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5월 6일 《로동신문》
《위대한 수령님들과 전우관》련속참관기
조국개선을 앞두고 그려보신 투사
강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수십년세월이 흐른 후에도 자신께서
데리고다니던 왕청유격대 5중대에 대하여, 그 중대장이였던 한흥권동지에 대하여 잊지 못해하시였다고 이야기하면서 수령과
전사사이에 흐른 전설같은 동지애의 세계로 우리의 추억을 이끌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활동을 시작하시였으며
숭고한 혁명적동지애의 새 력사를 펼치시였습니다.》
조국이 해방된 후 항일유격대원들은 누구나 조국으로 개선하게 되였다고 모두 기쁨에 넘쳐있었다.
하지만 우리 수령님의 심중은 무거우시였다.
항일혈전의 길에서 함께 싸우다 쓰러진 혁명전우들은 그 얼마인가.
금싸래기같이 사랑하고 아끼시던 그들을 이국의 광야에 남겨두고 조국으로 나가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쓰리고 아프시였다.
대원들이 이제 얼마 안있으면 그처럼 그리며 밟아보고싶던 조국땅을 밟게 된다는 기쁨으로 흥성거리고있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여기서 얼마
가면 한흥권중대장과 장룡산중대장이 안장되여있는 곳이라고 갈린 목소리로 말씀하시였다.
다른 항일혁명투사들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항일의 대오에 서게 되면서부터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알게 된 한흥권동지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을 지니고 싸움에서
용맹을 떨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한흥권동지를 소대장으로 임명하신데 이어 신설중대의 중대장으로
내세워주시였다.
유격대에 입대한지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그에게 중대를 맡기신것은 그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두터운 신임의 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을 받아안은 한흥권동지는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을 관철하는 길에서 삶의 보람을 찾으며 모든 힘과 지혜를 다 바쳐 싸웠다.
주체23(1934)년 6월에 진행된 라자구전투때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구상을 한목숨바쳐 관철할 일념 안고 앞장서 내달리던 한흥권동지는 적의
흉탄에 치명상을 당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하고 과단성있는 지휘밑에 서산포대는 점령되고 전투는 승리로 결속되였지만
한흥권동지의 가슴은 아프기 그지없었다. 상처의 아픔보다도 적탄이 비발치는 치렬한 격전장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일선에서 돌파구를 여시지 않으면 안되게 한 자책의 아픔이 몇곱절이나 더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총화에서 한흥권동지를 높이 평가하시고 그를 급히 후송하여
치료하도록 대책을 취해주시였으며 귀중한 보약재들과 영양제들을 마련하여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런 은정깊은 사랑이 있어 한흥권동지는 기적적으로 소생하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대해같은 사랑과 믿음, 불같은 동지애의 세계에 매혹되고 수령님이시야말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시라는 고귀한 진리를 심장깊이 체득하였기에 한흥권동지는 제1차 북만원정의 길에서 혁명의 수령을 어떻게
결사옹위하여야 하는가를 산모범으로 보여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을 목숨바쳐 옹위하는 길에 혁명전사의 참된 삶이 있다는 투철한 관점을 지니고
무수한 시련의 고비를 넘겨야 하는 항일의 전장마다에서 수령결사옹위정신을 남김없이 발휘한 한흥권동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한 한흥권동지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시였지만 북만의
항일련군부대들에서 군정간부의 부족으로 많은 곤난을 겪고있다는것을 아시고 박길송, 전창철동지를 비롯하여 다른 지휘관들과 함께 북만에 파견하시였으며
그가 희생되였다는것을 아시고는 비통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조국개선을 앞두고 그려보신 투사!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혁명적도덕의리의 세계에 떠받들려 한흥권동지는 오래전에 우리곁을
떠나갔지만 오늘도 참다운 혁명가, 유격대중대장으로 당과 조국, 후대들의 기억속에 영생하고있는것 아닌가.
승리와 영광으로 빛나는 동지애의 력사를 다시금 되새겨보며 우리는 참관을 이어갔다.
최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