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8월 20일 《로동신문》
성실한 사회주의근로자
인민의 기쁨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며
늘
그 덕을 입고 살면서도 그런 직업이 있다는것을 종종 잊군 하는 경우가 있다. 하수준첩공도 그런 직업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인간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지만 누구나 선뜻 나서기 저어하는 그런 험한 일을 수십년세월 묵묵히 해오는 한 녀성이 있다.
평천구역상하수도관리소 유지보수직장 하수1작업반 하수준첩공 김천희동무이다.
《참된 삶의 가치는 사회와 집단, 조국과 인민, 당과 혁명을 위하여 한생을 바치는데 있습니다.》
1993년 여름 상하수도관리소에 입직한 김천희동무가 자진하여 하수준첩공일을 시작했을 때였다. 그의 아버지는 셋째딸인 그를 못내 대견해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은 언제나 한본새로 살아야 한다.》
전화의 불비속을 헤쳐온 로병이며 어렵고 힘든 부문에서 오래동안 일해온 로당원의 간곡한 당부는 그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시부모와 자식을 둔 가정부인이였지만 그는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던 고난의 시기에조차 어느 하루도 일터를 비우지 않았다. 궂은일이라고 하며 작업반을 뜨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의 출근길에는 변함이 없었다.
나의 일터는 당이 맡겨준 영예로운 초소라는 자각을 안고 맡은 일에 땀과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나날에 그는 인민의 리익과 편의를 위해서라면 그처럼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도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우리 당의 숭고한 인민사랑의 세계를 가슴깊이 절감하였다.
하기에 그는 하루일을 끝낸 뒤에는 맡은 지역의 하수망들을 파악하기 위해 피타게 노력하였다.
애쓴 보람이 있어 얼마후에는 무슨 일이나 막힘없이 해내는 기능공으로 되였다.
어느해 봄 작업반에 륙교지구의 하수망보수작업과 관련한 긴급과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그 일은 주민들이 모두 잠든 새벽시간에 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였다. 작업반장이 누구에게 과업을 줄것인가 하는 생각에 골똘해있는데 불쑥 김천희동무가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미리 준비한 갖가지 작업공구들이 들려있었다.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그 지구야 제가 파악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사실이 그랬다. 그만큼 작업반이 맡은 하수망상태에 대하여 손금보듯 환히 꿰들고있는 사람도 없었던것이다.
불현듯 얼마전의 일이 되새겨졌다. 작업반장이 다른 곳에서 작업을 마치고 밤늦게 작업반에 돌아오니 김천희동무가 무슨 략도를 들여다보고있었다. 작업반이 맡은 지역의 하수망략도였다. 거기에는 불비한 곳, 자주 살피며 손질해야 할 곳, 보수해야 할 곳 등이 구체적으로 표시되여있었다. 일하다가 방금 들어섰는지 옷자락이 젖어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략도작업에만 몰두하였다.
하기에 그날도 김천희동무는 작업반원들과 함께 어려운 작업과제를 손색없이 마무리할수 있었다.
언제인가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이른아침이였다. 작업반원들의 생각은 한결같이 어느 한 네거리로 쏠리였다. 비가 많이 올 때면 물이 미처 빠지지 못하여 애를 먹이군 하던 구간이였던것이다. 있을수 있는 정황을 예견하여 작업반에서 대책을 세워놓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작업반원들은 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현지에 다달았을 때였다. 누구인가 흠뻑 젖은 몸으로 망홀에서 나오는것이 아닌가.
그는 바로 김천희동무였다. 작업반원들이 서둘러 우산을 씌워주는데 그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이곳은 다른 일이 없으니 마음을 놓으세요.》라고 말하는것이였다.
김천희동무는 이렇게 살며 일하였다.
나야 당원이 아닌가고 하면서 어렵고 힘든 일감이 나서면 늘 솔선 두몫, 세몫씩 해제끼는 그를 두고 누구나 작업반의 보배라고 부르며 따랐다.
그는 작업반원들앞에서도 주민들앞에서도 언제나 밝은 웃음을 짓군 하였다. 그 웃음은 자기가 맡은 일에서 참된 보람을 느끼는 사람, 크든작든 자기가 하는 일이 나라에 보탬이 된다는것을 자각한 사람만이 지을수 있는 행복의 미소였다.
누가 볼수 없는 땅속의 일터, 뭇사람들의 시선을 끌수 있는 그런 자랑찬 위훈은 아니여도 인민들의 행복넘친 웃음소리에서 생의 보람을 찾으며 수십년을 한본새로 살아가는 그의 삶은 정녕 얼마나 고결하고 아름다운가. 하기에 우리 당은 평범한 하수준첩공을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값높이 내세워준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현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