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극악한 국권유린범죄-을미사변

 

(평양 10월 9일발 조선중앙통신)

과거 일제의 조선침략사에는 전대미문의 야수적만행들이 수많이 기록되여있다. 그가운데는 1895년(을미년)에 명성황후를 살해한 흉악한 범죄행위도 있다.

강도적으로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책동은 19세기말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다.

일본반동정부는 저들의 야망이 뜻대로 실현되지 못하게 되자 그 주되는 원인이 명성황후의 친로배일정책에 있다고 간주하고 그를 살해할 음모를 꾸미였다.

명성황후는 조선의 국권을 한손아귀에 거머쥐고 고종황제를 대변하여 국정을 다스리고있던 국가권력의 대표자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명성황후살해를 현지에서 작전하고 집행할 적임자로 무지하고 극악한 군사깡패인 륙군중장 미우라 고로를 내정하여 조선봉건국가에 주재하는 일본공사로 파견하였다.

10월 8일 새벽 일본군대와 깡패들로 구성된 살인집단은 황궁에 침입하여 황제와 황태자를 감금한 다음 명성황후를 색출하기 위해 궁녀들을 마구 죽임으로써 궁성을 삽시에 일대 살륙장으로, 피바다로 만들었다.

일본살인악당들은 완전히 숨을 거두지 않은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한 녀인이 명성황후라는것을 확인하고 그를 홑이불에 둘둘 말아 준비해놓았던 장작더미우에 올려놓고 석유를 뿌려 불태워죽이였다. 타다남은 몇개의 뼈쪼각마저 저들의 범죄흔적을 없애기 위해 부근의 못속에 집어던졌다.

당시 조선주재 로씨야공사였던 웨베르는 1895년 10월 9일 본국에 보낸 전보문을 통해 일본살인악당들이 황궁에서 감행한 명성황후살해만행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그후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조선봉건정부의 모든 력사자료들을 독점하고 명성황후살해사건과 관련한 기록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도록 함으로써 을미사변의 책임이 저들에게 있다는 론의가 다시는 벌어지지 못하도록 책동하였다.

우리 인민은 과거 일제가 을미사변의 도발로 저지른 만고대죄를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다.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