이런 이야기를 하고난 리경순은 눈이 초롱초롱하여 자기를 바라보는 녀맹원들을 향해 물었다.

《누가 뽕나무꽃을 본적 있어요?》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그들에게 리경순은 말했다.

《물론 뽕나무꽃은 보잘것 없고 향기도 없어요. 하지만 그 꽃이 피지 않는다면 어떻게 무성한 뽕나무를 생각할수 있겠나요. 나에겐 그 뽕나무꽃이 제일이군요.》

바로 이 말속에 리경순이 한생토록 가슴속에 새긴 진리, 만나는 사람들마다에게 이야기하고싶은 진정이 깃들어있었다.

그것은 삶의 진정한 행복과 보람은 사회와 집단, 조국과 인민을 위해 자기를 바치는데 있다는 바로 그것이였다.

하기에 리경순은 뽕나무집이라는 부름을 그 무엇보다 사랑하였다. 그리고 그 누가 몰라도 사람들에게 덕을 가져다주는 뽕나무꽃처럼 살고있다.

 

본사기자 유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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