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9월 25일 《우리 민족끼리》
직기바다의 갈매기
우리 공화국의 자랑찬 력사에는 어머니조국을 위해 애국의 열정을 깡그리 바쳐온 이 나라 아들딸들의 영웅적위훈이 값높이 새겨져있다. 그들속에는 혁명적대고조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던 나날에 《직기바다의 갈매기》로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로력영웅 리화순녀성도 있다.
《조선혁명은 하늘이 주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편단심 당을 따르고 옹위하는 영웅적

바다를 날으는 갈매기마냥 직기바다를 내달리며 80대의 직기를 다루던 다기대운동의 선구자-리화순녀성이 걸어온 길은 과연 어떤 인생길이였는가.
아이보개로부터 인민의 대의원으로, 불우한 인생길에서 보답의 순회길로!
이것이 리화순영웅의 인생행로였다고 말할수 있다.
고향이 남반부인 그는 일찌기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살다가 생활이 너무 가난하여 7살때 부자집 아이보개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부자집에 가서 몸종으로, 아이보개로 시달리면서 매일 가해지는 욕설과 매질에 온몸이 퍼렇게 멍들군 하였다.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 서울이 해방되자 어머니를 찾아 거리를 헤매이던 그는 8살의 어린 나이에 후퇴하는 인민군군인들의 등에 업혀 공화국으로 들어오게 되였다.
공화국의 품속에서 아무런 근심걱정없이 학원을 졸업한 그는 지난날 헐벗었던 우리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더 좋은 옷감을 마련해주시려는
그는 이때부터 다기대운동의 앞장에서 질풍같이 내달렸다. 주체53(1964)년 4월부터 《8》자형순회방법을 비롯한 10여건의 기술혁신안을 받아들여 다기대운동의 첫 봉화를 든 그는 해마다 직기수를 늘여 매해 년간계획을 4월말전으로 초과수행하였으며 《직기바다의 갈매기》로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주체53(1964)년 10월 어느날 방직공장을 찾아주신
이뿐이 아니였다.
주체57(1968)년 5월 어느날
180리를 걷는것으로 된다는 대답을 들으신
이날
순간 처녀방직공의 두볼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거치른 남녘땅에서 길가의 조약돌마냥 버림받고 천대받던 자기를 구원해주시고 키워주시고 보람찬 일터에 세워주신것만도 감사하기 이를데 없는데 온 나라가 다 아는 영웅으로까지 내세워주시는
그는 가슴벅차게 깨달았다. 어머니조국의 품,
그 품속에서 리화순녀성은 로력영웅으로, 나라의 정사를 론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진정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