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렬사유가족으로 된 천도교인

 

(평양 10월 26일발 조선중앙통신)

주체38(1949)년 5월 14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집무실로 북조선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찾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 위원장은 박인진도정의 부인이 천도교인이라고 하여 유가족대우를 받지 못하고있어 찾아왔다고 송구스러운 어조로 용건을 말씀드렸다.

수령님께서는 일부 편협한 일군들의 처사에 안색을 흐리시며 박인진선생은 자신께서 잘 아는 애국적인 천도교인이였다고 하시면서 그에 대하여 회고하시였다.

박인진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후 3. 1인민봉기의 격류속에 뛰여들어 《조선독립 만세!》도 불렀고 원쑤들에게 체포되여 여러해동안 감옥살이도 하였으며 독립군에도 참가하였다.

《조국광복회창립선언》《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받아안은 그는 1936년 겨울 백두산밀영에서 수령님을 만나뵙고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맹활약을 하였다.

박인진은 풍산군안의 천도교인들을 망라하는 조국광복회 풍산지회를 결성한데 이어 갑산, 삼수, 혜산, 장백지대에서도 조국광복회 지회들을 내왔으며 항일유격대에 많은 원호물자를 보내주었다.

수령님께서는 박인진선생은 반일감정이 높은 열렬한 애국자였다, 그는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놈들의 회유기만과 악착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적지조를 지켰다, 박인진선생의 부인은 응당 애국렬사유가족으로서 국가적 및 사회적보호를 받아야 한다시며 시급히 대책을 세우도록 하시였다.

반일애국의 길을 걸은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이든 잊지 않으시고 내세워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고결한 의리의 세계속에 이렇듯 한 천도교인이 애국렬사유가족으로 된 사랑의 이야기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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