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0(2021)년 8월 1일 《우리 민족끼리》

 

반드시 결산해야 할 침략범죄

 

날강도 일제침략자들에 의해 조선군대강제해산이라는 수치와 굴욕을 강요당한 때로부터 어언 114년이 되였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1907년 8월 1일 일제의 조선군대강제해산에 항거하여 싸우던 애국적군인들의 절규가 오늘도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메아리치고있다.

1905년 《을사5조약》의 날조로 우리 나라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1907년 《정미7조약》을 날조하여 내정권까지 찬탈한 일제는 우리 인민의 반일의식과 제놈들의 권력지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조선군대를 강제해산시키기 위하여 미쳐날뛰였다.

1907년 7월 29일 침략의 원흉 이또 히로부미(이등박문)는 《극비전보 105호》에서 조선군대를 전부 해산시킬데 대한 지령을 하달하였으며 그것이 해산집행전에 루설될 위험을 고려하여 일체 비밀에 붙일것을 지시하였다. 놈은 군사비를 절약하기 위해 취하는 조치인듯한 인상을 주려고 《군대정리》라는것을 들고나왔으며 7월 31일 밤 조선군대강제해산을 내용으로 한 황제의 《조칙》(명령)을 날조하여 매국역적 리완용에게 넘겨주면서 그것을 황제의 명의로 선포하게 하였다. 그리고는 조선주둔 일제침략군의 우두머리였던 하세가와를 내세워 조선군대해산날자를 8월 1일로 정하고 1차로 서울에 있는 시위보병 5개 대대, 기병대, 포병대, 교정대대를, 2차로 지방에 있는 《진위대》 8개 대대를, 3차로 헌병대, 려단사령부, 연성학교, 치중대, 홍릉수비대, 군악대를 해산시킬것을 계획하였다.

1907년 8월 1일 서울시내는 일제침략자들의 삼엄한 경계밑에 들어갔으며 하세가와는 아침 8시 서울주둔 조선군대의 부대장 및 구분대장회의를 소집하고 부대해산을 통고하고는 장교들로 하여금 도수훈련을 한다고 병사들을 꾀여 해산식장인 훈련원으로 무장없이 데려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훈련원에 빈손으로 모인 조선군대는 절반정도였으며 나머지는 이미 원쑤들의 간계를 간파하고 해산식장에 가지 않았다. 이후 보병 제1련대 1대대장이였던 박성환의 항거자결을 계기로 군인들의 반일감정은 무장폭동으로 이어졌으며 그들은 치렬한 시가전 끝에 일제침략군 100여명을 살상하고 적들의 포위를 뚫고나와 반일의병대에 합류하였다.

이날 일제의 간계에 넘어가 항쟁대렬에 참가하지 못하였던 애국적군인들도 분격을 금치 못해하면서 일제가 주는 더러운 《은사금》을 쥐여뿌리며 반항하였으나 적수공권으로 일제야수들의 삼엄한 포위망속에 갇히운채 해산당하고말았다.

이렇게 8월 3일부터 9월 3일까지의 기간에 일제는 기만적인 방법으로 서울에 주둔한 4 000명의 《정군》은 물론 지방의 《진위대》 5 000명도 해산시키였으며 군권을 완전히 장악하고는 조선을 제놈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었다.

지난 력사를 돌이켜보면 저들의 리기적목적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제국주의는 많았다. 하지만 일본군국주의자들처럼 이렇듯 주권국가의 자주권을 무참히 짓밟고 강탈한 례는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찾아볼수 없다.

그때로부터 한세기가 넘는 기나긴 세월이 흘렀으나 일본반동들의 조선침략책동은 의연히 계속되고있으며 그 수법도 더욱 다양해지고 로골화되고있다.

오늘도 일본반동들은 력사외곡책동에 한사코 매달리면서 이번에 진행되고있는 도꾜올림픽경기대회에서의 《욱일기》사용을 허가하고 《독도령유권》을 주장하며 조선반도재침의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있다.

그런데도 남조선의 친일보수패당은 과거 일제의 반인륜범죄에 대한 철저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려는 민심에 도전하면서 일본과의 《관계개선》나발을 불어대고 민족의 천년숙적과 붙어돌아가고있다.

이제 더는 지난날의 망국사가 남긴 피의 교훈을 되풀이할수 없다.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저지른 만고죄악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반드시 결산하고야말겠다는것이 우리 민족의 드팀없는 의지이다.

일본의 재침망동은 전체 조선인민의 반일의지를 더욱 활화산처럼 타오르게 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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