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3월 29일 《우리 민족끼리》

 

명곡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를 들을 때면

 

얼마전 수도의 밤거리를 걷던 나는 어느 불밝은 창가에서 울려나오는 은은한 피아노소리에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명곡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의 선률이였다.

 

행복의 요람속에 인민을 재우시고

이 밤도 사랑의 길 떠나시는 수령님

찬이슬 내리는데 또 어데 가시옵니까

수령님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새기면 새길수록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한평생이 어려와 가슴뜨거워짐을 금할수 없는 명곡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수령님 같으신분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날마다 우리 조국의 새벽문을 누구보다 먼저 여신분도 위대한 수령님이시였고 봄날의 첫비를 바람세찬 들에서 먼저 맞으신분도 수령님이시였으며 겨울이면 숫눈길우에 첫 자욱을 찍어가신분도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인민들이 있는 곳이면 다 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며 진창속에 빠진 승용차를 손수 밀기도 하시고 풋강냉이 한이삭으로 끼니를 에우기도 하시며 공장과 농촌, 학교와 마을을 찾아 쉬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신 인민의 어버이.

끝없이 이어가신 위대한 헌신의 날과 달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해 정월 첫 일요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모란봉구역에 새로 건설된 한 탑식주택을 찾으시였다. 새 집이 인민들의 마음에 드는가를 알아보시며 계단을 오르시던 수령님께서는 웃층에서 결혼식을 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우리도 결혼을 축하해주고 가자고 하시며 기뻐하시였다.

잠시후 계단을 오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고 우리가 올라가면 결혼식장에서 흥이 깨질수 있다고 하시면서 다시 한층한층 층계를 내려오시였다.

함박눈이 내리는 밖으로 나오시여 기쁨으로 떠들썩하는 웃층을 올려다보시며 하늘도 새 가정을 축복하는군 하시면서 미소를 지으셨던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 현지지도의 길을 떠나가시고 함박눈은 소리없이 내리는데 뒤미처 달려내려온 새 가정의 주인들은 행복의 눈물을 쏟고쏟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휴식날도 명절날도 가림없이 쉬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걸으시였다.

자신의 제일 큰 락은 인민들속에 들어가 인민의 목소리를 듣는것이라고 하시며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현지지도의 길을 걷고걸으신 우리 수령님의 고매한 풍모를 절감하게 하는 명곡은 우리 인민뿐 아니라 세계 진보적인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기에 세계의 이름있는 음악가들이 참가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때마다 명곡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가 위인칭송의 노래로 뜨겁게 메아리쳤다.

우리 인민과 세계 진보적인류가 간절한 소원을 담아 부르는 송가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맙소, 고맙소라고 거듭 뇌이시며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나도 건강하고 동무들도 건강하여 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혁명을 더 잘해나가자고.

인민의 열화같은 마음을 싣고 소원을 싣고 명곡은 울려퍼졌지만 인민의 념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진정 명곡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는 결코 추억의 노래가 아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셨던 한생의 좌우명을 새겨안으시고 혁명령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시던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이 나라 천만자식들이 심장으로 부르던 축원의 노래는 오늘 경애하는 원수님을 운명의 태양으로 믿고 따르는 심장마다에서 뜨겁게 울리고있다. 

하루라도 한시라도 편히 쉬시옵기를

수령님 수령님 인민들은 바라옵니다

 

위대한 수령님들을 우러러 터치였던 인민의 목소리는 그대로 사회주의건설의 전면적발전을 위한 오늘의 총진군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의 불타는 소원이다.

인민의 행복을 위해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걷고걸으시던 그 길을 오늘도 변함없이 낮이나 밤이나 이어가시는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모시여 명곡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는 수령칭송의 노래로 끝없이 울려갈것이다.

박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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