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력갱생으로 전진하여온 력사 (15)
전후의 첫 뜨락또르 생산
(평양 6월 24일발 조선중앙통신)
우리 나라에서 첫 뜨락또르는 전후인 주체47(1958)년에 생산되였다.
당시 전쟁(1950. 6. 25-1953. 7. 27.)의 후과로 나라에는 뜨락또르를 생산할수 있는 기계공업이 마련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협동화가 완성된 농촌에서는 선진농기계의 대수를 늘일것을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요구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제것이 있어야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수 있다고, 우리가 뜨락또르를 제힘으로 만들어야 기술도 발전하지 남의것을 사다쓰기만 하면 우리의 기술을
발전시킬수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뜨락또르를 만든다는것은 우리 나라 기술혁명에서 큰 발전이라고 하신
공장의 로동자, 기술자들은 기술과 경험, 전문기계설비, 단 한장의 설계도면도 없었지만 첫 뜨락또르생산에 힘과 정열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뜨락또르를 분해해놓고 부속품의 도면을 그렸고 그것을 보면서 부속품을 깎았다. 어떤 때는 한개의 부속을 깎는데 몇번씩 실패를 거듭하고 규격소재가 부족한 어려운 속에서 생산을 하면서도 주저앉지 않았다.
공장의 로동자, 기술자들은 30여일간에 걸치는 노력끝에 첫 뜨락또르를 완성하였다.
이 뜨락또르가 평양을 향하여 달릴 때 그 모습을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
그해 11월 14일 첫 뜨락또르를 친히 보아주신
공장의 로동계급은 기세충천하여 기술적준비기간도 시험생산기간도 그리고 점차적인 장성의 계단도 뛰여넘어 비약을 이룩하였다.
그들은 첫 시제품을 내놓은지 1년후에 3 000대의 뜨락또르를 만들어 다시금 세상을 놀래웠다.
첫 《천리마》호뜨락또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