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4월 12일 《우리 민족끼리》

 

한편의 신문기사를 보시고도

 

《경사스러운 4월의 명절을 앞두고 단천-만덕사이 철도전기화공사가 완공되여 개통하였다.

단천-만덕사이의 철도가 전기화됨으로써 그 수송능력이 높아져 허천지구에서 생산되는 광석들을 더 빨리 실어나르고 이 지방에 풍부한 자연부원을 적극 개발하여 인민경제의 주체화, 현대화를 실현하는데 보다 잘 이바지할수 있게 되였으며 수송에서 문화성과 봉사성을 높이고 인민들의 물질문화생활을 높이는데 기여하게 되였다.

10일 허천역에서는 단천-만덕사이 전기철도개통식이 진행되였다.》

이것은 주체78(1989)년 4월 11일부 《로동신문》에 실린 기사의 한 대목이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 기사를 보시고 그처럼 기뻐하실줄 누가 알았으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인민에 대한 사랑을 가장 숭고한 높이에서 체현하고계시는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십니다.》

주체78(1989)년 4월 어느날 아침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동신문》을 보고계시였다.

그때 마침 그이께서 부르신 녀성일군이 집무실에 들어섰다. 녀성일군은 위대한 수령님께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신문에 좋은 소식이 실렸다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녀성일군은 저도모르게 무슨 좋은 소식이 실렸습니까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물음이 외람되게 느껴져 얼굴을 붉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동무의 집이 허천이지라고 하시면서 평양에 올 때 뭘 타고왔는가고 물으시였다.

기차를 타고왔다는 녀성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슨 기차를 타고왔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그는 단천까지는 증기기관차를 타고 나왔고 그다음엔 평양까지 전기기관차를 타고왔다고 대답드리였다.

그때까지 허천은 전기철도가 들어가지 못한 곳이였다.

녀성일군은 대답을 드리면서도 얼떠름해졌다.

그러는 그를 바라보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안광에는 기쁨이 한가득 어려있었다.

그이께서는 이제 집에 갈 때는 전기기관차를 타고 쭉 갈수 있겠다고 하시며 보시던 신문을 내보이시였다.

신문 1면의 하단 한쪽에 단천-만덕사이 철도전기화공사가 완공되여 개통하였다는 기사가 실려있었다. 허천은 바로 그 로선상에 있는 고장이였다.

녀성일군은 불시에 눈굽이 뜨거워졌다.

전기기관차를 타고 고향으로 가게 되였다는 기쁨보다 그 누구도 례사롭게 생각하며 그저 스쳐지났을 신문의 기사내용을 보시고도 커가는 인민의 행복을 생각하시며 그처럼 기뻐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사랑에 목이 메였던것이다.

녀성일군은 감격에 겨워 그이께 얼마 되지 않는 우리 허천군사람들을 위해서 전기철도까지 놓아주시니 고향사람들을 대표해서 큰절을 올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 나라 철도를 전기화할데 대한 당의 웅대한 구상을 높이 받들고 단천-만덕사이 철도전기화공사를 성과적으로 끝낸 전기철도건설자들의 수고를 헤아리시며 인사는 오히려 자신께서 그들에게 해야겠다고 하시는것이였다.

자신께 큰 기쁨을 주었다고 하시며…

우리 수령님은 바로 이런분이시였다.

모든 사색과 실천의 중심에 언제나 인민의 행복을 놓으신 우리 수령님이시기에 신문에 실린 한편의 기사를 보시고 그리도 기뻐하신것 아니랴.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은 인민의 기쁨과 행복에서 가장 큰 락을 찾으시며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생이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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