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9월 20일 《로동신문》
어려울수록 더 따뜻이 품어안는 사회주의 우리 집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높이 발휘되는 고상한 미풍
173번째 인민반에서
1959년 11월 캄캄한 한밤중에 원산역에 내린 사람이 있었다.
어느 한 화학공장에서 제관공으로 일하는 리홍렬동무였다. 전쟁시기 적들의 폭격에 부모를 여의고 사랑하는 누이와도 헤여진 같은 작업반에서 일하는 한 로동자의 가슴속상처를 가셔주기 위해서였다.
어딘가에 꼭 살아있을것만같은 누이생각에 잠못이루는 그의 마음속고충을 풀어줄수 없겠는가 하고 늘 생각하던 리홍렬동무는 하루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몰려드는 피곤을 이겨내며 편지를 한자한자 써서 전국각지로 보내였다.
그러던 어느날 원산시에서 그의 누이를 보았지만 주소는 모른다는 회답편지를 받은 리홍렬동무는 즉시 길을 떠났다.
그는 우선 동사무소들을 찾아다니였고 다음에는 인민반을 차례로 훑기 시작했다.
길을 몰라 어떤 인민반에는 두세번씩 찾아간적도 있었다. 그러다나니 맥이 풀릴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동지의 행복을 위하여 고생하는것처럼 값있는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또다시 길을 떠났다.
이렇게 되여 그는 173번째의 인민반에서 그 녀인을 찾게 되였다.
찾아온 사연을 들은 녀인은 동생의 사진앞에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9년간이나 생사를 모르던 오누이의 감격적인 상봉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었다.
《이애도 내 딸이요》
1991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운전군부업수산작업반 관리위원회
제 딸을 먼저 구원하느냐 남의 딸을 먼저 구원하느냐 하는 이 갈림길에서 그는 주저없이 가까이에 있는 그애부터 먼저 안고 기슭으로 헤염쳐나왔다. 그가 다시 딸을 구원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딸이 숨진 뒤였다.
뒤늦게 달려온 마을사람들이 사연을 알고 위로의 말을 하자 문정섭동무는 구원된 동지의 딸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내 딸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소. 이애도 내 딸이요.》
자기의 자식보다 먼저 동지의 자식을 구원한 이런 미덕의 주인공을
편제없는 전투원
지난해 평양에서 함경남북도의 피해복구전구에 달려나간 사람들은 결코 수도당원사단의 전투원들만이 아니였다.
(내 비록 수도의 당원들과 함께 영예로운 대오에 설수는 없지만 이 나라 공민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
이튿날 그는 남편의 바래움을 받으며 북행길에 올랐다.
신포시당위원회 일군들은 먼길을 스스로 달려온 평양녀인의 진정에 감복되였고 그가 시녀맹돌격대에서 일하도록 해주었다. 이렇게 송정향동무는 편제없는 전투원이 되여 피해복구전투에 참가하게 되였다.
피해복구전투장에 스스로 달려나와 성실한 땀을 아낌없이 바친 평양녀인에 대한 이야기,
정녕 이것은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며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서로 위해주고 정을 두터이 하는 우리 나라에서만 꽃펴날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인것이다.
본사기자 김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