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9(2020)년 6월 30일 《로동신문》

 

마음속에 군인선서를 안고 새겨가는 복무의 자욱

개천탄광 서재2갱 채탄2중대 채탄공 신기구동무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누구나 보석과 같은 애국의 마음을 간직하고 조국의 부강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유익한 일을 스스로 찾아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본 개천탄광 서재2갱 채탄2중대 채탄공 신기구동무는 탄전의 그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제대군인탄부였다. 그러나 한생을 개천탄전에 바쳐온 그의 삶의 자욱자욱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신기구동무는 개천탄광에 제대배낭을 풀었다.

그가 부모형제가 기다리는 고향 안주시가 아니라 부디 이 탄광에 삶의 닻을 내리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제대되기 전 부대의 지휘관으로부터 개천, 안주지구를 현지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내 나이 한 10년만 젊었어도 막장에 들어가 석탄을 캐보겠다고 하시였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였을 때 그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제대병사의 삶의 좌표가 과연 어디에 새겨져야 하는가를 높뛰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다 말해주고있었다.

가자, 탄전으로!

이렇게 되여 개천탄광의 탄부가 된 그였다.

하지만 처음에는 막장일이 말처럼 헐치 않았다.

막장에 동발을 드리는 작업이 진행되던 어느날이였다. 그가 막장높이보다 세뽐이나 더 긴 동발을 톱으로 자르려고 하는데 《가만!》 하는 소리와 함께 급히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

박윤일소대장이였다.

그는 후날 이 동발도 회수해서 리용하게 될수도 있다고 하면서 힘들어도 자르지 말고 구뎅이를 파고 세우자고 말하는것이였다.

얼마후 그 동발을 다 세우고난 소대장은 휴식참에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야 군인선서를 한 어제날의 병사들이지. 우리 군기앞에 다진 맹세를 변함없이 지켜 조국을 위한 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가기요.》

그런데 늘 자기곁에서 막장일을 하나하나 배워주며 힘을 주던 인정많은 박윤일소대장이 뜻밖에도 곁을 떠나게 될줄을 어찌 알았으랴.

그날은 신기구동무가 탄광으로 달려온지 3년째 되던 1989년 12월 어느날이였다.

작업도중 박윤일소대장은 예견치 못했던 위급한 정황이 조성되자 자기의 한몸을 비호같이 날려 소대원들과 막장설비들을 구원하고 희생되였다.

박윤일소대장과 영결하던 날 신기구동무의 귀전에는 그가 늘 외우군 하던 말이 다시금 메아리치며 울려왔다.

비록 몸은 수천척지하막장에 있어도 조국이 우리를 지켜보고있다는것을 명심하자. 병사시절의 그 정신으로 일한다면 극복 못할 난관이란 있을수 없다.

박윤일소대장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한다는 정령이 발표된 날 밤 신기구동무는 오래도록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그 어떤 어려운 과업이 제기되여도 명령받은 병사와 같이 오직 《알았습니다.》밖에 모르던 영웅, 그와 자기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것인가.

신기구동무의 가슴속에선 비상한 각오와 의지가 불타올랐다.

석탄생산, 이것은 당과 조국이 탄부인 나에게 준 명령이다. 내 비록 군복은 벗었어도 조국을 위한 복무의 길을 이어가던 병사시절의 그 정신으로 삶의 순간순간을 위훈으로 빛내여가리라.

그후 그는 딴 사람이 된듯싶었다. 남들보다 두몫, 세몫의 일감을 해제끼고도 성차하지 않았다. 그런 나날에 그는 기능공으로 성장하였으며 소대장을 거쳐 중대장으로 일하게 되였다.

어느날 산중턱에 새 갱이 개발되였을 때였다.

갱은 작업조건이 다른 갱들보다 훨씬 불리했고 해야 할 일감은 방대했다. 탄광의 일군들은 토의를 거듭한 끝에 새로 개발된 갱에 전투력있는 중대로 알려진 신기구동무의 채탄중대를 보내기로 하였다.

《알았습니다.》의 대답과 함께 주저없이 과제를 받아안은 신기구동무와 중대원들은 자기들의 새 일터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갱의 작업조건은 생각했던것보다 더 어려웠다.

많은 동발을 세워야 했고 레루도 새로 늘이는 등 할 일은 많았지만 신기구동무는 중대원들의 앞장에서 이악하게 일하며 매달 맡겨진 석탄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해나갔다.

새로 옮겨앉은 갱에서 일한지 몇달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갑자기 막장의 한 구석에서 물주머니가 터졌다. 물압력이 얼마나 센지 레루장이 다 휘여들 정도였다.

이때 여기 있는 막장의 석탄은 거의다 캐냈으니 다른 막장으로 옮겨가는것이 어떤가고 의견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신기구동무는 머리를 저었다.

우리가 병사시절에 칼벼랑이 막아섰다고 명령을 흥정하며 에돌아간적이 있었는가. 그때의 그 정신이 살아있다면 아마 석탄이 남아있다는것을 알면서도 막장을 버리자고 할수 없을것이다.

이렇게 말하고난 그는 동발을 메고 앞장에서 물구멍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중대원들도 그의 뒤를 따라섰다. 그들은 짧은 시간에 막장을 살려내고 남은 석탄을 말끔히 캐내고야 다른 막장으로 향하였다.

맡겨진 석탄생산과제를 무조건 수행할뿐아니라 막장공구들을 전투기술기재처럼 눈동자와 같이 애호관리하는 신기구동무의 일솜씨에도 병사시절에 무기를 사랑하던 그 마음이 그대로 비껴있었다.

그가 어쩌다 집에 들어서는 날이면 자식들은 명절날이나 된듯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러나 집에 들어와서도 그는 휴식도 잊고 막장상태에 따르는 합리적인 채탄방법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색을 거듭했고 교대시간이 되기도 전에 막장에 들어서군 하였다.

이렇게 탄전에서의 그의 생활은 병사시절처럼 《알았습니다.》의 대답과 함께 위훈속에 흘러갔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다시 채탄공으로 일하게 된 그의 머리에도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렵고 힘든 일이라면 주저없이 나서군 하는 그의 건강을 걱정하며 탄광과 갱일군들은 자주 지상단위의 편안한 직종에서 일할것을 권고하군 한다.

그럴 때면 신기구동무의 대답은 언제나 하나였다.

《난 이 막장에서 병사시절처럼 조국을 위한 복무의 길을 끝까지 걸으렵니다.》

이것이 바로 병사시절의 군인선서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복무의 자욱을 변함없이 새겨가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 신기구동무의 고결한 량심의 선서가 아니겠는가.

 

본사기자 리건일

되돌이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0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