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12월 23일 《우리 민족끼리》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11)

 

자기 하나의 편안과 행복이 아니라 사회와 집단을 먼저 생각하고 서로 돕고 이끌며 동지들을 위해 자기를 아낌없이 바치는것을 더없는 긍지로, 도덕의리로 여기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덕과 정이 공기처럼 흐르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하에서 너무도 흔히 볼수 있다.

내 조국땅 어디서나 볼수 있는 미덕의 소유자들, 사회주의 큰집을 떠받들고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가운데서 그 일부를 펼쳐본다.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단천시인민병원에는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환자들과 친혈육의 정을 이어놓고 사는 한 간병원이 있다. 그가 바로 제15차 전국보건일군정성경험토론회장에서 사람들의 심금을 크게 울리였던 리영희동무이다.

그가 간병원으로 일하게 된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수십년전이였다. 남편을 따라 단천시로 시집을 온 리영희동무는 어느날 시의 한 일군을 찾아갔다.

건설장에서 일한 경력을 내비치며 시에서 제일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가겠다는 리영희동무의 말에 일군은 놀라운 눈길로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처녀때라면 몰라도 가정부인의 몸으로 남들이 가기 저어하는 그런 초소에서 꽤 일할수 있겠는지 가늠이 가지 않았던것이다.

혹 그 어떤 즉흥은 아닌지…

그러나 반짝이는 그의 눈동자에는 일시적인 욕망이 아니라 당에서 걱정하는 문제를 한가지라도 풀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불같은 열의가 절절히 비껴있었다.

《정말로 각오가 되여있단 말이지요. 그러면 시인민병원에서 간병원으로 일하는것이 어떻소.》

《예?! 간병원일이야 아무나 할수 있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군이 말하였다.

《좋소. 그럼 이렇게 약속하기요. 간병원으로 일하다가 그곳이 어렵고 힘든 초소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아무때나 찾아오오. 그땐 동무의 요구대로 건설장에 보내주겠소.》

이렇게 되여 리영희동무는 단천시인민병원 간병원으로 일하게 되였다.

그가 며칠 일해보니 실지로 간병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였다. 환자들을 곁에서 거들어주고 공급되는 물자들을 잘 관리하면 그만이였던것이다.

그런데 리영희동무가 간병원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것을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번은 그가 중독성쇼크를 일으켰던 10여명의 환자들에 대한 간병을 맡게 되였다.

낮과 밤이 따로 없이 환자들의 곁에서 긴장한 치료를 진행하는 의료일군들과 함께 그도 밤을 새웠다. 매일과 같이 그들의 몸을 씻어주고 의복류들을 자주 세탁한다는것이 정말 헐치 않았다. 병원의료집단의 뜨거운 정성으로 환자들이 모두 소생되여 문밖을 나설 때 리영희동무의 가슴속에서는 말 못할 감정이 물결쳤다. 하지만 그는 내가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이나 해야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처녀시절 건설장에서 혁신자로 소문나고 당원의 영예도 지니면서 모두의 사랑과 존경속에 둥둥 떠받들리워온 그였다. 그에 비하면 간병원일은 남의 눈에 별로 띄우지 않는 평범한 일이였다. 몇밤을 패면서 고생은 했다지만 새로운 치료방법을 받아들여 환자를 소생시킨 의사들에 비하면 너무도 보잘것없는 일처럼 생각되였던것이다. 전방에서 위훈을 세울것을 꿈꾸던 그에게 있어서는 이런 후방일이 몸에 잘 배지 않았다.

생각다 못해 그는 병원일군에게 속을 터놓았다.

《영희동무, 그럼 하나 물어봅시다. 가장 어렵고 힘든 초소란 어떤 곳이요?》

《예?! 거야…》

《물론 여기는 건설장처럼 들끓는 곳은 아니요. 말하자면 소리치면서 위훈을 세울수 없지. 하지만 누가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고 설사 외진 곳에서 홀로 일한다 하여도 당원의 깨끗한 량심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이 참인간이 아니겠소. 진정한 애국자는 초소를 가리지 않소.》

일군의 말을 들은 리영희동무는 생각을 깊이하게 되였다.

비록 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선은 아니다. 하지만 환자들을 위해서라면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말아야 하는 이 초소에도 진정한 주인이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선듯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얼마 없는 이런 일을 묵묵히 하는 사람이 진짜 어렵고 힘든 초소를 지켜선 사람이라는것을 새삼스럽게 자각하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한생을 간병원으로 살것을 굳게 다짐한 그는 나라가 어려움을 겪는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과의료일군들과 함께 환자들을 돌보는 속에서도 짬시간을 내여 집짐승을 기르고 서툰 농사일을 하나하나 배우며 환자치료에 보탬을 주기 위해 이악하게 노력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하루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서니 3살 난 딸이 온몸이 불덩이가 되여 심하게 앓고있었다. 《엄마, 나 머리 아파.》 하며 매여달리는 딸을 꼭 품어안고 약을 찾는데 병원에 급한 환자가 들어왔다는 련락이 왔다.

엄마손을 잡고 놓지 않는 어린 딸을 두고 다시 병원으로 나가자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딸의 곁에는 할머니가 있지 않는가 하는 위안을 애써 찾으며 그는 결연코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픔과 괴로움을 강의한 의지로 이겨내며 그는 꿋꿋이 자기의 초소를 지켜갔다. 이런 그를 병원일군들과 의료일군들이 적극 도와나섰다.

이 나날 그는 수많은 환자들에게 자기 손으로 오리곰과 토끼곰을 해주었고 때없이 별식을 만들어 환자들의 몸을 추세워주었다.

부모없는 어린이의 친부모가 되여주었으며 타박상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던 한 할머니를 정성껏 간병해주고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것을 알고는 집으로 데려와 자식구실도 하느라 그가 지새운 밤, 걸은 밤길이 얼마인지 모른다.

오랜 기간 어렵고 힘든 초소에서 일하면서 환자들의 친혈육이 되여준 그의 소행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참된 인간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일터를 한생토록 변함없이 한모습으로 지켜가는 리영희동무와 같은 진실한 애국자들이 많기에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가 굳건한것 아니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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