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은 못잊습니다
아이들의 옷차림도 눈여겨보시며
(평양 12월 1일발 조선중앙통신)
주체61(1972)년 5월 어느날이였다.
평양과수농장(당시)에 대한 현지지도를 끝마치고 돌아오시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연하게 펼쳐진 과원을 바라보시다가 동행한 일군에게 차창밖을 보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곳에서는 대여섯살쯤 나는 사내아이 셋이 기쁨에 겨워 발을 동동
구르며 승용차를 향해 두손을 련거퍼 올리고있었다.
그런데 옷이며 얼굴이며 온통 흙투성이였다.
그 일군은 수령님께서 아이들의 모습이 대견하시여 보라고 하신줄로만 알고 장난들이 심하다고 말씀올렸다.
줄곧 차창밖을 내다보고계시던 수령님께서는 다시금 그 일군에게 아이들의 옷을 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이의 물으심이 가늠이 되지 않아 일군은 잠시 망설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신중하신 기색으로 아이들의 옷에 단추가 성한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 아이는 몽땅 떨어졌더라고 하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마 집에서 나올 때는 다 제대로 달려있었을것이라고 하시며 나와서
장난질하는 사이에 다 떨어졌을것이라고, 피복공장에서 단추를 든든히 달아주지 않았다고 문제를 세울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든든하게 달아준들 장난이
심한 아이들한테야 견딜수 있는가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단추가 저러니 다른데야 더 말할것도 없을것이라고 이르시며 아마 어른들이 한벌 가지고 견딜 때 아이들은
두벌, 세벌 가지고도 안될것이라고, 그러니 아이들이 많은 집에서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고 하시였다.
단추 떨어진 아이들의 옷을 보시고도 어머니들의 수고와 부담을 념려하시는 수령님이시였다.
그 순간 위대한 수령님의 사색속에 새로 채택될 고마운 결정, 아이들의 옷과 신발값을 대폭
낮출데 대한 중요한 결정이 무르익고있었음을 일군은 알수 없었다.
이해에 어린이들의 옷과 신발값을 훨씬 낮출데 대한 결정이 발표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