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감행한 대집단살인범죄-《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

 

(평양 8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

1945년 8월 24일 17시 20분경, 일본 교또부 마이즈루항입구 해안선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바다에서 갑자기 요란한 폭발과 함께 배 한척이 두동강나 침몰하였다.

나라가 해방되여 조국으로 돌아가던 수천명의 조선사람이 한순간에 수장된 이 사건이 바로 력사에 기록된 구일본해군 수송선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이다.

사건발생후 일본반동들이 《기뢰에 의한 침몰사고》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명백히 계획적이며 의도적인 조작에 의해 감행된 범죄적만행이였다.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의 전 과정과 피해생존자들의 증언, 조사발굴된 자료들이 그 내막을 폭로해주고있다.

일본방위성 전쟁사자료실에서는 출항을 며칠 앞둔 그해 8월 19일 해군성 운수본부에서 오미나또해군경비부 참모장에게 보낸 전보가 나졌다.

거기에는 《우끼시마마루》의 운항을 허가한다는 내용이 밝혀져있었다. 련합군의 명령으로 일본령해에서 100t급이상 선박들의 항행이 중지된 그때의 상황에서 4 730t급해군수송선의 승선과 출항이 승인되고 무난히 이루어졌다는것은 계획적인 폭침범죄사건의 성격을 실증해주고있다.

당시 《우끼시마마루》의 승조원은 배가 출항시에 얼마 되지도 않는 연료를 가지고 떠났다, 이것은 배가 처음부터 부산항까지 항행할 계획이 아니였다는것을 보여준다고 증언하였다.

폭발직전에 배에 탔던 일본인들이 다급히 뽀트를 타고 달아난것도 폭침흉계에 따라 사전대책이 세워졌기때문이라고밖에 달리 론할수 없는 사실이다.

기뢰해제가 끝난 안전항로였던 마이즈루항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그날 소해완료라는 신호를 받은 《우끼시마마루》가 기뢰에 맞다들었다는것은 일본반동들의 주장이 완전히 거짓이라는것을 증명해주고있다. 기뢰폭발시에 반드시 일어나는 물기둥도 솟구치지 않았고 기뢰는 한번밖에 폭발하지 않는데 이 배의 폭발시에는 여러번의 련속적인 폭발이 일어났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하였다.

이것은 《우끼시마마루》폭침사건이 패망에 대한 앙갚음을 가진 일제의 계획적인 대집단살인범죄사건이라는것을 만천하에 고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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