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편

(4)

(1)

 

눈물속에 바래우는 나리를 남겨둔 설경성이 대문을 나서니 대문밖에서 기다리던 리승휴가 《어서 가세.》하며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소라골을 벗어나기 바쁘게 리승휴가 능청스럽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네 이런 시를 들어보았나?》

리승휴가 나직한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꽃은 란간앞에서 웃되

웃음소리 들리지 않는도다

 

리승휴의 목소리가 거센 소리로 변했다.

 

새는 숲속에서 울되

눈물은 보이지 않는도다

 

고개를 젓는 설경성을 곁눈질하며 리승휴가 시까슬렀다.

《그런즉 자네 숫총각이란 말이지?》

설경성은 리승휴가 무엇때문에 그런 시를 읊었는지 알수 없었다.

《휴휴형은 시에 밝은것 같소이다.》

《그쯤은 아네. 고운 최치원이 총각시절 신라조정의 대신 라업의 딸을 사모했다는 이야긴 들었을테지?》

설경성이 고개를 저으니 리승휴가 말했다.

《어느날 고운이 라업의 집을 찾아가니 정다운 딸만 있었네. 처녀가 자기를 좋아하는지 알수 없는지라 고운은 일부러 헛손질을 해서 거울을 자빠뜨렸네. 그리고는 얼른 뜨락의 란간뒤에 숨었네.

했더니 고운을 사모하던 처녀는 그가 숨은 란간을 바라보며 시를 읊었다네.

처녀가 읊는 시를 통해 그의 마음을 안 고운이 란간뒤에서 화답시를 읊었네.

방금전에 내가 읊은 그 시가 그때 그들이 주고받은 시라네.》

이윽고 설경성은 리승휴가 임금이 거처하는 장락궁이 아닌 대동강가로 이끄는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였다.

《휴휴형의 거처는 어데오이까?》

《나도 장락궁에… 내 할바는 서경에 한걸음 먼저 와서 임금을 모시는 차비를 해두는것인데 난 그 일을 말끔하게 해냈거던. 그건 그렇고… 자네 의술을 배우러 이웃나라에 간다는데 꼭 그래야만 할가?》

설경성은 한마디로 말해줄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그동안 의서를 파고들며 설경성이 절감한 문제는 보통의원들로서는 생각지도 못할것이였다.

고려건국과 더불어 급속히 진보된 다른 학문들 특히는 리규보며 리인로, 김극기, 정지상, 김부식과 같은 문장가들을 배출하고 세상을 앞서나가는 시문에 비해서 의술은 뒤떨어져있었다.

인재들이 의업에 낯을 적게 돌린데로부터 남의 나라에서 약재를 들여오고 그들의 약처방을 제일인듯 여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고려의 번영기였던 문종때에조차도 조정에서는 풍비증(뇌출혈후유증)을 겪는 임금을 위한다며 남의 나라에서 비싸게 약재들을 사들였던것이다.

설경성은 의분에 차서 열변을 토했다.

《송나라약재들을 받아놓은 문종대왕의 어의들은 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더라는것이오이다. 구기자, 찔광이, 끼무릇, 대황, 시호, 천남성 등 백여가지의 약재들중 거의가 다 우리 나라에서 나는것들인데 품질이 고려의것보다 썩 못했소이다.

예로부터 새삼씨, 궁궁이를 비롯해서 우리 고려에서 나는 약재들은 어느것이나 다 천하의 으뜸이라고 이웃나라들이 일러주었소이다.

그런데 송나라의 약처방들은 열가지이상의 약재를 배합해야 하는 복방이다보니 약을 지으려면 그 값이 너무도 비싸서 보통사람들은 그것을 쓸 엄두를 내지 못하오이다.

그렇다고 해서 효험이 높은것도 아니였소이다.

김영석어른의 제중립효방에는 풍비증으로 손발을 잘 쓰지 못하고 쑤실 때 소금에 슬쩍 절인 솔잎으로 찜질하는 처방이 있소이다.

예로부터 전해온 이 처방은 가난한 사람들도 손쉽게 쓸수 있는 참 좋은것임에도 불구하고 송나라의 약재로 송나라의 처방대로 쓴 임금은 종시 그 병으로 돌아가고말았소이다.

그때 어의들이 우리의 약재로 우리 사람의 병을 고칠수 있도록 의술을 진보시켜야 한다는걸 절감했다고 하오이다.

그런데로부터 고려의원들은 남의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나라, 제땅에서 나는 약재가 제일이고 또 제것으로 약을 지어쓸 때라야 그 어떤 병도 고칠수 있다는 뜻으로 고려약재를 가리켜 향약이라고 불렀소이다. 저도 써보니 향약이 이웃나라의 약재들보다 그 효험이 썩 우월했소이다.

하지만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향약보다 남의것이 좋다고 생각하니 이런 한심한 일이 어데 있겠소이까?》

열변을 토하던 설경성은 눈앞에 나타난 멋스런 정각앞에 입이 떡 굳어졌다.

강물이 굽이치는 주변의 경치와 아주 잘 어울리는 정각이였다.

리승휴가 정각을 가리켰다.

《이게 산수정(후날의 련광정)일세. 고구려때는 저 자리가 동장대였다누만.》

리승휴는 산수정과 얼마간 떨어져있는 강가의 바위에로 설경성을 이끌었다.

《우리 여기에 앉읍세. 계속 듣고싶구만.》

리승휴의 재촉에 바위에 걸터앉은 설경성이 입을 뗐다.

《제 어렸을 때 조부님이 늘 일러주기를 우리 고려의술의 장끼는 한가지 병에 한가지 약재로, 기껏 많아 몇가지 약재로 고치는것이다라고 말했소이다.

우리 나라 의서를 보면 묵은 병일지라도 몇가지 이상의 약재를 쓰지 않고있소이다.

까마득한 옛적인 박달임금시기에 벌써 우리 선조들은 마늘과 쑥으로 많은 병을 다스려왔소이다.

쑥만 보더라도 달여먹으면 5장6부의 병을, 말려가지고 뜸을 뜨면 많은 병을 다스릴수 있으며 불태워 연기를 쏘여도 살가죽이나 눈, 코에 생긴 병을 고칠수 있소이다. 오죽 병이 쑥쑥 나으면 조상들이 그 이름을 쑥이라고 했겠소이까? 하기에 박달임금의 아버지 환웅이 곰녀인에게 쑥과 마늘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오늘까지도 전해오는것이오이다.

그러나 저 중원에서는 수나라 이전의 도흥경이란 사람이 쓴 명의별록에서 처음으로 마늘과 쑥이 약재라 소개했고 약재의 으뜸은 해동의것이라 하였소이다.》

리승휴는 홍자번에게서 듣던것보다 설경성의 학식이 더 깊다는것을 느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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