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4월 9일 《로동신문》
실화
영예근로자의 출근길
39년!
결코 짧지 않은 로동생활이였다. 하지만 그 기나긴 세월 한직종에서 일하였다는 사실만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준것은 아니였다.
문수봉화피복공장 재봉공 김정선, 그는 9년전에 한다리를 잃은 녀성이였다.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진정한 애국자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의족을 한 불편한 몸으로 변함없이 걷고 또 걸은 9년간의 출근길에는 한 인간의 참된 마음과 무한한 성실성, 열렬한 애국심이 비껴있었다.
* *
9년전 가을 어느날, 그날은 김정선이 공장에 들어온지 3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의 표현대로 한다면 《30살》이 된 그날 그는 뜻밖의 일로 운명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였다.
그날 아침 여느날보다 일찍 출근길에 올랐던 김정선이 심한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실려간것이였다.
옹근 하루만에 정신을 차린 김정선은 실컷 자고난듯 몸을 움씰거리며 눈을 떴다. 똑똑 떨어지는 수액이 담긴 병이 눈에 안겨들더니 어디선가 《정선아!》 하는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였다. 그제서야 그는 뜻밖의 일을 당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던 일이 생각났다. 어디를 다쳤을가. 이렇게 생각하며 자기 몸을 더듬던 그는 와뜰 놀랐다. 한쪽다리가 없는것이 아닌가.
그는 그만 비명을 지르며 이불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솟구쳤다.
그후부터 김정선은 아무 말도 없었다.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무들이 찾아와도, 가족친척들이 병문안을 와도…
그러는 그의 뇌리에는 보람찬 로동속에 흘러간 날과 달들이 괴로움을 더해주며 끝없이 떠오르군 했다.
사릉사릉 돌아가는 재봉기와 함께 혁신의 꽃을 활짝 피워가던 잊지 못할 처녀시절이며
얼마나 많은 꿈과 희망을 이루며 수십년세월 지켜온 일터였던가.
가정을 이룬 후에도 변함없이 일 잘하는 그를 공장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성실하고 근면한 우리 재봉공이라고 떠받들어주었다.
오래동안 당세포비서로 일하면서 수많은 기능공들을 키웠고 작업반을 2중3대혁명붉은기단위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그를 조국은 공훈재봉공으로 내세워주었다.
맡은 일을 잘하여 근로자의 본분을 다한것밖에 없는 자기에게 거듭 안겨지는 나라의 은덕을 두고 김정선은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했다.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일손을 멈추지 않으리라고, 사랑과 정이 어린 기대를 절대로 떠나지 않으리라고.
그런 그에게 로동능력상실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가 내려졌으니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팠으랴.
사륜차에 몸을 실은 김정선은 통일거리 고층살림집창문가에서 종일토록 자기가 수십년세월 이어온 출근길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였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 정다운 동무들이 있고 사랑하는 일터가 있었다.
사실 지난 시기 일터에서는 둥둥 떠받들리우는 그였지만 집에서는 영 반대였다.
이른아침에 나갔다가 밤늦게야 집에 들어오군 하는 그는 남편에게도, 사랑하는 딸에게도 늘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서 살았다. 착상발표회에 내놓을 새 제품도안을 그려보다가 그만 밥을 태우고 집사람들의 출근시간을 지연시킨 일도 빈번하였다. 그럴 때면 그의 남편은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진옥아, 오늘 아침엔 엄마를 먼저 출근시켜야겠다. 밥은 이 아버지가 다시 지어주마.》라고 하군 했다. 남편은 늘 그렇게 그를 리해해주었지만 딸 진옥이만은 그렇지 못했다.
《어머니, 재봉일 이젠 그만하시지 않겠나요? 30년이 되여오는데 그만하면 어지간히 했지요 뭐. 밤낮으로 재봉기를 돌려도 내 옷 하나 만들어준적도 없으면서…》
진옥이 그렇게 토달거리는데는 사연이 있었다.
언제인가 봄철운동회때 진옥은 정선이 일하는 공장에까지 찾아와 자기가 직접 작성한 음식명세표를 내놓았다.
《어머니, 래일 운동회때 이대로만 해주세요.》
딸이 내놓은 명세표는 간단했다. 유별한것이라야 깨밥과 닭알말이였다. 꼭 그대로 해주마 철석같이 약속을 하였지만 정선은 그날에 신입공의 기능을 높여주느라 시간가는줄 모르고있다가 늦게야 집에 들어왔다. 새벽에 일어나 닭알은 사왔지만 깨만은 끝내 얻을수가 없어 정선은 깨밥대신 비빔밥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밥곽을 펼쳐보던 진옥이 볼이 부어 이렇게 내쏘는것이 아닌가.
《엄만 너무해요. 다른 아이들처럼 맛있는 당과류를 사달라고 한것도 아닌데… 아마 직장일이라면 이렇게는 안했을거예요.》
그렇다. 비록 철없는것의 말이였지만 정선은 그 말을 부정하고싶지 않았다.
수십년세월 이제는 너무도 정이 들어 하루라도 일손을 놓으면, 기대앞에 서지 않으면 못살것같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근길을 다우치는 정선이였다.
그런 출근길은 정선에게 있어서 삶의 희열과 로동의 긍지, 보람을 안겨주는 소중한것이였다.
출근길, 소박한 이 한마디 말속에 자기의 성실한 땀을 깡그리 쏟은 김정선의 순결한 량심이 비껴있는것이다.
진옥이 제대되여온 날 《어머니의 출근길은 지금도 변함없겠지요?》라고 묻는 말에 정선은 흔연히 대답했다.
《그럼. 그 길은 나라앞에 지닌 의무를 다하러 가는 길이 아니냐.》
딸에게 한 그 말이 다시 공명이 되여 정선의 귀전을 울려주었다.
출근길은 키워주고 내세워주고 보람찬 로동생활을 안겨준 고마운 어머니조국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였다. 정녕 그래서 쓰러지면서도 그리고 심장이 뛰는한 쉬임없이 이어가야 할 길인것이였다.
김정선은 집에 있는 재봉기곁으로 사륜차를 몰아갔다. 그의 집에서는 밤낮으로 재봉기 돌리는 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며 재봉기를 돌리고 또 돌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가족들은 눈물을 머금었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불편한 몸으로 재봉일을 얼마나 할수 있는가를 가늠해보기 위해 이른아침부터 재봉기앞에 마주앉아있는데 초인종소리가 나더니 이내 낯익은 사람들이 방안에 들어서는것이였다.
인츰 재봉기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솟구치던 그는 그만 사륜차와 함께 앞으로 어푸러지고말았다. 그러는 그를 일으켜세우며 공장지배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럴줄 알았다니까. 재봉기를 떠나서야 김정선이 아니지.》
이어 그는 정선의 손을 이끄는것이였다. 어서 가자고, 의족을 하면 걸을수도 있고 그러면 이전처럼 공장에도 출근할수 있다는 말에 정선은 그만 환성을 올리였다.
정선은 그 고마운 손길에 떠받들려 로동생활을 다시 시작하였고 자기의 출근부를 만근으로 빛내일수 있은것이였다.
한다리를 잃고도 9년동안 변함없이 출근길을 이어오는 그에게 나라에서는 더 많은 혜택을 안겨주었다.
그 사랑속에 정선은 료양소에로의 길을 떠났고 어디를 가나 우대를 받았다. 이런 고마운 제도를 위해 무엇을 아끼고 그 무엇을 서슴으랴.
정선은 일하고 또 일해도 성차지 않아 단 하루도 번짐이 없이 출근길에 올랐고 이날이때껏 성실한 근로의 땀을 바쳐왔다.
명예와 평가를 바람이 없이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을 누구보다 더 존중하고 내세워주는 고마운 어머니당의 품에서 자기의 삶도 빛나고있음을 정선은 페부로 절감하였다.
* *
올해 정초
만근자!
수십년세월 한직종에서 묵묵히 새겨온 한페지한페지의 출근기록, 그속에 영웅의 첫걸음, 위훈자, 혁신자의 첫걸음이 있는것이 아닌가.
김정선의 로동생활은 참된 애국앞에, 고결한 인생앞에 바로 만근이 있다는 삶의 진리를 다시금 새겨준다.
그는 오늘도 정든 일터로 출근길을 이어간다.
결코 평범치 않은 영예근로자의 출근길은 충성과 애국의 삶에 잇닿아있는 참된 인생길이다.

글 본사기자 오은별
사진 리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