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4월 10일 《로동신문》

 

우리 세대의 삶의 거울, 귀중한 본보기 

다기대운동의 선구자 처녀직포공영웅

한해동안에 100만m의 천을 짠 리화순동지에 대한 이야기

 

16대로부터 80대로!

이것은 천리마시대의 한 처녀직포공이 다룬 기록적인 직기의 대수이다.

혼자서 80대의 직기를 맡아 한해에 100만m의 천을 생산한 다기대운동의 선구자, 그는 김정숙평양방직공장의 리화순영웅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리화순동지가 꿈결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 만나뵈온것은 주체53(1964)년 10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작업현장에서 만나신 한 처녀직포공이 48대의 직기를 다루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시면서 몸은 건강한가, 앓지 말고 앞으로도 건강한 몸으로 일을 잘하라고 따뜻이 고무해주시였다.

리화순동지는 그날밤 북받치는 격정으로 하여 도저히 잠을 이룰수 없었다.

(어머니, 난 오늘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만나뵈옵는 영광을 지녔어요. …)

마음속으로 이렇게 뇌이는 그의 눈앞에 지나온 나날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슬하에서 자란 그는 철들기 전부터 남녘땅에서 남의 집 아이보개노릇을 하면서 모진 구박과 천대를 다 받았다. 그때 주인놈은 그가 걸치고있는 누데기가 보기 싫다고 소가죽같은 천으로 《옷》을 지어주었는데 그 옷을 입으면 살갗이 쓰리고 아프기란 이루 말할수 없었다.

그후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놈들의 폭격에 어머니와 헤여져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던 그는 인민군전사의 희생적투쟁으로 구원되여 초등학원에서 난생처음 제 이름 석자를 써보며 우리 글을 익혔다.

학원을 졸업하고 공장에 배치되였을 때만 하여도 두대의 직기앞에서조차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던 자기가 오늘은 혁신자가 되여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왔으니 세상에 이런 복된 삶과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하는 생각으로 그는 온밤 베개잇을 눈물로 적셨다.

그럴수록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에 더 많은 천을 짜는것으로 보답할 결의로 가슴이 후더워올랐다.

리화순동지는 모든 혁명은 선두에서 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승리할수 있다고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을 심장에 새기고 다기대운동의 봉화를 더 높이 추켜들었다. 그는 7대의 직기를 더 맡아 55대로 늘일것을 결의하였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은 혼자서 너무 많은 기대를 맡아보면 천의 질을 높일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공장당위원회와 여러 혁신자의 방조밑에 마침내 55대의 직기를 능숙하게 다룰수 있게 되였으며 천의 질도 높은 수준으로 계속 끌어올렸다.

그리하여 1965년도계획을 5월중에 빛나게 완수하고 다기대운동을 하면 천의 질을 높일수 없다던 보수주의자들에게 된타격을 안기였다.

주체54(1965)년 8월 또다시 공장을 찾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화순동지가 년간계획을 끝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기뻐하시며 친딸의 일솜씨를 자랑하시듯 일군들에게 이 동무가 많은 기대를 혼자서 맡아보는데 벌써 5월에 년간계획을 수행하였다고 하시면서 그에게 장하다고, 계속 일을 잘하라고 힘과 용기를 안겨주시였다.

믿음은 기적을 낳았다.

날이 갈수록 더해만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은 최고기록으로 알려졌던 55대를 돌파하고 그보다 11대나 더 많은 66대라는 새로운 기록을 창조한 기적의 원천으로 되였다.

그때까지 최고기록으로 알려졌던 55대의 기준량을 돌파하고 66대의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과정에는 난관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기대앞에서 일하는 480분의 1분1초를 어버이수령님께 다진 맹세를 지키는 더없이 귀중한 시간으로 여기고 단위시간내에 작업능률을 높이기 위하여 온갖 정력을 다 바치였다.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에도 식탁들을 직기로 가상하여 그것들을 눈가늠해보면서 합리적인 순회작업방법을 궁리하였고 어두운 밤이면 공장구내의 나무들을 직기로 삼고 그 사이를 누비기도 하였다.

그가 새로운 방법으로 기대들을 순회할 때마다 그길을 백묵으로 표시해주기도 하고 시간을 일일이 재주기도 하는 동무들의 적극적인 방조속에 리화순동지는 기대들을 순회하는 시간을 더 단축할수 있는 새로운 작업방법을 찾아내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수 없었다.

전진, 전진, 투쟁 또 전진할데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온 나라가 혁명적대고조를 일으키고있는 천리마대진군속에서 그는 또다시 6대를 더 맡아 72대의 직기를 능숙하게 다룰수 있게 되였다.

하여 그는 7개년인민경제계획을 몇배로 넘쳐 수행하는 기적을 창조하고 제2차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에 참가하는 영광을 지니였다.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대회에 처음 참가한 리화순동지의 가슴은 끝없는 영광과 기쁨으로 하여 마냥 설레이였다.

크나큰 환희로 설레이는 대회장의 높은 연단에 올라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현대적설비를 갖춘 나라의 믿음직한 경공업기지의 하나로 전변된 공장이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속에서 거둔 눈부신 성과와 다기대공으로 자라난 과정에 대하여 이야기한 그의 토론은 대회참가자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회참가자들에게 누구나 다 옷을 입을 때에는 이 동무를 생각하라고, 이 동무가 한해동안에 짜내는 천만 하여도 100만m나 된다고, 이 동무야말로 참다운 천리마기수이며 우리 시대의 영웅이며 훌륭한 혁명가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면서 리화순동지에게 공화국공민의 최고영예인 로력영웅칭호를 안겨주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믿음이면 이보다 더 큰 믿음, 사랑이면 이보다 더 뜨거운 사랑이 또 어디에 있으랴.

리화순동지의 가슴속에서는 길가의 조약돌처럼 버림받던 자기를 다기대운동의 선구자로, 나라의 영웅으로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하늘같은 은덕에 더 높은 천생산성과로 보답할 충성의 맹세가 용암처럼 끓어번지였다.

그후 리화순동지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집단적혁신을 일으켜나가는 과정에 80대의 직기를 맡아보면서 1968년도계획도 훨씬 넘쳐 완수하였다.

조국이 어려운 길을 걸을 때 한몸 내대고 수령의 믿음에 애국의 실적으로 보답한 천리마시대 선구자들,

천리마시대의 불꽃이 되고 불길이 된 그들의 영웅적삶은 우리에게 수령의 사상과 의도를 높이 받들고 그것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결사관철해나갈 때 사회주의강국의 래일을 하루빨리 앞당겨올수 있다는 진리를 더더욱 가슴깊이 새겨주고있다.

 

본사기자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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