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5월 3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수난자의 설음

 

나라잃은 백성은 상가집개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대흥군에서 살던 김경술로인이 해방전에 체험한 일을 통해서도 그 말의 의미를 다시금 뼈저리게 새겨안게 된다.

해방전 대동강상류에서 떼를 몰던 사람들은 항상 사자밥을 지고다니였다. 일본자본가놈들의 등쌀에 못견디여 휴식도 없이 밤낮으로 떼를 몰다나니 종종 생때같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군 하였다. 대동강가에서는 녀인들과 어린이들의 통곡소리가 그칠새없이 울려나왔다.

9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경술이도 아버지를 따라 잔뼈도 굳기 전에 위험천만한 떼에 오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느날 경술이는 아버지와 함께 죽을 고생을 하며 떼를 몰고 근 한달만에 평양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목재상놈은 이 구실, 저 구실 대며 품삯을 주지 않고 제놈이 경영하는 음식점에서 밥을 외상으로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선심이나 쓰듯이 지껄이였다.

여러날 기다려서야 품삯이라는것을 받았지만 먹고 잔 값을 제끼고나니 돌아갈 로자도 안되였다. 억울하였지만 나라없는 그들에게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부자는 밥을 빌어먹으며 수백리길을 걸어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14살 나던 해 경술은 다시는 떼를 몰지 않겠노라며 도끼를 차고 처서판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거기서도 왜놈들의 채찍밑에 많은 조선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기고있었다. 경술은 하는수없이 다시 떼를 몰지 않으면 안되였다. 17살 나던 해에 그는 일본놈들이 자기를 징병으로 끌어가려는것을 알고는 양덕으로 도망쳐 이름을 경찬으로 고치였다.

경술은 조국이 해방되여서야 비로소 자기의 이름을 되찾게 되였다.

이것은 단순히 한 수난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우리 민족이 당한 설음이였고 비참한 운명이였다.

해방전 우리 인민이 강요당한 불행과 고통에 대한 피눈물나는 이야기는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안아주는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을 목숨과도 같이 지켜야 한다는 진리를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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