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4월 12일 《로동신문》
실화
량강도사과
《
봄날이였지만 눈산의 웅건한 기상을 떨치는 포태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아직도 차거웠다. 그 바람에 사과나무아지들은 가볍게 흔들리고있었다.
한참이나 확대경으로 사과나무들의 생장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량강도과학기술위원회 실장 강경주의 주름진 눈가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벌써 세번째 겨울을 이겨냈구나.)
한두해도 아니고 수십년간의 연구끝에 키운 사과나무들을 포태산기슭의 삼지연감자가루생산공장 구내에 심은지도 몇해가 흘렀다.
지난해에 첫물사과가 많이 달렸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올해에도 이렇게 봄날에 접어들기 바쁘게 또다시 찾아온 그였다.
겨울을 이겨낸 사과나무들의 싱싱한 자태를 바라보느라니 가슴가득 차오르는 기쁨을 누를길 없었다.
(
* *
강경주에게는 사과나무와 첫 인연을 맺은 유년시절의 추억이 있다.
그가 나서자란 마을주변에 과수시험장이 있었다.
어린 경주와 그의 동무들은 작은 사과라고 즐겨부르던 쪼꼬마한 열매들이 가득 달린 나무들을 보려고 짬만 있으면 이곳으로 오군 하였다.
어느날엔가도 그는 동무들과 함께 과수시험장으로 한달음에 달려왔었다.
그런데 어느새 다가왔는지 시험장 연구사가 아이들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너희들이 앞으로 과학자가 되면 주먹만한 사과를 만들어보렴.》
《주먹만한 사과?》
연구사의 이 말이 꿈많은 동심을 흔들어놓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제대배낭을 지고 고향으로 돌아와 애틋한 추억을 떠올리는 과수시험장을 찾았던 그는 매지나무에 접한 사과나무들에 여전히 작은 사과가 달린것을 보았다. …
혜산농림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면서 강경주는
량강도의 산들에는 살구나무가 많다, 이런 야생살구나무를 심고 거기에다 접을 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추위에 견디는 돌배나무에다 접을
한다든지 하면 개량된 살구나 배를 얻을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며 과일이 안된다고 그저 팔짱만 끼고앉아있어서는 백년 가도 제밭에서 딴 과일을
먹을수 없을것이라고 하신
대학을 졸업한 후 국토관리부문의 어느한 단위에 배치되여 일할 때에도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사과나무가 자리잡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저를 과수연구부문에 보내주십시오.》
그의 뜻밖의 제기에 해당 부문 일군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추운데서 어떻게 과일나무를 자래운다고 그러오?》
그러나 절절히 터놓는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
이렇게 강심먹은 그는 탐구의 먼길을 떠났다.
어느해인가 그는 과일나무재배를 잘하기로 소문난 덕성군의 한 연구사를 찾아갔다. 로연구사는 먼길을 오느라 지친 그의 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리고 멀리 구름우에 솟아있는 후치령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 령우에서부터 량강도가 시작되는데 너무나 높고 추운 곳이거던.…》
두번째로 다시 찾아갔을 때 그는 퍼그나 달라진 기색이였다.
《과수연구는 한두해로 그칠 일이 아닐세. 한생을 다 바친다고 해도 열매를 얻지 못할수도 있지. 하지만
그러면서 그는 자기가 일생 터득해온 귀중한 경험들을 아낌없이 넘겨주었다.
다음날 렬차를 타려고 역으로 향하던 강경주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식물상이 매우 다양한 후치령에 꼭 한번 가보라던 로연구사의 당부가 자석처럼 그의 마음을 끌어당겼기때문이다.
그는 신들메를 바싹 조여매고 후치령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바늘잎나무, 넓은잎나무, 산과일나무들이 다양하게 분포되여있는 후치령은 말그대로 하나의 자연박물관이였다.
그는 령길을 톺아오르며 사과나무의 접그루로 리용할수 있는 산과일나무들의 분포상태와 특성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관찰하면서 후치령을 저물녘에야 넘어섰다. 그후에도 온 나라 방방곡곡을 메주밟듯하면서 수집한 우수한 과일품종들을 생활력이 강한 북방의 매지나무들에 접하면서 시험을 거듭해갔다.
그 나날 강경주가 사는 단층집 뒤울안에는 자그마한 시험《과수원》이 생겨났다.
그러던 어느해 봄날 사과꽃이 활짝 피여나더니 가을에는 사과알들이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달렸다.
주먹만큼 큰 사과!
마을사람들이 자기 고장에 펼쳐진 보기 드문 희한한 사과풍경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품들여 키운 사과나무들은 혜산시만이 아니라 도안의 여러 지역에도 뿌리내리였다.
하지만 그는 만족할수 없었다. 백두산아래 첫 동네 삼지연군(당시)에도 사과꽃을 피우고싶었다.
해발 1 000m가 훨씬 넘는 삼지연지방에서 사과나무를 자래운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량강도의 그 어느곳에서나 사과나무가 자라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밤이면 잠들수가 없었다. 그렇게 되여 삼지연군에로 이어진 그의 헌신의 길은 여러해째 계속되였다.
홍안의 시절에 고산지대 과수연구를 시작한 그의 나이도 어느덧 50고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애국의 마음은 더욱 푸르러갔다.
강경주가 애지중지 키운 사과나무모를 안고 삼지연감자가루생산공장으로 찾아갔을 때였다.
사과나무모를 본 공장일군은 이렇게 물었다.
《겨울이면 박달나무도 얼어터진다는 삼지연지방에서 사과나무가 정말 자랄수 있습니까?》
《당장은 저도 장담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노력하면 자기 손으로 가꾼 과일을 먹을 때가 꼭 오게 될겁니다.》
강경주의 목소리는 신심으로 가득차있었다.
그때로부터 몇해가 흘렀다. 그동안 그는 이 공장에 자주 찾아왔다.
마침내 백두산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삼지연시 포태동과 베개봉기슭에서도 사과꽃을 피웠다.
* *
그는 오늘도 사과나무모들이 든 배낭을 지고 또다시 탐구의 길을 떠난다.
4월의 봄빛이 짙어가는 산천을 바라볼수록
(우리
오늘도 그는

강경주동무(가운데)
글 및 사진 특파기자 전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